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트로트 신드롬의 이면](http://contents.dt.co.kr/images/202001/2020012902102269660002[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트로트 신드롬의 이면")
트로트 열풍의 출발점은 TV조선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이었다. 처음엔 미스코리아 포맷을 내세워 여성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쇼라는 혹평이 쏟아지면서 그저그런 종편 프로그램으로 흘러갈 것 같았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뜨겁게 반응하고 송가인이라는 걸출한 스타까지 등장하면서 '미스트롯'은 한국 트로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 되었다.
트로트가 침체되고 이렇다 할 신인이 나타나지 않던 시기였다. TV 음악프로그램은 아이돌 댄스음악이나 미국 흑인음악이 점령했다.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댄스, 흑인음악, 발라드 이외의 장르는 아예 나오질 않았다. 이런 음악들도 좋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한국인의 감성이 온전히 다 채워지지 않았다. 뭔가 허전한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미스트롯'과 함께 돌아온 트로트가 그 허전함을 채워줬다. 한국인에겐 아직 트로트를 즐기는 DNA가 남아있었다. 과거 박정희 정부 시절, 트로트를 왜색가요라고 하면서 탄압했다. 나중에 방송에서 트로트를 전통가요라고 부르자 젊은 세대들이 '일본에서 건너온 음악인데 왜 우리 전통음악이냐'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이건 트로트에 대한 오해다.
트로트가 일본에서 들어온 음악에서 형성된 것은 맞다. 일본인들이 서양 음악에 일본의 전통 5음계를 접목시켜 엔가를 만들었고 그것이 식민지 시절 조선에 들어왔다. 당시는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던 시절인데, 우리도 5음계를 쓰는 문화권이기 때문에 일본이 동양감성에 맞게 바꾼 서양식 음악이 우리 취향에도 잘 맞았다. 거기에 우리의 전통 민요 가락과 흥이 덧붙여져 우리식 서양음악 유행가로 발전한 것이 트로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서양음악이 일본을 거쳐 동양화된 것을, 우리가 다시 한국화했고, 그 음악에 식민지 시절부터 우리 민족이 울고 웃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우리 전통가요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특히 송가인의 목소리가 우리 전통 트로트의 맥을 이은 것이었다. 80년대 이후 트로트는 점점 밝아지고 빨라졌다. 주현미가 분기점이라 할 만하다. 그 전까지 트로트 여왕의 목소리는 이난영, 이미자로 대표되는 한 서린 음색이었다. 하지만 80년대 관광 열풍, 영동 개발과 함께 나타난 주현미는 댄스메들리를 내세웠다. 화려한 신사동(영동 개발의 출발점)에서 마주친 사람과의 하룻밤 사랑을 경쾌하게 노래했다. 여기서 장윤정, 홍진영으로 이어지면서 트로트가 완전히 댄스음악과 가까워졌다. 그런 트로트도 좋지만 한 서린 전통 트로트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송가인이 그 공백을 메워주자 중노년층이 뜨겁게 반응했다. 오디션을 통해 트로트가 조명 받는 것에, 많은 이들이 마치 서양에서 기름진 음식만 먹다가 김치찌개를 받아든 한국사람처럼 반색했다.
그 불길에 MBC '놀면 뭐하니'가 기름을 끼얹었다. 유재석이 유산슬이라는 신인 트로트 가수로 활동한다는 콘셉트였다. 여기선 요즘 추세대로 댄스음악에 가까운 경쾌한 트로트를 선보였다. 젊은층에게 인기 있는 유재석이 신나는 트로트를 부르자 젊은 세대가 트로트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송가인이 중노년 세대를, 유산슬이 젊은 세대를 쌍끌이로 견인하면서 트로트 열풍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이 트로트 뮤지컬까지 나오게 된 배경이다.
요즘엔 TV조선 '미스터트롯'이 트로트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시작한지 2회 만에 시청률 17%를 돌파해, '미스트롯'이 세운 역대 종편 예능 최고 시청률인 18.1%를 깰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번 '미스터트롯'에는 유소년 신동들이 나와 이모팬들까지 양산하고 있다. 여기서 트로트 신동들이 크게 조명 받으면 앞으로 어린 트로트 가수 지망생이 더 많아질 것이다. 트로트 DNA는 이렇게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이런 열풍이 트로트가 음악적으로 존중 받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어르신들의 촌스러운 B급 문화 정도로 평가절하 됐던 것이 사실이다. 트로트가 보다 존중 받게 되면 그 속에서 새롭고 더욱 수준 높은 전통가요들이 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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