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올 주총서 718명 교체해야할 판"
"외국에서 입법례를 찾아보기 힘든 구시대적 규제다." 2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상법 시행령을 두고 여러 경제단체가 하나같이 내뱉는 '쓴소리'다.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하는 것은 '과잉 규제'라는 얘기다. 상법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조만간 열릴 주주총회에선 '사외이사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560여개에 달하는 상장사가 개정된 시행령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으로 국민연금의 '연금 사회주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재계·경영계는 개정된 상법 시행령에서 사외이사 임기를 6년, 계열사 포함 9년으로 제한한 부분을 문제 삼고 있다. 당장 3월 열릴 주총에서 사외이사를 대거 교체해야 할 판이라서다. 앞서 법무부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사외이사 임기 제한 관련 시행시기를 1년 늦추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결국 강행키로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여태까지의 신규 사외이사 선임 수와 (시행령 개정에 따른) 선임 수가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봐서 시행하는 것"이라며 "충분한 검토를 통해 원안대로 가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올 3월부터 새로 뽑아야 하는 사외이사는 최소 566개사 718명이다. 지난해 말 기준 결산 상장사가 2003개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장사 가운데 4분의 1 이상은 사외이사를 새로 임명해야 한다. 사외이사가 일시에 바뀌면서 자격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낙하산이 대거 임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성명에서 "사외이사 임기 제한은 유능하고 전문성 있는 인력도 6년 이상 재직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회사와 주주의 인사권에 대해 직접적인 통제장치를 부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으로 '5% 룰'이 완화되는 부분도 문제로 꼽힌다. 기존에는 상장회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주주는 1% 이상 지분 변동이 있을 때마다 이를 5일 이내에 공시해야 했지만,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5% 룰을 적용하는 범위가 줄어들었다. 공적 연기금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 변경 추진이나 회사 임원의 위법행위에 대한 해임청구권 행사 등이 제외된 것이다. 공적연기금은 이러한 내용의 주주활동을 하더라도 다음 달 10일 이내에만 변동된 지분 내용을 공시하면 된다. 결과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지금보다 더 늘어난 셈이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말까지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313개사에 달한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연기금이 경영 참여 선언 없이 정관 변경 요구나 임원의 해임 청구 등을 하는 것은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증가시켜 경영 자율성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며 "시행령 개정을 다시 논의해 달라"고 말했다.
김동준기자 blaams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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