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겨울왕국2` 1000만 돌파 의미](http://contents.dt.co.kr/images/201912/2019121802102269660001[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겨울왕국2` 1000만 돌파 의미")
동시에 성인관객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어린이 동반 가족관객이 모여드는 만화영화는 많지만 1000만 영화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겨울왕국' 시리즈가 초유의 쌍천만 만화영화가 된 데에는 성인관객의 호응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 영화관람층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그런 호응이 나타났을 것이다.
원래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부문은 다름 아닌 정치다. 정치에는 투표를 통해 직접적으로 대중의 생각과 욕망이 반영되고, 평소엔 지지율과 여론이 압력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정상적인 민주 사회라면 정치가 사회의 흐름을 그때그때 반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사회와 정치 사이에 거대한 장벽이 있는 것 같다. 그럴 정도로 대중과 정치가 단절되어, 정치가 마치 섬 속에 똬리를 튼 그들만의 리그처럼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느낌이다. 공천만 하면 무조건 당선되는 지역주의 때문이다. 이러면 정치인들이 국민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국민보다 공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당내 실력자가 더 무섭다. 그 실력자 중심으로 파벌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충성한다. 또, 극렬한 이념 대립 때문에 특정 이념만 내세우면 손쉽게 지지 세력을 모아 정치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이런 구조에서 정치가 작동하니 점점 그들만의 리그가 되면서 마치 섬처럼 일반 사회로부터 분리되어가는 것이다.
반면에 영화와 같은 대중 흥행 분야는 대중의 생각, 욕망으로부터 분리될 수가 없다. 영화는 '우리가 남이가'라면서 무조건 표를 사주는 관객집단도 없고, 이념으로 뭉친 열혈 지지자들도 없다. 오직 당대 대중의 생각과 욕망을 그대로 반영해야만 사회적 공감과 함께 신드롬급 흥행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영화 기획자들은 정치인보다도 더 대중의 동향에 민감하다. 언제나 시대정신을 읽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겨울왕국' 시리즈는 디즈니라는 노련한 회사가 이 시대를 읽어낸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디즈니는 왕자님과 공주님 이야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회사다. 씩씩한 왕자님 또는 기사가 위기에 빠진 아름답고 순수한 공주님을 구해주고 부인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다. 그런 공식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겨울왕국'에선 그걸 버렸다. 1편에서 엘사는 왕자님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자립한다. 엘사가 자립을 선언하며 '렛잇고'를 부르는 순간에 골반을 흔들며 걷는 요염한 이미지도 나타난다. 여성에게 수동성과 순수함을 강요했던 기존 관습에서 벗어난 것이다.
여기에 엄청난 호응이 나타나자 이번 2편에선 한 걸음 더 나갔다. 엘사가 전형적인 공주 의상인 드레스가 아닌 레깅스 속바지를 입었다. 왕자님의 도움 없이 자매가 서로 도우며 문제를 해결한다. 여성 캐릭터들이 서로 반목하는 관습으로부터의 탈피다. 또, 최근 고조된 환경 의식도 담았다. 잘못된 댐 개발로 자연이 파괴된다면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서구 문명이 원주민 부족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는 내용도 담았다. 기존 디즈니 만화영화에서 원주민 같은 타자는 왕자님이 물리치는 적이었지만 여기선 잘못을 사죄하고 공존해야 할 이웃이다. 타자, 소수자, 약자를 포용해야 한다는 최근 기류를 반영한 것이다.
디즈니의 이러한 변신은 대성공을 이뤄냈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흥행이 나타난 것이다. 시대정신을 정확히 꿰뚫었다. 한국에서도 호응이 뜨겁다. 특히 여성 관객들이 '겨울왕국2'에 열광했다. 미투 운동 이후 강화된 여성주의 열풍이 영화 흥행으로 바로 이어진 것이다.
디즈니는 이렇게 수십여 년간 지켜왔던 성공의 공식, 자신들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던 이야기 코드를 '싹' 갈아엎어 대박을 터뜨렸다. 망하지 않으려 대중을 읽고 시대를 읽은 결과다. 정작 정말로 시대를 읽고 변화해야 할 정치는 지금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계속해서 그들만의 리그로 나간다면 쪽박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영화사는 그러면 망해서 사라지는데 우리 정치는 쪽박을 차도 망하질 않으니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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