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부러진 계층상승 사다리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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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1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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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부러진 계층상승 사다리
하재근 문화평론가
2010년 '슈퍼스타K'에서 허각이 우승했을 때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슈퍼스타K'는 케이블TV 프로그램이었다. 요즘엔 달라졌지만 과거에 방송사간에는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고, 특히 지상파 방송사는 케이블채널을 무시했었다. 그런데 '슈퍼스타K'의 허각 우승으로 인한 사회적 신드롬이 얼마나 컸던지 지상파 저녁 뉴스에서도 주요 이슈로 다룰 정도였다.

당시 허각은 중졸 환풍기 수리공 출신으로 알려졌다. 허각과 경쟁했던 존박은 해외파 엄친아 이미지였다. 해외파 엄친아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는 느낌을 준다. 즉, 흙수저와 금수저가 대결하는 구도였던 것이다. 여기서 흙수저가 이긴 것에 우리 사회가 뜨거운 반응을 보인 이유는, 그런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말이 있다. 특이한 사건일수록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 허각이 존박을 이긴 것은 그런 특수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시험 중심 입시가 교육을 획일화한다며 입시를 다양화, 자율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2000년대에 힘을 얻었다. 2007년에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됐고, 2008년 이후 대폭 확대됐다. 입시 다양화 및 자율화. 뜻은 좋다. 하지만 현실에서 각 대학이 학생을 자율적인 방식으로 뽑으며 입시 전형이 다양화되자 너무 복잡해진 것이 문제다.

'N개의 전형'이 있다고 할 정도로 대학 입시가 복잡해졌다. 이런 복잡한 변화를 서민이나 공교육 교사는 쫓아갈 수 없었다. 입시정보를 꿰고 있는 입시컨설턴트가 중요해졌고, 그에 따라 입시컨설턴트의 컨설팅을 받으며 포트폴리오를 짤 수 있는 부유층이 유리해졌다. 정보력이 비상한 어머니는 '돼지엄마'라고 불리며 입시시장의 총아가 됐다. 입시 성공을 위해선 '할아버지의 재력, 아버지의 무관심, 어머니의 정보력'이 필요하다는 격언이 등장했다.

시험이 아닌 다양한 요소로 선발한다는 취지이기 때문에 시험공부 이외의 비교과활동과 특기적성이 중요해졌다. 그런 활동의 증명이 기록된 것을 '스펙'이라고 한다. 이제 학생들은 공부만이 아니라 스펙까지 쌓아야 했다. 일반학교에서도 비교과활동을 지도했지만 특목고를 따라갈 순 없었다. 특목고는 특별한 스펙 쌓기를 기획했고, 특목고 학부모들의 네트워크도 스펙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 결과 특목고 입시 경쟁이 벌어졌고 일반 서민은 대학 입시 이전에 특목고 단계에서부터 배제되기 시작했다.

특목고 입시나, 대학 입시를 위한 스펙으로 가장 유리한 것이 영어였다. 이명박 정부 당시엔 영어를 특히 강조했다. 영어에 능통한 조기유학자나 조기 영어교육 이수자가 특별 대우를 받았다. 이런 영어 교육에도 부유층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영어를 통해 빈부의 스펙이 선명히 갈렸다.

그런 스펙경쟁으로 유명 대학을 부유층 자제들이 점령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거엔 유명대 상징탑을 우골탑이라고 했었다. 농촌에서 소 팔아 등록금 마련한 학생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개천에서 용이 났던 시절이다. 대학을 부유층이 점령하면서 계층 상승 사다리가 꺾이고, 우골탑이란 말도 사라졌다.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로스쿨도 부유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고졸 대통령 노무현의 신화도 사라져갔다. 사람들은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고 절망했다.

바로 그때 '슈퍼스타K'에서 중졸 환풍기 수리공 출신이 스펙의 '끝판왕'이라는 해외파를 물리치고 1위에 오른 것이다. 그래서 신드롬이 터졌다. 교육이라는 사다리가 부러진 대신에 오디션이라는 새로운 공정 사다리가 나타났다고 말이다. 이것이 그 사건을 지상파 뉴스까지 나서서 중요하게 다룬 이유다.

그 소동이 벌어진 것이 2010년이었다. 그후 9년이나 흘렀는데도 요즘 의외의 일이 나타났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딸이 시험도 안 보고 대학에 갔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공분한 것이다. 입시제도가 바뀐 지가 언젠데 이제야 놀란단 말인가? 조 후보자의 딸은 전형적인 조기유학 영어 스펙과 특목고 강점을 활용해 서민에겐 힘든 이점을 누린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의 정보력 가능성도 있다. 불법을 저질렀다면 처벌받아야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현재의 제도에선 교육이 부유층의 계층 세습 직행로로 이용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교육을 다시 계층 상승 사다리로 세울 수 있느냐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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