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예술이 정치를 말할 때

조만수 충북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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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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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예술이 정치를 말할 때
조만수 충북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예술은 여가의 한 종류이고, 삶을 아름답게 해주지만 생계를 위해서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일종의 사치스런 필수품 정도로 여겨질 것이다. 거실 한 켠을 장식해주는 그림이 아마도 우리 삶 속에서 가장 친숙하게 떠올릴 수 있는 예술 작품일 것이다. 이 때 예술작품은 하나의 오브제이다. 이처럼 대상으로서의 오브제는 주체인 창작자, 그리고 소비자인 감상자의 선택과 배치에 복종한다. 그런데 수동적이어야 할 오브제가 배치된 장소와 용도를 벗어나 성큼 현실 안으로 들어설 때 사람들은 당황한다.

일본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 평화의 소녀상의 전시가 중단된 것처럼 주어진 배치를 벗어난 예술 작품을 대할 때의 사회적 당혹감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격렬하게 표출된다. 극우적 여론의 조성, 전시 중단, 그리고 이후의 조처들은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의 정당성을 설득하기를 원하는 아베 정권이 오히려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훼손하면서까지 소녀상의 전시를 막는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소녀상 전시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일본 내 목소리는 소녀상이 순수한, 그리고 미적 수준이 높은 예술작품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순수예술/정치적 예술, 그리고 다분히 취향적 기준인 미/추, 완성도의 유/무 등의 구분은 예술작품을 판단하고 감상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지 오래 되었다. 예술이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발화될 때조차, 오늘날에는 예술작품을 통하여 작가가 주장하고자 하는 정치적 메시지가 전달되는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예술작품을 한낱 감상품으로 여길 때 관객은 소비자라는 한정된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예술작품을 통해서 정치적 메시지를 설파할 때 관객은 프로파간다를 받아들이는 수동적 교육생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예술작품과 관객은 보다 적극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관객은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로서 예술작품의 의미를 구축해간다. 소녀상은 감상의 대상이 되거나, 그 소녀상과 그 소녀상을 만들어낸 비극적 과거를 사유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소녀상 곁에 앉는 행위는 나와 과거, 나와 대상의 간격을 없애준다. 그리하여 소녀상의 관람이 아니라 소녀상 곁에 앉는 행위, 그 자체가 이 작품의 의미가 된다.

비록 각자가 과거를 대하는 사유의 내용이 다를지라도, 과거의 한 사건을 외면하지 않으며 그 곁에서 현재형으로 자신과 세계와 삶을 바라보는 행위가 이 작품을 완성시킨다. 그러므로 이 전시를 취소시키는 것은 소녀상이 제시하는 과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더 근본적으로 우리가 과거를 현재의 삶과 연결짓는 매우 당연한 행위 자체를, 그리고 세계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라는 인간의 기본적 행위를 근절시키려는 매우 위험하면서도 무의미한 시도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무의미한 공권력의 개입은 <표현의 부자유 이후>라는 이 전시회의 주제 자체를 역설적이게도 매우 성공적으로 완성시킨다. 예술에 대한 검열이 탄핵이라는 방식으로 국가권력을 교체하게 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던 우리 사회를 상기해 본다면 아이치트리엔날레의 파장이 일본 사회에서 일으키는 반향의 정도는 우리가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데 의미있는 지표가 될 것이다. 관객이 예술작품을 완성시키는 행위자로서 참여하는 방식은 미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연극은 관객이 집단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관객의 참여가 더욱 적극적일 수 있는 장르이다. 이 때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것은 가상의 이야기의 흉내가 아니라, 관객이 함께 하는 이 순간 펼쳐지는 실제의 행위이다. 즉 무대 위의 배우는 가상의 배역이 아니라, 자기 삶을 그대로 지닌 채 관객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연극은 픽션이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것이 된다.

2019년 3월부터 7월까지 미국의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하이디 슈렉 작 <헌법이 내게 의미하는 것>과 2019년 6월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공연예술제에서 초연되고, 11월 재공연을 앞 둔 크리스티앙 라푸엥트 작·연출의 <헌법을 만듭시다>는 헌법이라는 가장 정치적인 제도를 주제로, 그들의 연극적 행위를 만들어낸다. 헌법과 자신의 삶을 직접 연결짓기에 두 작품 모두 작가 자신이 '당연히' 주연 배우로서 무대 위에 선다. <헌법이 내게 의미하는 것>은 현재 미국의 헌법이 과연 여성, 유색인종 등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는가를 토론의 형식으로 검토하며 관객은 이 토론의 심판으로 참여한다. <헌법을 만듭시다>는 캐나다 연방정부의 1982년 헌법에 동의하지 않는 퀘벡 주의 시각에서 새로운 헌법을 시민들과 함께 새로 제정하고 이를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찬반 투표를 통해서 채택하고 다시 관객들에 의해 낭송, 공표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헌법, constitution이라는 말 자체가 함께(con)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Institute)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제도를-그것이 거창한 정치사회적 제도이든, 사소한 일상적 관행이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능동적으로 그 존립의 이유를 되묻는 과정은 철학적이며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예술적이다.

왜냐하면 참되고(眞) 정의롭고(善), 아름다운 것(美)이 결코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선미를 구분하는 배치로부터 진선미를 하나로 묶는 배치로의 이동, 발신자/수신자, 창작자/향유자의 구분으로부터 인터액티브한 관계로의 이동은 일방적 관계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이동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침묵 속에서 일방적인 관계를 향해 나아가는 일본과 사회적 진통 속에서도 민주적인 사회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한국은 함께 구축할 것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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