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기생충`이 던지는 경고](http://contents.dt.co.kr/images/201906/2019060502102269660001[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기생충`이 던지는 경고")
'기생충'은 우리 사회 계급 분리의 민낯을 우화적으로 그렸다. 여기서 부자와 빈자는 언덕 위 햇살이 넘실대는 공간과 하루에 잠깐 동안 겨우 한 움큼만큼만 햇살이 비치는 반지하 공간으로 확실하게 분리돼있다. 부자에겐 미세먼지를 쓸어가 준 단비가 빈자에겐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위협하는 수마다. 수마가 할퀴고 간 후 빈자들이 가재도구를 들고 체육관에 피신해 있을 때 부자들은 미세먼지 없는 맑은 공기에 야유회를 연다.
전혀 다른, 수직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두 개의 삶. 빈자가 살기 위해선 부자에게 기생해야 한다. 그래서 '기생충'이다. 빈자는 부자를 속이고 이용한다. 그렇게 해서 부자는 이들의 숙주가 된다. 부자의 집 지하에선 서로 부자에게 기생하겠다고 빈자들끼리 혈투를 벌인다. 그런 기생충들 위에서 부자는 넘쳐나는 햇살 속의 평화를 누린다.
빈자에겐 '계획'이 있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 비누 거품처럼 흩어져갈 미몽일 뿐이다. 빈자의 아들은 돈을 벌어 부잣집을 사겠다는 마지막 계획을 세우지만 그것이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걸 관객은 모두 안다. 결국 지하 기생충으로 살아갈 운명. 그래서 빈자는 지하로 숨어든다.
하지만 기생충들 위에서 누리는 부자들의 세상이라고 마냥 안락한 건 아니다. 완벽한 분리는 혐오와 멸시를 낳고, 혐오와 멸시는 결국 앙심을 낳게 된다. 영화 속에서 부자는 분리된 '선'을 지키려 하면서 그 선을 넘어오는 냄새에 혐오감을 표현하는데, 그 때문에 결국 부자의 평화로운 세계는 붕괴된다. 빈자가 기생충으로 분리된 세상은 빈자의 비참함과 부자의 불안이 있을 뿐이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날로 심각해져가는 양극화 문제를 영화적으로 그린 것이다. 이달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Ⅴ)'에선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소득격차가 너무 크고, 성공하려면 부유한 집안 출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인식은 마지노선을 넘어서면 사회에 아노미와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 아노미와 불안정이 '기생충'에 표현됐다.
이것이 칸 영화제에서 통하고, 세계 언론으로부터도 격찬을 받은 건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부터 양극화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1920년대 대공황 이후 양극화가 줄어드는 쪽으로 발전했던 자본주의 사회의 흐름이 1980년대부터 바뀌었다. 그 양극화가 누적돼 2008년 이후 서구사회에 시위나 폭동이 나타나기도 했다. IT 산업이 대두하는 4차 산업혁명은 이 양극화 흐름을 더 가속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마침 '기생충' 속의 부자도 IT 신흥 재력가였다. 서구 사회도 이런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에 뜨겁게 호응한 것일 게다.
서구보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더 빠르고 파괴적이다. 우린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에 너무나 빨리 양극화가 진행됐다. 공동체 의식이 해체되면서 분리와 고립의 사회로 바뀌어간다. 파국이 닥친 '기생충'처럼 불안이 잉태되고 있는 것이다. 늘어가는 '묻지마 범죄'도 그런 불안의 한 단면일 것이다. 예민한 영화감독은 시대의 고통을 느끼고, 시대의 변화를 읽는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만들게 됐고 칸 영화제가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봉 감독이 영화로 던진 경고에 어떻게 대응할 지는 이제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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