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국민 아량이 `한류대국` 키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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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1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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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국민 아량이 `한류대국` 키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얼마 전 황치열이 중국에 사과한 일로 인터넷이 떠들썩했었다.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황치열은 "중국 가기 전 앞서 활동했던 선배들이 '중국 공기가 안 좋고 물이 안 맞을 수 있다'고 했다"면서 "공항에 내렸는데 앞이 안 보였다. '진짜 공기가 안 좋구나 (라고 느꼈다)', 물을 마셨더니 '물맛이 좀 다를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전혀 상관없었다.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것을 중국의 일부 매체가 '황치열이 중국의 공기와 수질이 좋지 않다고 했다'라고 보도했고, 중국 누리꾼들이 '황치열이 중국을 조롱했다'며 공분했다. 결국 황치열이 SNS에 사과문을 게재한 사건이다.

그러자 한국 누리꾼이 들끓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비난하는 중국인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와중에 한국의 방송사가 황치열을 두둔하며 중국 누리꾼들이 우리 가수를 괴롭힌다는 식으로 보도한 것이 중국에 알려져 중국 누리꾼들이 다시 공분했다. 급기야 한중 누리꾼 사이의 감정대립으로 비화해 온라인 댓글 싸움이 이어졌다.

중국은 자신들이 중화제국이라는 자부심이 엄청나다. 하지만 근세 이래 국력이 쇠락했기 때문에 열패감이 쌓였다. 요즘 들어 경제력이 신장되면서 다시금 대국의 위상을 찾겠다는 열망이 타오르고 있다. 어떻게든 자신의 뛰어남을 과시하려고 하고 외국으로부터 인정받는 데에 사활을 건다.

중화제국의 자부심이 극심한 자존심으로 전환된 것이다. 열패감 때문에 자존감은 낮지만, 자존감이 낮을수록 자존심이 강해진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극히 예민하다.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 매우 좋아하고, 안 좋은 말을 들으면 자존심이 발동해 격렬하게 반발한다. 중국의 현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인이 외국인에게 듣고 싶은 말은 냉정한 현실 지적이 아니라, 자신들의 자존심을 만족시켜주는 찬사다. 중국의 공기질이 안 좋다는 것은 당연히 객관적인 사실이고, 중국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환경개선에 나설 정도로 중국 내부에서도 인정하는 사안이다. 중국인들도 뻔히 다 안다. 하지만 그 말을 외국인에게 듣고 싶어 하진 않는다. 중국에서 많은 돈을 벌어가는 한류스타에게는 더더욱 듣기 싫은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 언론사들과 누리꾼들은 비웃으며 공격을 가했다. 이건 문제다. 우리가 한류 대국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우린 판매자이고 중국은 소비 시장이다. 즉 중국인이 고객이다. 세상에 어느 판매자도 고객과 감정싸움을 하지 않는다. 판매자에게 중요한 건 시장확대이지 자기 자존심 세우기가 아니다.

한류의 주요 시장인 동아시아 각국이 대부분 자존감이 낮고 자존심이 매우 강한 상태다. 그래서 안 좋은 말 듣기를 싫어하고 툭하면 비이성적인 반발을 보인다. 그때마다 우리가 사리를 들어 상대를 공격하면 감정대립만 더 심해지고,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어, 한류가 위축된다. 인터넷에서 잠시 감정을 풀 수 있을지는 몰라도 궁극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이다. 그러니 무의미한 감정싸움을 벌일 이유가 없다.

한류 스타들은 자신들이 상대하는 주요 시장의 이런 상태를 숙지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번 황치열 사과 사태는 우리 토크쇼에서 악의 없이 무심코 한 말조차도 상대국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다는 걸 알게 했다. 이 부분을 조심해야 앞으로 또다시 사과하는 사태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자존심도 돌아봐야 한다. 우리도 타자의 시선에 극히 예민하고 우리에 대한 부정적 표현을 못 참는다. 과거 재미교포인 2PM 재범이 연습생 시절에 한국에 부정적인 표현을 했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지자 누리꾼과 언론이 공분해 결국 재범을 2PM에서 쫓아낸 적이 있다. 한국 누리꾼과 언론은 재범 소속사의 사과를 기어이 받아냈다. 그저 어린 연습생의 푸념 정도였는데도 우리의 극심한 자존심은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미녀들의 수다' 출연 외국인이 자국에서 낸 책에 한국을 부정적으로 그린 대목이 있다고 알려져, 사실관계를 알아보지도 않고 공분했던 사건도 있다. 우리도 그리 이성적이고 관대한 상황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더욱 중국 등의 반응에 감정적으로 대응한다. 우리부터 보다 관대해지고 상대의 정서를 헤아리는 아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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