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켈러허 회장의 `감정 인간학`

[디지털인문학] 켈러허 회장의 `감정 인간학`
    입력: 2019-01-17 18:13
김종규 성균관대학교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디지털인문학] 켈러허 회장의 `감정 인간학`
김종규 성균관대학교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미국 저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의 전(前) 회장이었던 허브 켈러허는 한 고객으로부터 항의 편지를 받은 바 있었다. 자신의 직원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편지를 받은 그는, 그 문제의 직원을 찾아 징계조치를 마련하는 대신, 매우 정중한 어조의 답장으로 그 고객과의 결별을 신속하게 선택했다고 한다. 물론 직원 문책이 그의 선택지가 될 수도 있었지만, 이는 그의 경영철학에 비추어볼 때 가능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희생이 전제된 행복을 추구하지 않았다. 고객이 행복할 수 있는 원천은 그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의 행복이라 그는 생각하였으며, 그래서 그는 직원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가 여러 이벤트를 통해 수많은 미담의 주인공일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그가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회사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와 같은 그의 성찰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허브 켈러허의 사례가 일반적인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데 그의 사례가 예외적이며 특별한 것이기에 너무도 안타깝다. 그가 개인적으로 매우 독특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고객과 직원의 행복이 별개일 수 없다는 그의 생각이 창의적 사고의 결과라는 점에서도 더욱 그러하다. 우리에겐 여전히 고객을 최우선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더욱이 고객을 직접적으로 응대해야하는 경우에서는 '고객 최우선'은 하나의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객을 중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고객과 결별을 선택한 허브 켈러허도 고객의 중요성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기서 고려해야 할 것은 고객의 최우선성이 갖고 있는 일방적 시각이다. 이 속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의 입장은 배제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배제 속에서 '감정노동'은 노동자에게는 일종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감정노동은 고객을 상대할 때 그 고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이 상황에서 발생하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전시적(展示的)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다양한 직종들이 감정노동의 사례로 언급되고 있으나, 특정한 직종에 한정하여 감정노동을 이해하는 것은 좁은 시각일 따름이다. 이러한 감정노동은 고객이 최우선이라는 전제하에 고객을 직접적으로 상대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요구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이 노동자들은 그 노동을 매개로 임금계약을 맺고 있기에, 감정노동은 때로 감정의 상품화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감정은 양도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감정노동은 감정의 상품화라기보다는 감정의 능력에 대한 상품화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문제는 표현이 아니라 이 상품화 과정에서 감정의 능력이 그 능력의 소유자와 물리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분리 불가능성은 감정노동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그의 노동이 단지 전시적 감정 연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감정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 때 자신의 능력을 양도한 감정노동자는 발생가능한 개인의 감정을 숨기고, 계약된 감정만을 연기하도록 강요받는다. 스스로를 억제하여 자신의 감정을 숨겨야 한다는 점에서 감정노동자는 자기 스스로를 기만하거나 혹은 상실상태로 몰아가도록 요구받고 있는 셈이다. 감정노동자들 중 많은 이들이 우울증과 같은 병리현상을 겪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작년 말 시행된 '감정노동자보호법'은 사회적으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이 법률의 시행으로 감정노동자들이 필요시 자신의 업무를 중단하는 등의 조치를 사업주에게 요청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써 병리현상을 촉발할 수 있는 조건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자가 겪어 온 고통을 고려할 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의 제정과 시행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조처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는 아쉬움은 이 법률이 피해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제시하고 있으나, 앞서 언급한 고객과 노동자 관계에 대한 일방적 시각의 근본적 전환에 토대를 두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환이 없다면, 감정노동자의 입장은 지속적으로 배제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러는 한 그가 겪는 고통이 반복될 가능성 역시 높아지기 때문이다.

방법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현재 한창 진행 중인 감정로봇 연구는 어쩌면 이러한 감정노동의 문제를 근본적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감정로봇이 감정노동에까지 확장되어 감정노동자들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면, 감정노동자들의 고통은 근저에서부터 발생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러한 해결 방법은 이 고통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도외시한 결과일 뿐이다.반드시 성찰해야 할 점은 이 고통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싸움을 말리기 위해 서로를 떼어놓는 것은 효과적이긴 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싸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 해결은 반드시 서로의 관계 속에서 모색되고 마련되어야만 한다. 감정은 결코 고립된 현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의 고통 역시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것인 한, 그 문제를 단지 관계의 단절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방안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허브 켈러허의 사례는 감정이 갖는 인간학적 의미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감정은 단순한 표출과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 중 하나인 것이다. 감정이 갖는 인간학적 의미를 놓친다면, 우리는 감정을 그저 피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것을 특히 우리의 법률이 그리고 미래의 기술이 반드시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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