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삶의 미로 속 `소확행`

조만수 충북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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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0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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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삶의 미로 속 `소확행`
조만수 충북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또 다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삶이 팍팍해질수록 새해를 맞는 기원이 길어지고 다짐도 많아진다. '황금'돼지해라면서 황금빛 풍요를 기원하고, 지난해 보다 더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결심하지만, 우리 모두 올해가 지난해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십이간지, 육십갑자의 조합은 삶의 여러 가능성과 기원들을 담고 있지만, 또한 이 조합은 결국 우주의 원리 자체인 순환과 반복의 논리 그 자체를 담고 있다. 마치 은하의 별들의 움직임처럼 반복되는 원형의 움직임 안에 우리의 삶이 놓여 있다.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미로이다. 누가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한다면, 높은 자리로 승진을 한다면, 사업에 큰 성취를 거둔다면 이 미로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하면 할 수 있다는 긍정의 격려가 우리를 이 미로 속에서 버텨내고 끝내 그 입구를 찾아 광명으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

삶의 미로를 빠져나가는 지혜를 지닌 인물의 대명사는 그리스 신화 속 '아리아드네'이다. 그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가지고 사랑하는 테세우스를 미궁의 에움길로부터 빠져나오게 한다. 아니 아리아드네는 지혜를 지닌자라기 보다는, 지혜 그 자체라 해야 할 것이다. 지혜를 지닌자는 아리아드네를 얻는자이다. 아리아드네의 실을 움켜쥔 자는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이다. 이 지혜를 지녔기에 그는 항상 승리한다. 테세우스는 마라톤평원에서 메데이아가 보낸 황소를 때려 잡는 존재이며 지옥에 가서도 살아오는 존재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한 고난도 이겨내고 항상 삶 속에서 승리하는 우월한 존재이다. 그런데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미궁을 빠져나온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귀국길에 낙소스 섬에 아리아드네 공주를 버리고 도망을 친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한 여인에게 충실하지 못한 영웅의 면모를 말해주는 일화이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의미 속에서는, 우월한 인간은 항상 승리하는 것 같지만 삶의 미로 속에서 결정적으로 빠져나오는 지혜를 지니지 못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는 지혜-아리아드네와 끝까지 함께 하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우리는 지혜를 지닌 또 한명의 우월한 인간을 알고 있다. 아무도 답을 알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자, 그는 오이디푸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 중에 가장 우월한 자 오이디푸스가 당한 비극적 결말을 잘 알고 있다. 테세우스 또한 다르지 않다. 아리아드네의 실의 도움으로 크레타섬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먹이가 될 뻔한 아테네 백성들을 구한 테세우스는 중간에 위에 언급했듯이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아테네로 귀환한다. 하지만 생환할시 돛에 흰깃발을 달아두라는 아버지 아이게우스 왕의 당부를 잊어 자식이 죽은 줄 알고 낙담한 아버지가 자살하게 된다. 또한 훗날 테세우스는 페드라의 음모에 빠져, 자기 자식 히폴리푸스에게 저주를 퍼부어 죽게 만든다. 이처럼 지혜로운자, 승리하는 자, 우월한 인간 테세우스는 삶의 미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가장 처절한 고통을 맛보는 존재이다. 철학자 들뢰즈는 테세우스를 황소를 죽이는 자, 황소에게 멍에를 씌우는 자라고 부른다. 황소는 자유로운 삶의 상징이다. 고통스런 현실을 견디기 위해서 삶에 멍에를 씌우고, 자유로운 삶을 노동의 삶으로 바꾸는 자가 테세우스이며, 그 노동 속에서 가장 높은 성취를 거두는 자가 테세우스인 것이다. 니체는 동일한 이미지를 낙타 혹은 당나귀라 부른다. 무거운 짐을 지고, 현재의 고통을 묵묵히 견디며 사막을 가로지르는 낙타 혹은 언덕을 오르는 당나귀는 언젠가 오아시스에, 정상에 다다를 것을 믿으며 오늘의 고통을 감내한다.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는 낙심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낙소스 섬의 해안 절벽에 선다. 이 때 디오니소스가 나타나 그녀를 아내로 삼는다. 결국 미로를 빠져나가는 지혜는 테세우스의 것이 아니라 디오니소스의 것이다. 그렇다면 디오니소스가 깨달은 지혜란 무엇일까? 그것은 삶의 긍정이다. 그러나 디오니소스 방식의 삶의 긍정이란 현재의 고통을 견디면 언젠가 좋은 날, 미로를 빠져나갈 날이 있다는 유예된 긍정이 아니다. 디오니소스 식의 삶의 긍정은 현재에 대한 긍정이다. 그것은 미로 자체에 대한 긍정이다. 미로 자체를 긍정한다는 것은 미로 속에서 빠져나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디오니소스는 황소를 타고 다닌다. 그러므로 황소위에 걸터앉은 디오니소스는 반은 황소이고 반은 인간인 미노타우로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때문에 테세우스가 빠져나오고자 하는 미궁은 미노타우로스 그러니까 디오니소스의 집인 셈이다. 미로 속에서는 모든 길은 막혀 있지만, 동시에 미로 속에서는 길이 아닌 것이 없다. 모든 것이 길인 곳, 그곳이 미로인 것이다. 사랑의 증표로 디오니소스는 아리아드네에게 왕관을 건네고, 다시 그 왕관을 하늘에 던져 별자리를 만든다. 아리안느의 성좌는 미로 속에 빠진 인간을 위한 행복의 약속이다. 고통의 끝 이후에 맛볼 행복이 아니라, 고통 속의 오늘 느끼는 행복에 대한 약속이 바로 디오니소스의 약속이다.

우월한 인간이 아니더라도 고통 속의 작은 인간들이 오늘 누리는 작은 행복을 요즘 젊은이들은 '소확행'이라고 부른다. 새해, 삶의 미로 속에서, 그 미로를 빠져나가려 발버둥치기 보다는 그 속에서도 작고도 확실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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