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신상필벌과 보편 정의

[디지털인문학] 신상필벌과 보편 정의
    입력: 2018-12-20 18:11
위행복 한양대 중국학과 교수
[디지털인문학] 신상필벌과 보편 정의
위행복 한양대 중국학과 교수

'신상필벌(信賞必罰)'. 이는 지금으로부터 2200여년 전 전국시대의 사상가 한비자(韓非子)가 한 말로서, '확실하게 상을 주고 반드시 벌을 가한다'는 의미이다.

그는 순자(荀子)의 제자였는데, 인간 성품의 부정적 측면에 주목했던 스승의 관점을 계승함으로써 '신상필벌'의 원리를 세상에 제시했다. 나라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서는 강제적이고 타율적인 '법(法)'을 엄정하게 세우고 추상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한비자의 주장인데, 그렇기 때문에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예(禮)'를 주창했던 공자나 맹자와는 선명하게 대비된다.

한비자는 법이 엄격하고 일관되게 집행되어야 하며 원칙 없는 용서는 기강을 흩트릴 뿐이라고 주장했다. 죄를 사면해주는 사례가 많아지면 법을 쉽게 어기면서 처벌을 감면받는 요행을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는데, 작년 초 촛불혁명을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시도가 있었는지에 관해 진행되고 있는 조사가 한비자의 사고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폭력을 보유하는데, 40년 전 무렵 한국에서는 그 폭력이 자국민을 향해 행사되었고 대규모의 무고한 살상이 자행되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사태의 주모자들이 심판에 회부되었고,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이 최종 선고되었지만, '국민 대화합'을 앞세운 특별사면을 통해 구속 2년여 만에 모두 출옥하였다. 온 국민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겼던 그 일이 다시 '현실'로 되살아 날 수 있는 불씨가 행여 남아있었다면, 그것을 '과거'로 잠재울 수 있는 과정이 결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범죄를 엄하게 처리하면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 한비자의 생각이었다.

한비자는 이런 말도 했다. "반 필이 안 되는 무명베나 비단은 필부조차 놓치려 하지 않지만, 뜨겁게 달궈진 황금 수천 냥은 도척(盜척)도 줍지 못한다. … 벌은 무겁게 하면서 반드시 가하는 것이 좋다." 잘못을 범했으면 처벌하는 것이 응당하지만, 그것이 분명하고 가시적인 가르침을 보여주지 못하면 사회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며칠 전 국세청이 고액 세금 체납자의 명단을 공개했는데, 내지 않은 세금이 무려 5조 2천여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징벌적' 처리가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 같다. 황금이 아무리 탐나더라도 그것이 뜨겁게 달궈져 있다면 함부로 손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거운 징벌이 뻔히 눈에 보이는데도 범법 행위를 마구 벌일 수 있겠는가?

"신분이 높다고 해서 법이 아부하지는 않으며, 나무가 굽었다고 해서 먹줄이 휘지는 않는다. … 잘못을 처벌할 때는 고위관리도 피해가지 않고, 선한 일에 상을 줄 때는 평민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것이 한비자의 주장이다. 법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야 하고,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같은 절규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의도되고 계획되었으며 사회적으로 광범하게 악영향을 미치는 범죄를 엄중히 처벌함으로써 널리 경종을 울리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법 집행의 무원칙이나 불공정 혹은 야합이 관대함이나 화합의 이름을 빌어 행해져서는 안 된다. '범법'이 마땅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개인과 사회가 입은 직간접의 피해는 어떻게 보상되어야 하는가?

한비자의 생각은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회를 기반으로 형성되었지만, 그의 주장들 속에는 오늘날에도 곱씹어 볼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한비자를 재해석하고 창조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건강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의 경제적 수준이나 국가 위상은 시민의 안전과 생명 그리고 공동체의 이익과 질서를 모든 것에 앞세울 수준에 오래 전에 도달했다. 공동체의 대다수 구성원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엄정함과 정밀함을 갖추고서 공정하고 공평하게 집행되는 법체계의 수립을 더욱 진지하게 추구할 때가 되었다. '신상필벌'의 관철이 보편적 정의를 구현하는 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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