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타임스
  • 네이버 뉴스스텐드 구독
  • 채널 구독
  • 지면보기서비스

[최경섭 칼럼] 규제혁신 없는 한국 바이오 산업

최경섭 ICT과학부장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최경섭 칼럼] 규제혁신 없는 한국 바이오 산업
최경섭 ICT과학부장
"99달러(약 10만원)에 당신의 암을 알려 드립니다."

세계 바이오·제약 업계의 심장부, 미국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업체가 있다. 이 회사는 각 개인의 고유한 유전체 정보를 분석해 암을 비롯해 각종 질병과의 연관성까지 제공하는 DTC(소비자 직접 의뢰) 벤처인 '23andMe'다. 10여년 전 작은 유전자 분석업체로 출범한 이 업체는 기업 가치가 단숨에 약 2조원대로 치솟았고, 지난 8월에는 글로벌 제약사 GSK와 대규모 투자계약을 맺으면서 세계 바이오 업계에서 가장 핫한 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 업체가 단숨에 세계 바이오 업계에 혜성처럼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간편하고 싸면서도 각 개인들이 꼭 알아야 할 유전자 정보, 질병 데이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유전자 분석은 과거에는 각 개인이 정보를 파악하는 것 자체도 어려웠지만, 그 비용도 천문학적인 규모여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전자 분석에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ICT(정보통신기술) 기술을 가미해 암이나 치매, 파킨슨 병 등 각 개인별로 취약한 질환 정보를 족집게처럼 잡아준다.

미국에서는 개인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각종 질병의 취약성을 확인해 주는 DTC 업체들이 미래기업으로 커 가고 있다. 우리가 눈여겨 볼 부문은 '23andMe'와 같은 미국 내 유전자 분석 업체들이 이처럼 큰 부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육성하는 미국의 의료보건 체계와 규제시스템 이다. 미국 FDA(식품의약국)에서는 일반인들의 관심도가 큰 암 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등 10개 질환에 대한 DTC 서비스를 전격 허용했다. 이에 따라, 미국내에서는 질병 진단, 약물 처방과 관련된 일부 검사항목만 제한하고 대부분의 중요 질환과 관련한 유전자 분석 서비스가 가능하다. 대형병원을 비롯한 기존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컸지만, 개인들이 유전자 서비스를 쉽고 경제적으로 가능하도록 문호를 대폭 열어준 것이다.

이제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국내에도 미래 '23andMe'를 꿈꾸는 바이오 스타트업, 벤처들이 커가고 있다. 그러나 국내 DTC 기술개발 업체중 대부분은 국내에서 제대로 사업을 전개할 수 없다. 국내에서는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 피부노화 등 아주 기초적인 12가지 검사항목만 유전자 분석 서비스가 가능하고, 정작 비즈니스가 활발한 암, 치매 등의 질환정보 파악을 위한 유전자분석 서비스는 규제 때문에 원천 불가능하다. 국내 수많은 바이오 벤처들이 미래 시장인 DTC 에 도전하고 있지만, 기술력을 갖추고도 국내에서는 이를 검증할 수도, 또 사업화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규제의 악순환이 결국 성장산업인 DTC 기업들을 옥죄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DTC가 허용되는 유전자 검사 항목을 기존 12개에서 최대 150개로 늘리는 개선안을 만들었지만,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에서 통과가 거부됐다. 내년에 공청회와 시범사업을 거쳐 대상을 확대할지 여부를 재결정 하겠다고 하지만, 내년이면 또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크다.

DTC 시장은 대한민국 바이오, 제약업계가 처한 현실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나 정치권은 매 정권 마다, 또 해마다 제약, 바이오 산업을 미래 대한민국의 새로운 먹거리로 육성하겠다고 제시해왔다. 그러나 정작 바이오 산업육성을 위한 규제혁신은 늘 제자리 걸음이다. 그때마다 핑계도 똑같다. 정부는 규제혁신이 불발로 그칠때 마다, 기득권 세력 때문에, 국회의원의 입법저지 때문에 불발됐다고 항변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전국 구석구석에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프라를 갖추고도 원격진료 서비스가 10여년 넘도록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도서, 산간 등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서민층만을 대상으로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주장도 기득권 세력과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눌려 거부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2013년부터 추진해온 '게놈 프로젝트'를 최근 성공적으로 완비했다. 10만명의 암, 희귀 질환자에 대한 방대한 유전체를 5년 동안 해독하는 대작업이다. 게놈 프로젝트를 계기로, 향후 영국 보건의료 체계는 물론 영국내 의약, 바이오 산업 전반이 '퀀텀 점프'할 것이다. 기득권, 정치탓만 하며 10여년 넘게 '규제장벽'을 방치해 온 한국의 보건당국이 영국의 혁신 사례를 보면서 또 어떤 핑계를 내밀지 궁금하다.

최경섭 ICT과학부장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