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성 한양대 과기정책학과 특임교수
![[포럼] 규제개혁 없인 기업 해외行 못 막는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812/2018121102102269640002[1].jpg "[포럼] 규제개혁 없인 기업 해외行 못 막는다")
인간만사 새옹지마. 요즘 네이버와 카카오를 볼 때 떠오르는 고사성어다. 8년 전 국내 SNS 시장을 평정한 카카오는 규제의 벽에 막혀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인터넷은행은 대주주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고 야심차게 추진하는 차량공유 서비스도 택시업계의 반발 속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정작 국내 SNS 시장에서 패했던 네이버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린 후 라인 성공을 발판으로 인터넷은행, 가상화폐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과연 언제쯤 규제환경이 개선될까? 아무리 빨라도 2~3년은 걸릴 것 같다. 요즘처럼 기술변화 속도가 빠른 시대에 기업의 성패를 결정할 수 있는 긴 시간이다.
지금 정치권의 관심은 소득주도성장에 집중되어 있다. 내년 경제가 더 나빠지면 최저임금 인상 책임 논란과 맞물리면서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상황이 바닥을 치기 전까지는 파이를 키우기보다 지금 가진 파이를 어떻게 나눌지에 더욱 몰두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성장에 대한 관심과 규제개혁 입법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정부의 규제개혁 리더십도 기대하기 어렵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통과된 규제개혁 3법은 매우 특이한 입법사례다. 규제 신속 확인제, 실증 특례, 임시허가제라는 동일한 제도가 소관 부처가 다른 3개의 법률에 동시 반영되었다. 부처간 갈등조정이 얼마나 안 되는지, 정부의 규제개혁 리더십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공무원 이기주의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나중에 문제가 될 일은 가급적 피하는게 상식이 되었다. 공정거래위원회처럼 퇴직자 낙하산 인사가 논란이 된 부처도 있지만 오히려 점점 더 과감하게 산하기관에 낙하산을 보내는 부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에게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규제개혁에 나서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글로벌 시장의 2%에 불과한 국내 시장은 신기술 테스트베드로서 의미가 있지만, 국내시장에서 성공했다고 안주하면 해외에서 규모를 키운 대형 기업에 잡힐 가능성이 높다. 사실 별다른 천연자원 없이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 특성상 국내 규제는 다른 선진국보다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공격적인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특히 바이오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일수록 더욱 그렇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규제환경은 이와는 정반대다.
다행스럽게 한국산 자율주행차 '스누버'처럼 해외시장에 도전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당분간은 이런 기업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해외 지사를 내는 것은 물론 필요하면 본사를 옮길 각오도 해야 한다. 어떻게든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해야 한다.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이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점점 더 일자리가 줄어드는 국내 현실에서 너무 과격한 주장 아니냐, 빨리 규제를 개선해서 이들 기업을 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만큼 상황이 안 좋다. 2007년 국내 혁신생태계의 문제를 지적한 'IBM 한국보고서'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여기에서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포함해서 국가 R&D 시스템, 혁신인재 등 많은 분야의 문제점이 적시되어 있다. 유감스럽게도 10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10년이란 시간을 그대로 보내고 혁신환경이 악화되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는 상황에서 갑자기 개선되기를 기대하는 건 도둑놈 심보다.
질 때 잘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잘 지는게 중요한 시점이다. 이기려고 하면 안 된다. 미래의 싹이 될 만한 기업은 어떻게든 살리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나중에 혁신 환경이 좋아질 때 희망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 당장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싹수가 보이는 신기술기업을 국내에 잡아두는 것은 배고프다고 봄에 뿌릴 씨앗을 먹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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