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갑질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조양호 한진그룹 총수 일가를 향한 경영권 위협이 재점화했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 그레이스홀딩스의 대주주인 KCGI가 한진그룹 지주회사 한진칼의 2대 주주로 올라서며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행위를 고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우호세력을 늘려 조 회장 일가와 경영권을 놓고 정면 대결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그레이스홀딩스는 한진칼 주식 532만2666주를 장내매수로 취득해 지분 9.00%를 보유했다고 지난 15일 공시했다. 이로써 그레이스홀딩스는 한진칼 2대 주주 자리에 올랐다.
그레이스홀딩스는 강성부 전 LK투자파트너스 대표가 설립한 KCGI가 만든 KCGI제1호사모투자 합자회사가 최대주주인 투자목적 회사다. 강 대표는 국내 행동주의 펀드 1세대로 평가받는다. 행동주의 투자자는 최근 현대차그룹을 겨냥해 배당 확대, 회사 분할·합병 등을 요구하고 있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대표적이다.
실제 KCGI는 이번 지분 공시에서 "장래에 회사의 업무집행과 관련한 사항이 발생할 경우에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154조 제1항에서 허용하는 행위들을 고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시행령에 명시된 행위는 임원 선임, 해임 또는 직무정지, 정관의 변경, 배당의 결정, 분할·합병 등이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내년 주총에서 이사회 장악을 위한 이사진 교체를 시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한준 KTB투자증권 연구원도 "경영 참여 선언을 한 만큼 지배구조 개선 요구 압박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진칼은 대한항공, 진에어, 칼호텔네트워크 등을 자회사로 둔 한진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다. KCGI가 보유한 지분은 9%로, 조양호 회장 등 총수 일가 지분(28.95%)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우호 지분을 늘릴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국민연금(8.35%), 크레디트스위스(5.03%), 한국투자신탁운용(3.81%)가 지분 의결권을 위임할 경우 KCGI는 26.19%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기타 기관과 소액주주 등의 보유 지분(44.86%)을 추가로 확보할 경우 조 회장 일가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주주의 입장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의결권 대결이 이뤄지면 국민연금, 크레디트스위스 등을 자기편으로 설득하는 게 양측 모두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국민연금은 과거 '땅콩회항'부터 '갑질폭행' 등으로 이어진 총수 일가의 일탈 행위에 따라 주주권을 내세워 대한항공을 압박한 바 있다. 지난 6월 5일에도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라"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단순 투자로 지분 참여 목적을 밝힌 국민연금의 경우 주주총회 소집이나, 경영진 해임 안건 등을 상정할 수 없다. 이는 자본시장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개서한 등은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압박을 위해 쓸 수 있는 최대치의 견제 장치로 해석된다.
시장도 한진칼의 경영권분쟁에 요동쳤다. 16일 한진칼 주식은 전날보다 3650원(14.7%) 오른 2만8400원에 장을 마감했다. 같은 날 대한항공도 850원(2.61%), 진에어 350원(1.63%)이 상승했다. 배당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영진 교체, 임원 선임 등보다 회사 측과 원만하게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배당이기 때문이다.김양혁기자 mj@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