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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성장의지 재정비하자

장석권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입력: 2018-10-09 18:07
[2018년 10월 10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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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성장의지 재정비하자
장석권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어른이 아이를 보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얼른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어른 입장에서 '훌륭한 사람이 돼라'고 말한 뜻은 '국가사회에 봉사하거나 기여하는 모범적인 사람이 돼라'는 것일 터. '얼른 자라'라는 뜻은 '빨리 성장하여 제 몫을 다함으로써 모범적인 사회건설을 앞당기라'는 바람을 담은 것이리라.

패권의 동인인 산업혁명의 전개과정을 보면, 영국에서 1차 산업혁명이 태동한 것이 1780년 전후. 2차, 3차 산업혁명을 거쳐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지금까지 약 2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한민국이 공업화를 시작한 시기를 1960년으로 잡으면, 우리는 그 240년의 과정을 불과 60년 만에 밟아 온 게 된다. 서구문명과 비교했을 때 4배속으로 달려왔다는 얘기다.

물론 산업혁명을 통해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독일·미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가 현재 같은 위치에 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성과를 놓고 속도비교가 가능하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OECD라는 선진국 클럽에의 가입을 비슷한 성과라고 본다면 최소 3~4배속으로 달려왔다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렇듯 성장은 우리가 그동안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채 추구해 온 목표이자 몸속에 체화된 삶 그 자체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여기에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성장엔진이 말을 듣지 않았고 급기야 '성장은 해서 뭐 하냐'는 근본적 가치 비판까지 등장했다. 그 비판은 성장의 부작용을 경험했거나 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된 계층에서 나옴 직하나 꼭 거기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평등, 공정, 정의, 평화 등 관념적·형이상학적 가치가 생존, 안녕, 존속이라는 필수가치를 압도하면서 나타난 가치전도현상까지 가세한 것이다.

이러한 가치전도현상은 세계 최초로 나타난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우리보다 백년 이상 앞섰던 영국 독일 미국 등 선진국은 그러한 가치전도에 따른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겪어오고 있다. 우리가 작금의 저성장, 성장정체기에 겪고 있는 고용절벽, 저출산, 경제불안, 부동산시장의 불안정 등은 과거 고성장기에 체제 내부에 축적돼있던 불만과 반발의 정서가 한꺼번에 표출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 진단이 맞다면 우리는 이를 통해 해결책에 다가갈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평등, 공정, 정의, 평화라는 관념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생존과 안녕과 존속이라는 필수적 가치를 지켜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역사는 '고성장은 양극화를 동반하고 강한 분배정의의 실현은 성장추력을 약화시킴'을 입증하고 있다. 이율배반적인 두 가치를 함께 증대시키는 묘수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요즘 주변에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포용적 성장 등의 성장모델에 관한 논란이 뜨겁다. 한 때 서로 대척점에 있던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놓고 어느 성장모델이 옳으냐를 가지고 날 선 공방이 이어진 적도 있었다. 소득주도성장이 옳다면 혁신성장이 약화될 것이고, 소득주도성장이 효과를 내지 못하면 혁신성장이 힘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그런데 한번 돌이켜 보자.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가 과연 이론적 성장모형으로 성장을 견인한 적이 있었던가. 4대강 사업과 자원경제를 내세운 그린성장, 벤처창업과 중소기업 육성을 대기업과 연계시킨 창조경제성장이 실증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끌었는가. 더 나아가 정권을 불문하고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규제혁파가 어느 한 정권에서라도 경제성장의 유도에 성공한 적이 있는가.

혹시 우리가 공허한 성장모델에 천착되어 실체를 제대로 못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는 잘 했을 때 칭찬받고 못했을 때 야단맞는 학습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성장모델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가치전도에 의해 점차 파괴되고 있는 학습구조에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존과 안녕과 존속의 근원인 성장이 필수적 가치에서 멀어지고 있는 지금, 효과적 성장모델을 찾기에 앞서 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학습구조부터 재정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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