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

[DT현장]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
이경탁 기자   kt87@dt.co.kr |   입력: 2018-10-03 18:20
이경탁 ICT과학부 블록체인팀장
[DT현장]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
이경탁 ICT과학부 블록체인팀장

"기업들이 투자를 해야 고용이 늘고 경제가 사는데 말을 듣지를 않아서…."

국내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들이 밥 먹고 책상에 앉아서 흔히들 하는 발상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성장해서 시장에서 돋보이면 '생태계 파괴꾼'이라는 명칭을 붙여주고 두들겨 패려는데 어느 누가 투자를 할까? 이러한 사정은 수치로도 극명하게 비교된다. '4.2%'. 미국의 2분기 연율 GDP 성장률 수치로 4년 만에 분기 최고치를 달성했다.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2.8%다. '미국이 성장하면 한국도 같이 성장한다'라는 공식도 깨진 지 오래다.

최근 미국경제가 호황기를 맞으며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요인 중 하나로 실리콘 밸리 대기업들의 폭풍 성장과 투자를 꼽을 수 있다. 굴뚝 산업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들이 포진한 한국과 달리 현재 미국 증시의 시가총액 1위에서 5위인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은 모두 실리콘 밸리 IT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미국을 넘어 글로벌 시가 총액에서도 1위에서 5위를 나란히 차지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글로벌 경제권이 디지털 경제로 진입하며 IT 산업이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되고 있다. 한국은 '혁신경제'로 4차산업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루자고 요란하게 떠들면서도 정책은 역행 중이다. SW 경쟁력을 높이자면서 헛발질이다. SW 산업의 수출 효자 역할을 하는 게임산업은 규제에 성장이 막힌지 오래다. 또 스타트업 벤처 생태계를 키우자고 하지만 온갖 규제로 영세 기업 이상으로 못 크게 한다. 기업들의 덩치와 체급을 더 키워줘 외국계 글로벌 기업들과 붙게 해줘야 하는데 이런 가능성이 있는 기존 기업들마저 '대중의 분풀이'를 위한 정치적 희생물로 삼는다.

특히 이번 정부의 핵심 인사 중 한 명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포털사업자들의 '시장지배력' 남용 대응방안을 강조하고 있다. IMF 사태 이후 2000년대 IT 산업을 적극 육성하며 꽃피웠던 결과물들을 더 키우지 못할 망정 잡아먹겠다는 것이다. 지금의 정권을 있게 해 준 자신들의 전신이자 뿌리가 되는 정부에서 피운 결실물을 부정하는 꼴이다.

정부가 핵심표준기술을 보유하거나 독과점 플랫폼을 선점한 국내 기업들이 시장에서 잘나가며 확장하는 것을 못 보겠다는 상황이다. 다른 것은 하지 말고 계속 순수 검색 포털로서 만족하고만 있으라는 것이다. 융합이 키워드인 디지털 시대에 '장인 정신'을 요구하는 꼴이다. 반면 해외 기업들에 대해서는 사대주의 정신이 남아서인지 신중한 규제와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사이버 골목상권'을 지키기 위해 포털 기업의 성장과 확장을 막겠다는 심산이다. 물론 취지는 좋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이미 빵집 골목상권 사태에서도 실패했던 사례를 봐왔다. 소상공인을 살리겠다는 목표로 추진된국내 대기업들의 프랜차이즈 규제는 외국계 프랜차이즈의 골목 상권 대거 진출로 귀결됐다. 네이버, 카카오를 죽인다고 새로운 국내 IT 생태계가 더욱 성장하고 건전해질까? 현지에 세금조차 몇 푼 내지 않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외국계 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장악해나가며 종속은 더 심화될 것이 뻔하다.

네이버, 카카오 등을 아직 포털서비스 기업으로 분류하지만 이들 기업은 이미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블록체인, 콘텐츠 등 첨단 핵심기술을 집중 개발 및 투자하며 관련 서비스에 적용, 테크 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테크 기업들은 물론 현 정부 인사들이 증오하는 재벌집단 대기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

중국의 알리바바, 바이두, 화웨이 등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내수시장을 장악하며 덩치를 키웠다. 독과점 논란은 일지도 않는다. 덩치를 키운 중국 IT 기업들은 해외로 뻗어 나가며 미국 기업들과 세계 시장에서 전면전을 벌일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무역 공정성을 지키려는 한국이 중국처럼 자국 기업을 대놓고 보호하고 키우지 못하겠다면, 최소한 규제에 있어 외국계 기업과의 역차별, 형평성 문제라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이는 시대에 맞지 않는 국수주의적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이미 전 세계가 그러한 흐름으로 흐르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EU(유럽연합)가 최근 발효한 GDPR(일반개인정보보호법)의 궁극적 목표는 외국계 기업을 규제하고 자국 데이터 산업을 키우자는 것이다. 대만인들과 만나보면 글로벌 대기업이 많은 한국경제가 부럽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과거 한국경제가 어떻게 신화를 이룩했는지 과거를 다시 한 번 돌이켜 볼 시점이다.

이경탁기자 kt8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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