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낙영 칼럼] 이런 규제혁파론 新산업 낙오국 된다

[서낙영 칼럼] 이런 규제혁파론 新산업 낙오국 된다
서낙영 기자   nyseo@dt.co.kr |   입력: 2018-09-16 18:07
서낙영 논설위원
[서낙영 칼럼] 이런 규제혁파론 新산업 낙오국 된다
서낙영 논설위원
"우리 경제와 사회가 허울뿐인 규제개혁과 혁신불감증에 빠져 있어요. 신산업의 낙오국이 될까 두렵습니다." 최근에 만난 스타트업 벤처를 운영하는 한 지인의 한탄은 깊었고, 적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합법인 서비스가 한국에서는 꼭 예기치 않은 곳에서 규제의 굴레에 갇혀, 불법이 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거대 시장을 형성하며 미래 국가경제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는 4차산업혁명 신산업 분야가 다 그렇다. 세계 각국은 인공지능(AI)·블록체인·빅데이터·클라우드 등 미래 신산업의 기술패권을 놓고 국가적 혁신과 규제혁파에 나서고 있는데, 유독 한국만 제자리 걸음이다.

2000년 닷컴 버블이 꺼지는 상황에서도 창업과 혁신의 열기만은 그 어느 나라 못지 않았던 것이 우리다. 현재는 어떠한가. 우리의 벤처 생태계를 이식해 간 중국이 선전을 비롯 제2, 제3의 실리콘밸리를 만들며 신산업 강국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보는 처지가 됐다.

스타트업과 기술혁신의 성장 정도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유니콘 기업'만 봐도 그렇다. 중국 기업조사기관 후룬연구원 자료를 보면, 중국은 유니콘 기업이 올해 6월기준 162곳이며 상반기에만 새롭게 올라선 유니콘 기업만도 52개사에 달한다. 중국과 경제규모가 다름을 인정하더라도 손으로 꼽아야 하는 우리와 너무나 큰 격차다.

미국과 중국이 올들어 500억달러 규모의 관세폭탄을 주고받는 무역전쟁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 실상은 5G 통신을 비롯한 신산업을 둘러싼 기술패권 경쟁이라는 분석도 같은 맥락이다. 5G는 향후 20년내 세계시장 규모가 12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는 차세대 매머드 시장이다. 중국은 이 시장에서 기지국 등 인프라와 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화웨이는 한 해 1조원 이상을 5G 연구개발에 쏟아 부을 정도다. 미 CNBC는 중국이 기술굴기로 차세대 시장을 선점해 나가는 것을 보호무역으로 견제하는 것이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 중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은 이미 핀테크와 공유경제 서비스 등에선 세계적 수준으로 가고 있다. 중국판 우버 택시인 '디디'는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잡았고, 알리페이와 같은 모바일 결제는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이 돼 있다.

이 같은 격차의 근원적 원인은 앞서 스타트업 대표가 지적한 것처럼 규제혁파가 겉돌고 혁신의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데 기인한다. 이제라도 과감한 네거티브 규제로의 정책전환에 진력을 다해야 한다. 일일이 모든 것을 규제의 틀에 맞추는 현재의 포지티브 규제 환경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미래 신산업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세계 각국이 꼭 필요하다고 규정한 규제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방식을 도입하는 이유다. 특히, 영국을 비롯 주요국에서 새로운 신산업에 한시적으로 규제를 없애주는 '규제샌드박스'를 적극 적용하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신성장 산업 분야에 우선적으로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법제화가 안된 상황에서 '말의 성찬'이나 '공염불'로 끝나는 것이 예사다. 정치권력이나 관료사회의 망국적 규제 끌어안기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앞에서는 규제를 없애겠다고 하면서도 뒤로는 규제를 만드는 '규제 공화국'의 오명이 괜한 것이 아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09년부터 2016년까지 8년간 신설 강화된 규제가 9715건인데 규제가 줄어든 것은 고작 837건임이 이를 말해준다.

9월 정기국회에 올라온 규제샌드박스법이라고 할 수 있는 산업융합촉진법과 정보통신융합법부터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여야가 신산업 발전법을 쟁점법안 다툼의 볼모로 삼아선 안된다. 관련 상임위 통과조차 안된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이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도 마찬가지다.법 제도의 혁파와 함께 혁신에 기반한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혁신의 DNA가 있다. 세계 경영계의 그루인 피터 드러커가 그의 저서 '넥스트 소사이어티'에서 "한국은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최고의 국가 중에 한 곳이다"며 극찬했던 것이 불과 10여년 전이지 않은가.

경제 위기 극복의 해법은 항상 시장과 기업에 있어 왔다. 친 시장과 기업에 맞춘 규제혁파가 기업인들의 혁신정신을 깨우며, 도전과 성취의 선순환을 춤추게 해야 한다. 그래야 인터넷 등 정보통신 인프라와 관련 신산업에서만큼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ICT 강국 코리아'에서 한 때의 명성만 남은 '신산업 낙오국' 전락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서낙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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