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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월드컵은 열기, 경제는 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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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시론] 월드컵은 열기, 경제는 냉기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2018 러시아 월드컵은 희비가 교차하는 장엄한 드라마, 그 중의 압권은 세계최강 독일과의 싸움에서 한국의 2 대 0 승리였다. 16강에는 못 갔지만 28일 새벽 독일을 꺾는 모습을 지켜본 우리 모두는 짜릿한 감동을 느끼며 행복했다. 스웨덴과 멕시코에 패배한 아픔을 털어내고 한국축구의 새로운 희망을 쏜 것은 무엇보다 값진 수확이다.

세계 언론은 한국이 독일에 이긴 걸 이변이라고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독일 선수들보다 더 많이 뛰었다. 경기결과 나타난 통계다. 이변이 아니라 그렇게 뛰었기에 이긴 것이다. 승리를 마음껏 즐기지 못할 까닭은 없지만 거기에 만족하거나 머물러서는 안 된다. 패배에 절망하고 있어서도 안 된다. 16강, 8강, 4강 그리고 우승까지 계속 도전해야 하는 게 스포츠이고 경제이고 또한 우리의 삶이다.

승리를 기뻐하고 패배에 허탈해하는 마음을 어디에 숨기겠는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스웨덴과 멕시코에 지고 난 후 특정선수를 매도하고 인격적인 비난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악의적인 청원이 쇄도, 소중한 공간이 분노의 배설장이 됐다고 했다. 이런 짓거리는 축구사랑도 더욱이 애국도 아니다. 그런 자들은 독일전 승리를 즐거워할 자격이 없다. 선수와 감독을 비난하고 매도하기에 앞서 한국축구의 경쟁력을 높일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미래를 열 수 있다. 비난하고 울분을 토하는 건 대책이 아니다.

월드컵 시즌만 되면 우리 언론에는 어느 팀에는 이기고 어느 팀에는 비겨 예선을 통과한다는 시나리오가 나돈다. 축구팬들은 그걸 믿고 그런 시나리오대로 진행이 안 되면 허탈해하고 분노한다. 하지만 국내 K리그 경기가 열리는 썰렁한 경기장 관중석과 유소년축구가 어떤 상황에 있는가를 생각해보라. 그런 바탕에서 세계적인 선수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건 과욕이나 다름없다.

축구에 열광하고 밤을 새우며 거리응원을 하는 열정을 제대로 살리면 축구든 경제든 이뤄내지 못할 건 없다. 축구에 쏟는 열정 그 자체는 우리가 무엇이든 이루어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축구에 이겼다고 잘 사는 것도, 졌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경제는 생존의 문제다. 축구에 지는 건 안타까워하면서 경제 스러지는 일에는 왜 나 몰라라 하는가.

축구선수가 페널티킥을 허용하는 반칙을 저질렀다고 비난하지만 상대의 공격을 막기 위한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실수였다. 그런 실수를 범죄처럼 비난하면서 산업현장에서 벌어지는 불법파업과 반칙에는 왜 말이 없는가. 열심히 뛰지 않는 선수는 운동장에 설 수 없는데 산업현장에는 뛰지 않는 선수가 즐비하지 않은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우리는 4강에 올랐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의 문제점은 투지와 체력약화라고 보고 공간과 시간을 선점(先占)하고 지배하는 전략을 썼다. 그건 상대 선수보다 더 많이 뛰게 하는 전략이다. 지옥훈련에 비견할 정도의 체력단련을 통해서 지치지 않고 뛰는 힘을 길렀다. 당시 우리 선수들이 운동장을 누비며 쉼 없이 뛰던 모습을 상상해 보라.

한국경제가 성장하려면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손질하고 투자와 기술혁신을 지속하면서 더 많이 더 빨리 뛰어야 한다. 남이 쉴 때 일하고 남이 걸을 때 뛰어야 이긴다. 근로시간 단축보다 중요한 것은 정해진 시간에 얼마나 더 많이 뛰느냐다. 월드컵은 한 달 동안 싸워 우승팀을 가리지만 경제전쟁에는 정해진 기간도 없다. 축구에 있는 하프타임이 경제에는 없다. 계속 뛰어야 한다. 경제는 마라톤이고 대장정이다.

한국축구의 수준,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정확히 알지 않고 이 정도면 되겠지 하면서 서성이다가 세계시장에서 밀려나는 결과를 알 때에는 이미 늦다. 출중한 개인기를 가진 선수를 길러내고 그런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조직력은 축구에서도 산업현장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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