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디지털산책] 스타트업과 `헝그리 정신`](http://contents.dt.co.kr/images/201806/2018062702102669607002[1].jpg "[디지털산책] 스타트업과 `헝그리 정신`")
얼마전 우리 사무실을 방문한 글로벌 공유오피스회사인 위워크의 로이 애들러씨와 함께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강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나오는 글로벌 지향성, 해외 IT기업에 거액에 매각된 스타트업 성공사례, 군대경험에서 나오는 창업 아이디어, 평등한 토론의 문화 등이 나왔다. 그런데 그는 한국스타트업 생태계가 이스라엘을 모델로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적으로 둘러싸인 아주 작은 나라라는 절실함과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발달하고 그에 맞는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일례로 이스라엘에서 제일 큰 회사가 어디인지 아느냐고 했다.
그 회사는 테바(Teva)다. 복제약으로 유명한 제약회사인데 뉴욕증시에 상장되어 있고 시총이 85조원에 달한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많은 나라들의 금수조치로 이스라엘에서는 약을 구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테바 같은 회사가 열심히 해외의 약을 구해서 복제해서 만들기 시작했고 이게 그 거대회사의 시초가 됐다는 것이다. 보안회사 체크포인트 등 많은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기술이 적과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는 이스라엘군대에서 나오기도 했다. 절실해서, 필요해서 그런 스타트업이 나왔고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최근 노르웨이에 다녀왔다. 노르웨이는 1인당 국민소득이 7만달러가 넘는 부자나라다. 그런 노르웨이에서도 요즘 스타트업을 키우기 위해 한창 붐이 일고 있다. 노르웨이는 워낙 석유산업에서 그동안 돈을 많이 벌었는데 2014년 유가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구조조정이 있었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신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노르웨이 투자자에게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창업자들에게 워낙 정부지원이 많고 또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어서 성공하겠다는 '절실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웃나라인 스웨덴에 비해 아직까지 좋은 성공사례가 많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난주 21~22일 부산에서 스타트업 생태계 콘퍼런스를 열었다. 여기서 크리마팩토리 김윤호 대표는 '지원사업 굴레에서 벗어나 투자없이 자립하기'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창업 경험을 발표했다. 2012년 대학생시절 창업에 나섰던 김대표는 초기 사업자금이 없어 정부지원사업을 쫓아다녔다. 2년간 약 2억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그러면서 문득 자신이 고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부지원사업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정부지원사업은 마약과 같습니다. 매출을 올리는 것보다 정부지원금을 받는 것이 더 쉽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받을 거 다 받으면, 그 다음에 지방을 돌면서 받을 거 다 받고, 그러고 나면 또 R&D 사업이 있습니다."
그는 어느날 자립에 대한 다짐을 했다. "매출로 자립할 수 없다면 창업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6개월 내에 목표한 매출을 내지 못하면 포기하자고 배수의 진을 쳤다. 그때 처음으로 '절실함'을 느꼈다고 했다. 집중해서 고객을 만나고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니 의외로 빨리 결과가 나왔다. 2014년부터 흑자로 전환했고 지금까지 투자를 받지 않고 회사를 잘 성장시키고 있다. 김대표는 정부지원사업은 초기창업자에게 최고의 혜택이지만 매몰되지 말고 일정 시점이 되면 반드시 졸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흔히들 스타트업은 '헝그리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 헝그리정신이 바로 성공에 대한 절실함인지도 모른다. 이런 절실함이 없이 정부지원금이 많다니까 유행처럼 나도 창업 한번 해볼까 나서서는 성공하기가 어렵다. 정부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것,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보고 그 분야에서 창업이 이뤄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자금이 초기 단계의 마중물이 되고 나중에는 자립할 수 있도록 적절히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뭐든지 지나치면 안좋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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