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3김 시대` 실질적 종언

23일 오전 8시 15분쯤 노환으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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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타임스 이호승 기자]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2세다.

김 전 총리 측에 따르면 김 전 총리는 이날 오전 8시 15분쯤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오전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119구급대에 의해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도착했을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병원 측이 밝혔다.

김 전 총리는 노환으로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 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3김 시대` 실질적 종언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1962년 전권대사 자격으로 한일협정에 나선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 <연합뉴스>

김 전 총리는 1926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했고 공주중·고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김 전 총리는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까지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시대'의 한 축이었던 김 전 총리는 1981년 처삼촌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했고, 같은 해 중앙정보부를 창설, 초대 부장에 취임했다.

김 전 총리는 공화당 창당과정에서 증권파동을 비롯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에 휘말리면서 63년 2월 '자의반 타의반' 첫 외유를 떠났고,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의 주역으로서 핵심쟁점이던 대일 청구권 문제와 관련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으로 6·3사태가 일어나자 1964년 또다시 2차 외유길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1971년부터 1975년까지 4년 6개월 간 국무총리를 지내며 승승장구했으나, 1980년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몰려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86년 귀국한 뒤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다음 해에는 13대 대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종합> 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3김 시대` 실질적 종언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1989년 당시 김대중 평민당(가운데), 김영삼 민주당(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서울 가든호텔에서 회동을 갖고 특위정국 마무리 등 새해 정국운용에 대해 논의하기 앞서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1988년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35석의 국회의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면서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서 3당 합당과 김영삼 당시 대선 후보를 지원했고, 1997년 대선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다시 대선에 출마했지만, 선거 막바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성사시키고 김대중 당시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해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공동정권은 내각제 파동 문제와 16대 총선 과정에서의 두 정당 간 앙금은 2001년 9월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간 가결 및 공조파기로 연결됐다. 김 전 총리는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자신은 10선에 실패하고 자민련도 4석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참패를 당했다. 김 전 총리는 이 직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김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이다. 쿠데타 원조에서부터 중앙정보부 창설자, 풍운의 정치인, 영원한 2인자, 경륜의 정치인, 처세의 달인, 로맨티스트 정치인 등 수 많은 별칭이 김 전 총리에게 붙은 것만 봐도 그렇다.

김 전 총리의 서거로 '3김 시대'는 실질적 종언을 고하게 됐다.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복리씨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치러질 예정이다.이호승기자 yos54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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