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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산책] 한국과 `투키디데스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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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장
[디지털산책] 한국과 `투키디데스의 함정`
고대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장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공하자 스파르타의 엘리트 군단 300명이 자신들의 목숨을 희생해 페르시아군의 진군을 저지한다. 한편, 살라미스해전에서는 아테네 사령관을 필두로 한 그리스 연합군이 3분의 1에 불과한 병력으로 페르시아 함대를 격파한다. 이 이야기는 영화 '300'을 통해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쟁 이후 눈부신 문명을 꽃피우며 평화롭게 공존하던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끔찍한 대규모 전쟁을 벌이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인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두 국가 간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지중해의 절대 맹주였던 스파르타가 신흥세력으로 부상한 아테네에게 큰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이처럼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세력이 기존 지배세력의 지위를 위협할 때 구조적 혼란과 극심한 압박이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소한 사건이나 외교관계에서의 작은 불씨가 예기치 못한 대규모 충돌을 촉발할 수 있다.

오늘날 절대강국 미국과 이를 위협하는 신흥 패권국가 중국의 대립각은 투키디데스가 준 교훈을 연상케 한다. 두 국가 간 견제와 대결이 가시화되면서 곳곳에서 마찰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가 남중국해 분쟁이다. 남중국해는 중국,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6개국으로 둘러싸인 바다를 말한다. 이곳은 해양자원이 풍부해 오랫동안 각국이 해상 영유권과 관할권으로 다투고 있는 지역이다. 최근엔 중국이 인공섬을 건설하고 H-6K 폭격기의 이착륙 훈련을 실시하자 미국이 항행의 자유를 해치는 군사력의 확장이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둘째는 무역전쟁이다. 트럼프는 중국에게 2000억달러의 대미무역흑자 감축, 지적 재산권 보호, '중국 제조 2025' 전략업종에 대한 보조금 지급 금지 등을 요구하며 각종 보복관세와 비관세 장벽 등으로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이에 대응해 "어떤 상황에서도 국익을 결연하게 수호할 것"이라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셋째는 쩐의 전쟁이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회원국수가 벌써 86개국이다. 독일, 영국, 인도, 러시아로부터 시작해 지금은 남미, 중동, 동유럽, 아프리카 국가들까지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있다. 당초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인프라 건설을 목적으로 출범했으나 지금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은행(WB)보다 더 많은 납입자본금과 함께 국제기구로 변신 중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의 한복판에 대한민국이 있다.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협상카드다. 따라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 양상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중국과 미국이 바로 한국의 제1, 제2 교역국이라는 점이다. 작금의 양국 간 통상마찰이 한국 경제의 최대 위험요소인 이유이기도 하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인한 관세장벽, 환율조작국 위협, 보호무역 강화 등을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최근 성공적인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기대가 커져가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까지 가는 길이 순탄치는 않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 관계국들의 탐색전은 계속해서 첨예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자유무역과 세계화가 진전된 30년 동안 세계는 평화와 성장을 구가했고 이 기간에 대한민국의 경제가 놀라운 압축성장을 이룩했다는 걸 상기해 보라. 한반도 평화체제가 현실화될 경우, 가장 큰 수혜국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대기업 중심 산업화 성장 전략의 결과로 발생한 소득양극화, 기회불평등, 특정산업 편중화, 고용악화 문제 등을 일시에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큰 수혜자는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중앙회와 개성공단기업협회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기업 중 96%가 공단 재개시 재입주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중소기업이 남북 경협사업을 80% 이상 수행하고 그 혜택 또한 중소기업이 80% 이상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는 최근 설비 가동률 하락, 인건비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 제조기업들에게도 중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급변하는 대외정세 속에서 우리나라가 슬기롭게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재도약이 '중소기업 중심 경제'로의 전환에 달려 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경제적 이니셔티브에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여기에서 파생된 대립과 헤게모니 싸움으로 인해 우리 경제가 넛크래킹 상태라는 점이다.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이 빨리 완성되고 고비용·저효율의 산업구조를 극복하여 기업들이 다시 한 번 기업가정신을 불태우는 활기찬 아침의 나라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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