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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654) 생리대와 케모포비아

생리대 VOC 공포, 과학적 근거 없어
통풍개선·세균증식 안전성 고민해야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입력: 2018-05-22 18:00
[2018년 05월 23일자 14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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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654) 생리대와 케모포비아
생리대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74종의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에 대한 전수조사도 쓸모가 없었다. 일회용 생리대를 평생 사용해도 괜찮다는 식약처의 주장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이번에는 공영방송이 앞장을 섰다. 식약처의 무능과 무기력도 안타깝지만, 맹목적으로 케모포비아를 부추기는 전문가들도 실망스럽다. 과학적으로 어설픈 주장을 앞세워 소비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언론의 책임도 무겁다.

생리대에 VOC가 들어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상식이다. 제조사가 몰래 감춰놓은 것도 아니다. 방수 기능의 비닐 외피에 칠해져 있는 접착제가 VOC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접착제의 VOC가 비닐 방수막을 통과해서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런 사실을 분명하게 고려하지 않은 유해성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생리대는 식약처가 고시한 방법으로 포름알데히드·형광증백제·표백제의 잔류량 검사를 거친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산 생리대에는 '무포름알데히드·무형광증백제·무염소표백제'라는 표시가 붙어있다. 그런 제품에 소비자의 건강을 위협할 정도의 VOC가 남아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점막을 통해서 VOC가 더 쉽게 흡수되고, 그렇게 흡수된 VOC가 독성이 더 강하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은 어설픈 것이다. 점막이 일반 피부보다 민감하고 취약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체의 점막은 대부분 세균이나 VOC와 같은 유해물질의 침입을 막아주는 끈적끈적한 점액으로 덮여있다. 여성 생식기의 점막도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생리대에서 검출된 VOC의 총량은 권고기준에 해당하는 실내 공기를 1분 동안 호흡할 때 흡수하게 되는 VOC의 양보다도 적다.

여러 가지 VOC가 함께 흡수되면 '칵테일 효과'로 독성이 더욱 증폭될 것이라는 주장도 어설프기는 마찬가지다. 본래 칵테일 효과는 2가지 이상의 의약품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에 약효가 증진되는 경우를 말한다. 항암제처럼 치료가 어려운 질병의 치료에 주로 활용된다. 그런 효과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VOC에서도 나타난다는 과학적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만약 VOC의 칵테일 효과가 정말 심각하다면 주유소·세탁소·화학공장·주방의 작업자들을 더 걱정해야 한다.

생리대에 프탈레이트·농약·다이옥신이 들어갈 수 있다는 주장도 황당하다. 딱딱한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프탈레이트를 생리대의 부직포에 사용할 이유는 없다. 순면이나 천연펄프로 만든 부직포나 폴리아크릴레이트 계열의 흡수체에 농약이나 다이옥신이 잔류할 것이라는 우려도 부질없는 것이다.

여성단체의 어설픈 폭로로 시작된 생리대의 VOC 논란은 이제 정리를 해야 한다. 극미량의 VOC 분석이라는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식약처의 엉성한 분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식약처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폐쇄적인 식약처의 운영을 확실하게 개방해야 한다. 제조사가 의도적으로 첨가하지 않은 VOC는 전성분 표시제로도 관리할 수 없다.

정부가 뒤늦게 일회용 생리대의 건강영향 예비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생리대의 건강영향 조사를 환경 문제를 전담하는 환경부가 시행하는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생리대의 관리기관은 식약처이고, 여성의 건강 문제는 보건복지부의 소관 사항이다.

생리대의 안전성에 대해 우리가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통풍을 차단시키는 방수막이 여성의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과 장시간 착용에 의한 세균 증식의 위험성이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학교의 보건 교육도 강화해야 하고, 제품의 포장도 개선해야 한다.

일회용 생리대의 현실적인 대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전통적인 면 생리대는 절대 대안이 될 수 없다. 서구 사회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삽입형 생리대(탐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삽입형 사용자가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언제까지나 문화적 차이를 고집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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