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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스토리] 벚꽃처럼 짧은 생, `큰 그릇`으로 피어라

최경아 박사 

입력: 2018-04-26 18:00
[2018년 04월 27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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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스토리] 벚꽃처럼 짧은 생, `큰 그릇`으로 피어라
최경아 박사

(9) 요트 편
특별한 날 가족과 함께 요트 나들이
봄향기·불꽃축제 등 행복 동행 만점
배려 없는 거친 말과 행동 눈엣가시
넓은 마음과 멀리 보는 지혜 가져야


봄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꽃봉우리들은 봄만 되면 어찌 알고 저렇듯 예쁘게 고개를 내미는가. 우리는 한 해가 가면 주름살이 생기는데 꽃, 나무들은 늘 새롭게 화장하고 자태를 뽐내는 거 보니 늙지도 않나 보다. 얼른 정열적인 여름날이 와서 선셋 크루징을 하고 싶다. 봄향기에 자극받아 한껏 기대와 설레임에 부풀어서 꿈을 꾸고 있다. 파워요트 안에서 즐기는 와인, 핑거푸드, 그리고 달콤한 음악, 그 어떤 것도 감성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한강에서 펼쳐진 서울세계 불꽃축제를 잊지 못한다. 요트 위에서 바라보는 불꽃들의 향연이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형형색색의 보석들이 내 가슴에 떨어질 때의 환희와 짜릿함으로 온몸이 매료된다. 불꽃들이 예쁜 이유는 서로 다른 형태 빛깔들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처럼 서로 함께 해서 더욱 아름다움을 격상시킨다.

한화세계불꽃축제에서는 과학적이고 다양한 기법과 연출, 컬러감각과 디자인 등 각 나라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불꽃놀이를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한강 근처 돗자리를 깔고 앉아 하늘 향해 사랑을 쏘아 올리는 것도 낭만적이다. 한강 근처 식당은 이미 예매성사를 이뤘고 높은 빌딩에서 바라보는 야경도 멋지다. 보트나 요트를 대여해 삼삼오오 즐기는 것도 추천한다.

서울세계불꽃축제는 물론 요트를 타고 일몰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간이 중요하다. 늘 그렇지만 어디나 늦게 오는 사람들이 꼭 있게 마련이다. 선셋시간에 맞춰 강이나 바다 위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단 한 사람 때문에 기다리는 경우 이것은 모든 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남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는 행위야말로 '시간도둑'이다. 타인의 일정이나 시간을 약속해놓고 지키지 못하거나 혹은 늦는 행동은 매너가 아니다. 돈을 빼앗아야만 도둑이 아니다. 인생에 있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허비하게 만든 주범이 되는 것이다. 그 한사람 때문에 설레이던 일몰시간을 놓치고 그냥 어두컴컴한 밤하늘만을 바라봐야한다면 그건 선센크루징이 아니다. 요트에 있어서 코리안타임은 적용되지 않는다. 예쁘면 다 용서된다고들 하지만 요트 내에서 시간도둑이나 무 매너인 경우는 용납될 수 없다. 요트에 있어서 시간은 그 어떤 규범보다 무겁고 세다. 필자가 지인들과 요트 세일링을 즐기러 하는데 한 여인이 늦게 도착을 했다. 속이 탄다.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라고 했거늘. 일각이 3년처럼 느껴졌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와서는 예쁜 척하고 뾰족구두 신고 요트에 탑승하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정말 금기사항이다.

늦게 와서 후래자 3배를 마시겠다며 와인 세잔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결국 취해서 와인을 시트에 흘리는가하면, 밤바람이 너무 좋아서 신난다며 흥에 겨워 흔들거리다 결국 와인잔을 깨는 추태를 부리기도 했다. 그녀 때문에 아마 내 수명이 한 달 정도 줄었을 것이다. 선주에게 너무나 창피하고 미안했던 기억이 있다. 요트 렌탈시간을 지켜주는것도 예의다. 늦게 온건 자기사정이지 늦게 출발했으니 추가로 요트를 더 태워달라고 조르거나 심지어는 요트 위에서 고성방가 하는 행위도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는다.

어떤 이는 가족들과 와서 아이들이 요트 내 가죽시트에 낙서를 하거나 심지어 장난치다 음식물 등을 흘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 선주 마음은 찢어진다. 지인의 자식이니 뭐라고 야단칠 수도 없고, 속상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럭셔리 파워요트 내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혹은 낚시해서 매운탕 끓여먹자는 등 지나친 요구는 피해야 한다.

물론 배타고 나가서 낚시하며 즐기는 피싱보트도 있다. 몇 년 전 피싱보트에 몸을 싣고 낚시를 한 적이 있다. 낚시애호가들이 말하는 '손맛' 이라는게 바로 이런 걸까. 손 끝에 느껴지는 쾌감은 짜릿하고 묵직한 무언가가 나를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점점 무거운 기운이 좋게 느껴지며 나와 기싸움이라도 하듯 온몸에 밀려든다. 신세대들이 흔히 말하는 낚인다는 의미가 바로 낚시에서 나온 것이리라. '낚이다'라는 것은 낚시로 물고기를 잡다라는 의미인 '낚다'의 피동사다. 혹은 뉴스나 정보에서 제목만 보고 사이트를 검색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우리는 낚였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제목이 그럴 듯해서 혹은 선정적이라서 자세히 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이용하는 것이다. 약한 속임수나 함정에 빠져드는 경우도 있지만 반면 귀여운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휴대폰 이모티콘에서 "나 낚인거임?" 하면서 연인들 사이에서 은근히 당신의 표적에 걸려들어서 좋다는 의미도 있다. 언어의 다각화라고 볼 수 있다. 내가 관심 있고 괜찮다 싶은 사람에게 낚인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우리는 서로 낚고 낚이며 살아가는 낚시꾼과 물고기들 같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낚여 보고픈 충동을 느낄 때도 있으리라. 좋은 의미의 낚인다는 말은 무척 사랑스럽다.

언어에도 이렇듯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데 우리의 삶에는 얼마나 다양한 인생들이 있을까. 사람도 제각각 다른 생김새, 성격, 내공의 깊이 모두가 다르다. 흔히 그릇의 크기로 비유하곤 한다. "저분은 그릇이 크지 않다, 혹은 큰 그릇이다"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저마다 인품이나 마인드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쩌면 이 사회가 공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제사상을 보더라도 밥그릇, 국그릇, 대접 등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제기들이 있다. 여기에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 모두들 국 대접처럼 살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 대접만 잔득 올라올 수는 없는 것이다. 잔칫상에도 마찬가지다. 간장종지부터 밥그릇 국그릇 접시 등 모양도 크기도 가지가지다. 간장종지에 국을 담으면 넘쳐흐를 것이요 조금만 사용하는 간장을 큰 국 사발에 담을 필요도 없다.

인간사도 동일하다. 사회적 리더십을 지닌 리더의 경우 존경받고 내공이 깊은 분들도 있지만 간장 종지 같은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모두 잘난 사람만 있어야 사회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그릇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들도 자신에 맞는 포지션과 크기가 있다. 이를 잘 꿰뚫고 그 위치에 맞는 그릇을 배치하는 사람이야말로 그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다. 간혹 국사발에 초장을 담거나, 종지에 국을 담으려다 넘쳐서 쏟아지는 경우와 같이 인재등용을 잘못하는 리더들도 있어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앞서 예쁘면 된다고 늦게 도착했던 시간도둑이나 종지 만한 사람이 자신이 국대접인 줄 알고 착각하는 과오는 범하지 말아야겠다. 이는 한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편협된 사고를 버리고 모든 시야를 보는 지혜도 필요하다.

참 신기한 건 그릇이 작은 사람일수록 질투는 반비례한다. 콤플렉스가 있어서인가 보다. 한국 사람은 배 고픈건 참아도 배 아픈건 못 참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시기 질투로 가득 찬 간장종지 같은 인간도 참 많다. 남 잘되는 것은 끌어내려야 직성이 풀리고, 뒤에서 욕이나 하는 사람들은 간장종지 보다도 작은 사람이다. 그 시간에 자기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면 더욱 멋진 그릇이 될 터인데 말이다.

질투는 사람뿐 아니라 사물에서도 있나 보다. 최근 골프라운드 중 우드가 잘 안 맞아서 연습장에 갔다. 원래 우드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우드를 잘치고 아이언샷이 부족해서 아이언 연습만 죽도록 했더니 아이언은 정말 잘되고 우드가 갑자기 무너졌다. 프로님이 말씀하시기를 골프채도 사람과 같아서 주인이 골고루 사랑을 해줘야지 아이언만 아끼고 연습하면 우드가 시샘을 하는 거라고 한다. 그래서 그날부터 우드를 달래가며 사랑을 쏟고 있다.

요트도 골고루 아껴야 하는가. 파워요트를 즐기면 세일링요트가 삐질 것 같고 세일링요트를 타면 파워요트한테 미안한 감정이 든다. 돈자랑 하는 졸부나 혹자는 세일링요트는 돈 없는 사람이 노동하는 거라고 격하시키지만 역동적인 에너지면에서 세일링요트 못 따라간다. 마치 고급회는 모두 서울에 올라온다며 일식집에서 생선회를 먹으면 되지 한 마리도 못 잡으면서 왜 낚시터에 가냐고 질문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산에 올라가면 다시 내려올 걸 뭐하러 등산하느냐고 묻는 사람들과 흡사하다. 일단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함부로 언급하면 안 된다. 요트세일링으로 골프장에 가서 골프라운드 후 피싱보트 타고 낚시해서 바로 회를 먹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꿈이라도 꾸고 싶다. 꿈은 내 마음 안에서 느끼는 한 편의 영화이므로 황홀하고 아름다울수록 명화가 된다.

우리들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기에 사소한 공통점에도 큰 공감을 느끼고 상처도 치유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꿈이 있다면 필자가 20년 전으로 돌아가서 요트 프로포즈를 꼭 받아보고 싶다. 요트에서 사랑을 고백 받는다면 마음이 스르르 녹으며 그 남자 품에 푹 안겨버릴 것 같다. 봄바람에 잠시 눈을 감고 매혹적인 꿈을 꾸고는 다시금 현실세계로 돌아와서 열심히 일을 한다. 이것이 인생이다. 꿈도 예쁘고 현실도 멋져지려고 노력하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요요 스토리] 벚꽃처럼 짧은 생, `큰 그릇`으로 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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