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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649) 잊혀져버린 한국 우주인

아픈 경험이 돼버린 첫 우주인 배출
'영웅 만들기' 급급했던 정부의 그늘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입력: 2018-04-24 18:00
[2018년 04월 25일자 14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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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649) 잊혀져버린 한국 우주인
지난 4월 8일은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한 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화려한 기념행사는 없었다. 이소연 박사의 토크 콘서트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싸늘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더 이상 우주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칭호까지 박탈해버린 '한국 우주인'은 이제 아무도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아픈 경험이 돼버렸다.

우주인 배출 사업은 과학기술중심사회를 외치던 참여정부가 2006년 4월부터 250억의 예산을 들여 추진했던 핵심 국가사업이었다. 당시 우리는 모두 우주 개발의 열기에 들떠 있었다. 외나로도에 우주센터를 건립하고, 나로호의 성공적인 발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인공위성도 쏘아 올렸다. 당장 우주 개발 선진국으로 올라설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시작은 화려했다. 최초의 우주인을 배출하는 국가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순진한 젊은이들이 차고 넘쳤다. 무려 3만6206명이 구름처럼 몰려들어서 K팝스타 오디션을 방불케 하는 화려하고 떠들썩한 선발 잔치를 벌였다. 마침내 1년간의 고된 우주 적응 훈련을 마친 이소연 박사가 러시아의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다녀왔고, 우주에서 정부가 자신에게 부여한 임무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런데 우주에서 귀환한 이소연 박사가 마주한 현실은 뜻밖이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우주 개발에 대한 관심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항공우주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정착했지만 뚜렷하게 할 일은 주어지지 않았다. 우주 관련 연구는 꿈도 꿀 수 없었고, 원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요구할 수도 없었다. '한국 우주인'이라는 거창한 칭호는 허울뿐이었다. 사실은 4년 동안 무려 500회가 넘는 홍보성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억지 연예인이었다.

이소연 박사에 대한 시선도 싸늘했다. 250억의 예산을 삼켜버린 '우주 관광객'이라는 야유가 도무지 잦아들지 않았다. 물론 우주 활동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우주정거장의 운영에 직접 참여하지도 못했고, 18종의 우주실험도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기준을 적용하면 '우주인'이 아니라 '단순 참가자'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소연 박사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우주인이 우주에서 어떤 자격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러시아에 요구하고, 250억의 예산을 집행한 책임은 온전하게 당시의 청와대·과학기술부·항우연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정부가 원했던 것은 진정한 '우주인'이 아니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청와대가 앞장서서 영웅으로 만들었다가 어처구니없이 추락해버린 황우석을 대신할 또 한 명의 화려한 '영웅'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던 당시의 정부는 우주인의 구체적 활동이나 후속 사업에 신경을 쓸 능력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다.

이소연 박사가 오랫동안 꿈꾸던 과학자의 길을 통째로 포기해버린 것을 '먹튀'라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열흘 동안의 짧은 우주 경험을 반복적으로 회고하면서 평생을 보내라는 요구는 청년 과학자가 아니라 퇴직 과학자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었다. 어설픈 국가사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런 멍에를 강요할 수는 없다. 함께 선발되었다가 탈락해버린 고산 씨가 직면했던 현실은 더욱 암울했다. 낙동강 오리알이 따로 없었다. 개인적인 선택에 대한 비난도 도를 넘어선 것이다. 국가가 부여했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그에 따른 모든 법적 책임과 의무를 완수한 이소연 박사와 고산 씨는 이제 자유인이다. 더 이상 우리가 시시콜콜 간섭할 수 있는 '공인'이 아니다. '한국 우주인'이라는 칭호까지 박탈해버린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오히려 엉터리 영웅 만들기로 멀쩡한 청년 과학도들을 절망의 늪으로 추락시켜버린 정부와 과학계가 뼈를 깎는 반성을 하고, 진심이 담긴 사과를 해야 한다. 과학기술과 정치의 무책임한 야합을 부추기다가 슬그머니 물러나버린 당시의 관료들과 과학자들에게도 확실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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