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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칼럼] 21세기형 질병 해결 위한 첫걸음

남윤성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입력: 2018-04-10 18:00
[2018년 04월 11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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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칼럼] 21세기형 질병 해결 위한 첫걸음
남윤성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인 호영이가 최근에 '살균'과 '멸균'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물은 적이 있다. 한자어의 뜻을 떠올리며 그 차이점을 생각해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 단어들이 일상에서 구별해서 써야 할 정도로 큰 차이를 가질까? 의문스러웠다. 호영이가 들은 바에 따르면 멸균은 균을 모두 죽이는 것이고, 살균은 나쁜 균만 선택하여 죽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살균이라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말의 정확한 뜻을 따지기 전에, 그 현실성이 의문스럽다. 어린 나이에 접하는 요거트 덕분에 '균'이 꼭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균이라는 단어가 주는 나쁜 인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좋은 균들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이름들을 갖고 있을까? 그들이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그들을 죽이지 않고, 병원균들만 정확히 골라서 죽일 수 있을까?

사람 몸에서 단백질을 코딩하는 유전자의 수가 2만 개 정도로 밝혀졌는데, 놀랍게도 예쁜꼬마선충(C.elegans)이 갖는 유전자 수와 비슷하다. 복잡한 인체 시스템을 운영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의 크기가 '고작' 벌레의 그것과 비슷하다니,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답은 인체가 2만 개의 유전자 정보로만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인간 세포는 대략 30조 정도 있는데,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세균이 인체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주로 대장에 존재하며, 치태, 침, 피부, 위장 등에도 있는데,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위치에 따른 차이도 심하다. 마치 지문과 같이 각 개인들은 고유한 다양성과 분포를 갖는 세균들을 갖고 있고, 체내에서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서로 다른 세균들도 많이 있다. 이들의 역할은 흔히 알고 있는 소화작용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 세포가 생산하지 않는 필수성분들을 합성하고, 인간 세포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양한 대사작용을 유도하며, 생체정보를 신경세포 등에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체내 세균들의 역할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세균에 대한 관심이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라는 역할에 집중돼 왔기 때문에, 지극히 적대적인 관계만 부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균은 인간의 세포와 협력적인 공생관계를 맺고, 인체가 인간 세포와 세균들의 초생명체(superorganism)로서 생존하고 발달할 수 있게 하도록 했다. 문제는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항생제가 감염치료라는 눈부시게 가시적인 성과를 냄과 동시에, 체내 세균들의 분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지극히 인간 세포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항생제는 거대한 승리였으나, 인체의 파트너의 참혹한 희생이 불가피했다. 어느덧 항생제의 사용은 점차 급성적인 감염의 치료를 벗어나, 예방적 차원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항생제가 가축들의 생장을 촉진한다는 것이 알려진 이후에, 우리의 식생활이 광범위하게 항생제에 노출돼 왔다. 그리고, 가축들을 효과적으로 살찌우는 방식으로 우리 몸에도 변화가 생겼다.

최근 들어 비만과 체내 세균 분포의 상관성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 보고되고 있다. 항생제의 광범위한 사용과 급격한 비만 확산의 인과관계가 밝혀지면서, 비만을 생활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질병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비만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우리가 지금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많은 질병들이 사실 70년 전 만해도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제1형 당뇨병, 천식, 아토피, 알레르기, 류마티스성 관절염, 소화장애, 정신질환 등 지금은 흔하게 접하는 많은 질병들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심장마비, 고혈압, 뇌졸증, 당뇨병 등 고령인구의 주요 질환들도 과체중에 의한 영향이 상당한 것으로 간주된다.

세균에 대한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인체에 대한 우리들의 시선이 굉장히 제한적이며 편향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21세형 질병에 대한 해법을 찾는 일은 더 좋은 살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지방을 분해하거나, 포만감을 느끼게 하고, 면역작용을 억제하는 등 질병의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기술들은 분명한 한계를 갖는다. 답을 찾는 일은 21세기형 질병의 뿌리에는 미생물총(microbiota)이 있다는 인식전환에서 시작돼야 한다. 그리고, 체내 세균들의 균형과 상호작용에 어떻게 개입하고 평가할 것인지 조심스럽게 살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떤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근본적인 치료에 한발 더 다가가는 것인지 온전히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첫걸음이지만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인간 미생물총프로젝트(Human Microbiome Project)'에 더 많은 박수를 보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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