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수능시험에 기하학이 없다니

엄치용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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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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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수능시험에 기하학이 없다니
엄치용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양주동 선생의 수필 '몇 어찌'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기하(幾何)'의 한자를 풀어 순 우리말로 옮긴 것인데, 지금 그 몇 어찌 때문에 사회가 어수선하다. 교육부가 2021년도 수능의 수학 '가'형 출제 범위에서 기하 영역을 제외하기로 결정한 것인데, 이를 두고 대한수학회를 비롯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 과학기술 단체는 이러한 결정이 수학을 가볍게 보는 교육을 함으로써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쇠퇴시킬 것이라 주장한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수학을 강화하는 현재의 추세와도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기하학의 근원은 기원전 3000년 고대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하학이 피라미드 건설과 나일강 주변 측량에 쓰였다는 사실이 전해진다. 기원전 300년에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태동해 문장을 통해 명제를 증명한다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 줬다. 17세기에는 철학자로 더 잘 알려진 데카르트는 좌표기하학을 발견해 미적분과 물리학의 발전을 위한 디딤돌을 놓았다. 19세기 들어서 가우스 등의 수학자가 비 유클리드 기하학을 발견함으로써 타원 및 쌍곡선 기하학의 문을 열게 된다. 기하학은 수학의 주요 분야로 자리매김했다.

현대 사회에서 기하학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일례로 예전의 제약회사는 수많은 신약후보물질을 합성하고, 그로부터 특정 질병을 대상으로 한 효능 스크리닝 실험을 거치고, 이어서 동물실험, 임상실험을 실시했다. 이로부터 얻어진 결과를 해석해 신약 후보물질이 약물로서의 유효성이 낮거나 독성이 발견되면 그동안 쏟아 부었던 비용과 노력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지금의 제약회사는 이런 고전적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 먼저 질병관련 유전자나 단백질의 표적과 반응하는 약물을 찾아 컴퓨터를 이용한 표적과 약물분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가상공간에서 모델링을 함으로써 이전까지의 신약개발에 소요되는 위험요소와 비용, 그리고 개발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이런 모델링의 바탕에는 원자의 공간적 배열과 분자기하학의 기본원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다른 예로, 컴퓨터 3차원 자동설계기술은 2차원 기하정보로부터 3차원 구조설계정보를 자동으로 생성하는 기술로 건물이나 교량 등에 응용돼 건축물의 미적요소는 물론 안전성에 크게 기여한다. 3D 영화나 게임 또한 2차원 맵을 사용해 3차원 세계를 시뮬레이션하는 기술이 이용되는데 이 때 역시 기하학이 기본적으로 필요하게 된다. 기하학은 GPS를 이용한 위치 정보 시스템과 행성이나 또는 우주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를 계산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게 이용된다.

이처럼 기하학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다. 외국의 경우 기하학은 공간지각력과 창의력 개발에 꼭 필요한 학문으로 간주돼 고등학교에서의 교육이 심화되는 추세다. 기하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꼭 필요한 3D 프린팅 기술이나 가상, 증강현실, 혹은 인공지능이나 자율주행, 로봇모션인식 등의 기술에도 꼭 필요한 학문으로 이해되고 있다. 정부 또한 창의적, 융합적 인재양성을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고민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육부의 이번 대입수능에서의 기하 단원 제외 결정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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