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전망] 과기정책, 공정-역동성 갖추려면

[이슈와 전망] 과기정책, 공정-역동성 갖추려면
    입력: 2018-02-04 18:00
김진형지능정보기술원원장, KAIST 명예교수
[이슈와 전망] 과기정책, 공정-역동성 갖추려면
김진형지능정보기술원원장, KAIST 명예교수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연구개발 체제는 심각한 동맥경화증에 걸려있다. 국민소득 대비 정부 연구비 투자는 세계 1위이고 투자 액수에서 4위를 차지한다. 만 명 당 연구원 수도 4위다. 그런데도 성과는 미미하다. 연구개발투자 대비 기술 수출 비중은 투자는 28위, 연구원인당 논문 성과 33위, 창업활동 지수는 23위다. 투자는 모범생이지만 결과는 열등생이라는 평가다.

6, 70년대에서의 국가 연구비는 대부분 중화학 공업의 육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었다. 출연연구소로 하여금 기술을 확보해 기업에 전수하고, 기업으로 하여금 수익을 올려 세금을 많이 내도록 하는 모델이다. 이런 모델은 성공했다고 평가 받는다. 산업사회의 끝자락에서 3만달러 시대에 진입한 것은 과학기술 정책의 성과였다.

그러나 경직한 고용과 고비용의 출연연구소 중심 모델은 더 이상 설 곳이 없다. 대기업의 능력이 출연연구소를 앞선다. 출연연구소에 기댈 이유가 없다. 더구나 공정한 사회에 대한 바램이 강해지면서 국가 연구비의 대기업 수혜에 부정적이다.

중소기업을 위해, 또는 창업을 촉진하기 위해 국가 연구비를 사용하자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대두 된다. 우리의 기업 환경에서 중소기업에의 투자가 예전 같이 가시적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잘못하면 좀비 기업만 양산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 세금의 과학기술투자는 어떤 방향이어야 하나?

4차 산업혁명시대의 연구 패러다임과 생태계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특정 산업·공정 전문성의 중요성은 감소하고 범용기술인 디지털 기술이 혁신을 이끈다. 특히 플랫폼, 인공지능 기술이 그 핵심이다. 특정영역의 전문가와 인공지능 엔지니어가 협력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대세다. 경험 많은 인공지능 엔지니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구글이나 아마존이 전통적 의미의 연구소조직을 유지하지 않는 이유는 누구나 다 혁신 요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발전과 전파의 속도가 빠르다. 공개 소프트웨어 덕분이다. 논문은 인터넷 아카이브에 즉시 공개된다. 심사도 필요없다. 연구에 사용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는 즉시 공개돼 누구라도 검증할 수 있다. 컴퓨터, 인공지능 분야에 국한됐던 공개 공유의 전통이 전 학문과 기술 분야로 전파됐다. 요즘 연구개발인용은 일주일 단위다. 4차산업혁명 시대 한 달은 산업사회 10년에 해당한다. 따라서 연구 과제는 장기보다는 단기가 바람직하다. 민첩하게 창의적으로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해야 한다.

연구의 품질은 데이터의 양과 질에 의해 결정된다. 모든 과학기술 분야에서, 특히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중국의 바이두는 무려 5000시간분의 음성인식용 훈련 데이터를 구축했다. 이를 이용해서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음성인식기를 개발했다.

얼굴인식에서도 중국 기업들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엄청난 양의 얼굴데이터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언론이 중국의 인공지능 굴기에 겁 먹는 것은 투자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7억5000만명의 인터넷 사용자로부터 모으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 때문이다. 중국은 이를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인공지능을 만들고 있다.

국가차원, 나아가서는 글로벌 차원에서 데이터를 공동으로 구축해 공유하는 것이 모든 연구자들의 바램이다. 치매를 연구하는 임상의사, 신경과학자, 그리고 엔지니어들이 두뇌 뱅크를 구축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치매 환자의 건강검진 자료, 임상정보, 유전체 검사, 의료영상 자료, 사후 뇌부검자료 등을 시간 축으로 많이 모은다면 조기 발견과 치료법 개발에 큰 성과가 있을 것이다.

공동으로 모은 데이터 뱅크를 연구자들이 공유할 수 있다면 여러가지 긍정적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심도 있는 분석으로 더 좋은 성과를 도출할 수 있다. 요즘 딥러닝 모델의 깊이는 100층, 200층을 넘나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큰 모델의 성공적 학습은 많은 데이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또한 연구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 경직된 사회에서는 행운으로 교수나, 연구원 직장을 잡은 사람만이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 젊은이들의 아이디어가 더욱 창의적일 수 있지만 이들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구글의 음성인식 연구에서 커다란 돌파구를 만든 사람은 잠시 와있던 인턴 학생이었다. 공개소프트웨어 도구에 익숙한 이 학생은 데이터를 접근할 수 있게 되니 평소의 아이디어를 즉시 구현했다.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는 10명 수준의 스타트업이었다.

국가에서 데이터를 확보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하라.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과학기술 육성정책이다. 또한 창업 지원 정책이고 중소기업 정책이다. 공정하고 역동적인 사회를 향한 정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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