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도입 여론조사 단점보완 '공론화'
시민참여단 성향에 좌우 … 한계 여전
시민참여단 성향에 좌우 … 한계 여전
![[이덕환의 과학세상] (625) 여론과 공론화](http://contents.dt.co.kr/images/201711/2017110802101476788001[1].jpg "[이덕환의 과학세상] (625) 여론과 공론화")
공론화(deliberative opinion poll)는 1988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언론학자 제임스 피시킨이 개발한 새로운 여론조사 방법이다.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한다'는 숙의(deliberation)를 도입해서 단순한 여론조사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론화의 학술적 효용성이나 사회적 유용성이 분명하게 확인된 것은 아니다. 물론 소통 단절과 괴담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에서 절제된 숙의가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공론화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일 수밖에 없다.
여론은 국민들의 공통된 의견을 말한다. 여론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여론조사는 1824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대선 결과가 궁금했던 아루펜실베니아라는 펜실베니아의 지역 언론사가 델라웨어 윌밍톤의 주민 5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모의투표가 그 시작이었다. 앤드류 잭슨의 압승을 예측했던 모의투표는 달리 실제 선거는 박빙으로 끝났다. 결국 잭슨은 하원에서의 결선 투표로 당선이 확정됐다.
여론조사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통신과 정보화 기술이 크게 발달한 20세기 후반부터였다. 그렇다고 여론조사가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의 신뢰성과 공정성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표본의 규모도 1천 명을 넘는 경우가 드물다. 심지어 투표장에서의 출구 조사도 믿을 것은 아니다. 아전인수 격의 해석으로 논란이 오히려 증폭되는 경우도 많다.
여론조사는 사회 현상을 학술적으로 분석하고, 인과성을 확인하는 유용한 사회과학적 분석 수단이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는 기업의 마케팅 전략의 수립에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정부나 정당이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여론조사를 활용하기도 한다.
사회 민주화에 따라 여론조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는 사람을 뽑는 선거에서 여론조사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확인하기 위한 여론조사를 공동체의 최종 의사를 결정하는 투표나 선거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여론조사가 공동체의 의사결정 수단으로 적절하지 않은 이유는 넘쳐난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표본의 선택도 쉽지 않고, 여론조사의 대표성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여론조사에 사용하는 설문의 구성과 내용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을 공정하게 관리하기도 어렵다.
피시킨의 공론화에 대한 과도한 환상은 경계하는 것이 마땅하다. 숙의 이후에 실시되는 최종 여론조사가 공론화의 핵심이 아니다. 숙의를 시작하기 전에 실시하는 초기 여론조사와의 비교에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공론화의 결론은 공동체의 의사 결정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단정적일 수가 없다는 뜻이다. 더욱이 시민참여단의 규모와 구성, 숙의의 내용과 방법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결국 공론화도 여론조사의 한계를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합법적으로 진행되던 공사를 중단시켜놓고 급조한 국무총리 훈령을 근거로 공론화를 시작한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의사결정 방법에 대한 분명한 사전 합의도 없었고, 숙의 과정이 만족스러웠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전문가 참여가 충분히 보장되지도 못했고, 브리핑 자료도 어설펐다. 훈령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탈원전 권고는 공론화의 의도를 완전히 퇴색시켜버렸다. 그나마 작은 성과를 얻은 것은 오로지 시민참여단의 지혜 덕분이었다. 너무나도 어설프고, 지극히 무모하고 위험한 시도였다는 뜻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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