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만에 '총수 장기 공백' 상황
항소심서 감형 가능성 있지만
연말까지 총수 부재 이어질듯
신사업 등 적극적 경영 어려워
4차 산업혁명 대응 방안책 난제
중국 등 경쟁업체 추격도 우려
항소심서 감형 가능성 있지만
연말까지 총수 부재 이어질듯
신사업 등 적극적 경영 어려워
4차 산업혁명 대응 방안책 난제
중국 등 경쟁업체 추격도 우려
■이재용 부회장 1심 판결 후폭풍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재계 1위 삼성의 총수 공백 상황이 길어지게 됐다. 남은 항소심 등에서 집행유예 등 감형 가능성은 남아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 공백은 최소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총수의 장기 공백으로 삼성의 미래는 안개 국면에 들어갔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 주력 사업의 경쟁력은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지만, 4차 산업혁명 등으로 바뀌는 5~10년 뒤 미래 사업에 대한 전략적 밑그림과 막대한 투자 등에는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재계에선 삼성이 당분간 총수 부재의 여파로 지배구조 재편과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의 적극적 경영 움직임을 보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미래전략실 해체로 계열사 간 사업 시너지를 만들어낼 컨트롤타워가 사라지면서, 그룹 전체의 경영전략 부재를 삼성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관심사다.
◇이재용 1심서 징역 5년, 혐의 모두 '유죄'= 1심 재판부는 지난 25일 1심 선고 공판에서 이 부회장과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등에 대해 뇌물공여, 횡령,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국회 위증 등의 혐의 모두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이 '비선실세' 최순실씨 딸인 정유라씨의 승마 지원을 한 것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등 경영승계 작업에서 대통령 도움을 바라고 뇌물을 제공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이건희 회장 이후를 대비해 이재용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꾸준히 준비하던 삼성 임원들이 경제정책과 관련해 최종 권한을 가진 대통령에게 승계 작업 도움을 기대하며 거액의 뇌물을 지급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 등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433억2800만원의 뇌물 혐의는 89억2227만원으로 낮아졌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청탁하고 뇌물을 공여했다기보다 대통령의 적극적인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 추진이 개인 이익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 특검이 구형한 12년형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
◇이재용 경영복귀는 언제쯤?= 1심 판결이 최종 3심에서도 확정된다면 이 부회장은 특별사면이나 가석방 결정이 없는 한 2022년 2월까지 수감 생활을 해야 한다.
항소하더라도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는 당분간 어렵다. 특검법에는 1심 판결은 기소 뒤 3개월 이내에, 2·3심은 하급심 판결 뒤 2개월 이내에 끝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를 사실상 권고사항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형사재판 평균 처리 기간은 구속 시 2심에서 116.2일, 3심에서 59.4일이 걸린다. 1심이 형사재판 평균 처리기간인 127.1일보다 많은 178일이 걸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되더라도 연내 경영복귀는 어렵다는 결론이다.
양측이 항소하면 서울고등법원은 다음 달 중 부패전담 재판부인 형사1부(부장판사 김인겸)와 3부(부장판사 조영철), 4부(부장판사 김문석), 13부(부장판사 정형식) 중 한 곳에 재판부를 배당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 '최악 시나리오' 현실로…미래 사업 타격 불가피= 이 부회장의 1심 유죄 판결로 삼성은 1938년 설립 이후 79년 만에 첫 '총수 장기 공백' 상황을 맞게 됐다. 재계는 각 계열사가 이미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 중인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부재가 당장 사업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미래 신사업을 위한 전략적 투자는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반도체 호조 등에 힘입어 사상 최대인 영업이익 14조원을 기록하는 등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예고하고 있다. 상반기 시설투자 누적액은 22조5000억원으로 작년 전체 규모인 25조5000억원에 육박했고, 상반기 R&D 투자 역시 7조9363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약 4290억원이 늘었다.
그러나 길게 보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 업체들은 정부 지원 속에 200조원에 이르는 반도체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 TV 등 삼성의 주력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이 휴대전화 사업에서 앞으로 지금 같은 매출과 이익을 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고백할 만큼, 현재 삼성의 주력 사업은 머잖은 미래에 성장 한계에 직면할 것이란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미래를 위해 미국 자동차 전장부품 업체인 하만을 인수하는 등 2015년 3건, 지난해 6건의 M&A를 추진했지만, 이 부회장이 수감 중인 올해는 사실상 M&A는 없었다. 지난달 그리스 스타트업 '이노틱스'를 인수했지만, 직원 7명 규모의 소규모 회사다. 장기 투자가 필요한 바이오 신사업 역시 공격적 투자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재계 일각에선 이 부회장의 옥중 경영 가능성도 제시했다. 하지만 재판 준비에 전념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한적 정보로 투자 등을 결정하긴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부에선 SK의 수펙스추구위원회와 같은 집단 경영체제 구축이 대안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삼성의 입장에서는 '미래전략실 부활'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 부담이다. 현재 새 정부 출범 후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을 대표하는 각종 행사에 참석하고 있지만, 명확하게 오너 대행이라는 권한을 받은 것은 아니다.
여기에 재판부가 삼성물산 합병을 이 부회장 경영승계 작업으로 명시해 지주회사 전환 추진도 어려워진 만큼, 불안한 지배구조는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삼성 관계자는 "1심 결과가 충격적이고 이해할 수 없어 임직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며 "비상경영은 지금으로선 너무 이른 얘기"라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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