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ㆍ언론학
![[뉴스와 콩글리시] 가을은 `버버리`와 함께 온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610/2016100602102251607002[1].jpg "[뉴스와 콩글리시] 가을은 `버버리`와 함께 온다")
"옷이 날개다. 우리는 그 사람의 옷차림만 보고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옷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동시에 들여다 볼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봄이 여자의 화사한 스커트에서 온다면 가을은 남자의 버버리 코트에서 온다. 무슨 옷을 입었는지, 또 어떻게 입었는지 개인의 옷차림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영역에 속한다"(김우룡.김해영, 비언어커뮤니케이션 중에서).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 리가 출연한 '애수(Waterloo Bridge)'에서 버버리코트는 영화팬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워털루 다리 위에서 버버리 코트를 입고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얼마나 인상깊었으면 이 영화가 상영된 뒤 버버리 코트가 유행하게 되었을까. 우리의 경우에도 아직껏 많은 사람들이 뽕삐두센터 앞에서 버버리코트의 깃을 세우고 리포트하던 KBS 박성범 특파원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버버리(Burburry) -영국의 대표적인 패션 브랜드다. 버버리의 창업자 토마스 버버리는 "영국이 낳은 것은 의회민주주의와 스카치위스키, 그리고 버버리 코트"라고 했을 만큼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버버리회사에서는 기성복 가방 신발 화장품 스카프 향수 등 온갖 패션용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1856년 토마스 버버리가 론칭한 버버리 브랜드는 무엇보다 버버리 코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버버리를 오늘과 같은 명품 브랜드로 만든 것은 개버딘(gabardine)이란 신소재 덕분이었다. 야외활동에 아주 좋은 개버딘은 최상급의 이집트 면(綿)에 특수 방수코팅 기술을 더해서 통풍이 잘 되고 시원하면서 질긴 직물의 이름이다. 에드워드 7세, 윈스턴 처칠 같은 명사들도 즐겨 입으면서 버버리는 마침내 영국인들의 '국민복'이 됐다.
버버리에는 이런 일화도 전해 내려온다. 인류 최초로 남극점을 밟기 위해 경쟁하던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알 아문젠과 영국의 로버트 스캇은 1911년 겨울 각기 탐험대를 이끌고 남극점 정복을 위해 떠났는데 먼저 도착한 아문젠이 자신의 성공을 입증하기 위해 노르웨이 국기와 버버리 개버딘 텐트를 현지에 남기고 돌아와 화제가 되었다. 금의환향한 아문젠은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버버리 오버롤(overall)은 탐험을 위한 썰매 여행에 매우 유용했으며 좋은 친구였음이 증명됐습니다"라는 편지를 버버리회사에 보냈다.
그렇다면 버버리 코트와 트렌치 코트는 같은 말인가? 버버리 코트는 버버리가 생산하는 트렌치 코트의 상품명이고, 트렌치 코트는 방수 방한을 위해서 입는 outer(겉옷)을 뜻하는 보통명사다. 버버리가 워낙 유명했음으로 <버버리 트렌치 코트>를 줄여서 <버버리 코트>라고 하고, 나중에는 코트까지 떼어버리고 <버버리>라고 부르게 됐다. trench coat는 군복에서 유래했다.
개버딘 소재의 버버리 레인코트는 방수성, 내구성, 보온성이 뛰어나서 군복으로 애용되기 시작했다. 1899년부터 1902년 영국과 남아프리카의 보어전쟁(Boer War) 때 버버리 레인코트는 영국 육군과 해병대의 공식 방수복으로 채택됐다. 제1차 세계대전은 참호 속에 몸을 숨기고 장시간 견뎌야 하는 지구전 양상을 띠고 있었다. 이 때 영국은 추위와 비바람에 떠는 군인들을 위해 버버리 레인코트를 대량 주문했다. 이후 연합군 장병들도 버버리를 입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에 납품한 버버리가 50만벌이나 되었다고 하니, 버버리를 키운 것은 전쟁이었다. 트렌치 코트(trench coat)라는 이름은 이렇게 참호(trench) 속에서 생겨났다. 전쟁이 끝나자 많은 군인들은 입던 버버리를 집으로 가져 가서 평상복으로 입고 다녔고 이 덕에 유명세를 타게 됐다.
어떤 상표가 특별히 유명하고 시장을 압도적으로 지배할 때 고유명사인 상표가 그 제품을 대표하는 보통명사로 쓰이게 된다. 위스키가 스카치로 불리고, 브랜디가 꼬냑으로, 소주가 진로로 불리던 것이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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