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ICT·의료기기' 융합… 기술선점 가속도
세계점유율 1.4% 미약 … 한미약품 수출계기
"우리도 할 수 있다" 공격적 R&D 투자 확산
제약사·바이오벤처간 '오픈 이노베이션' 활발
유전자정보·AI·빅데이터 결합 '정밀치료' 등
미래 첨단기술 이르면 10년내 현실화 가능성
세계점유율 1.4% 미약 … 한미약품 수출계기
"우리도 할 수 있다" 공격적 R&D 투자 확산
제약사·바이오벤처간 '오픈 이노베이션' 활발
유전자정보·AI·빅데이터 결합 '정밀치료' 등
미래 첨단기술 이르면 10년내 현실화 가능성
■바이오헬스 '글로벌 퀀텀점프기' 열어라
(1) 주력산업 위기 극복, '바이오헬스' 가 답이다
주력산업이 한꺼번에 위기를 겪으면서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이 절실한 가운데 제약과 의료기기, 의료서비스 등 '바이오헬스' 산업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바이오헬스 산업은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인구 고령화와 혁신기술 보급으로 인해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5년 내에 세계 바이오헬스 산업 규모가 우리 주력 수출산업인 반도체·자동차·화학제품 시장을 합친 것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주력산업으로의 '퀀텀점프기'를 맞이한 바이오헬스 산업현장을 찾아 성과를 소개하고, 지속 성장을 위한 혁신생태계 구축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인천시 연수구 송도바이오대로 300'
지난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본사 도로명 주소가 바뀌었다. 회사 옆 큰길 이름이 '지식대로'에서 '송도바이오대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도심지와 송도를 연결하는 '송도4교' 이름도 '송도바이오교'로 바꿀 예정이다. 송도 국제도시를 한국을 대표하는 바이오 클러스터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세계 최대 바이오 클러스터인 미국 사우스샌프란시스코에는 'DNA웨이(유전자대로)'가 있다. '유전자대로 1번지'에는 연 매출이 20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바이오 기업 '제넨텍'이 들어서 있다.
강석윤 삼성바이오로직스 홍보파트장은 "바뀐 회사 주소에는 300년을 이어갈 글로벌 바이오 기업으로 성장하자는 의미와, 영화 '300'에 나오는 전사들처럼 불굴의 의지로 세계 바이오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의지가 함께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공사를 시작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부지에는 기중기와 포크레인 등 중장비가 쉴새 없이 오가며 공장 기둥을 세우고 있다. 1·2공장과 함께 2018년 연간 18만ℓ 생산능력을 갖춘 3공장이 완성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총 36만ℓ에 달하는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을 갖게 된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셀트리온 역시 1공장을 증설하고 3공장을 신설해 2021년까지 총 31만ℓ의 바이오의약품 생산설비를 갖출 계획이다. 세계 1·2위 바이오의약품 생산 기업인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의 30만ℓ, 스위스 론자의 28만ℓ를 넘어선 규모다. 앞으로 늘어날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의 생산 능력을 합하면 송도의 바이오의약품 생산규모는 67만ℓ에 달한다. 현재 세계 최대 생산지인 미국 캘리포니아 바카빌 34만ℓ와 샌프란시스코 33만ℓ를 합친 것과 같은 규모다.
◇바이오의약품 시장 폭발적 성장=다국적 제약사들도 증설 투자를 계획하고 있어 바이오의약품 생산설비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프랑스 사노피는 3억유로(약 3800억원)를 투입해 생명공학 계열사 젠자임의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장을 증설하기로 했고, 미국 화이자는 3억5000만달러(약 4000억원)를 투자해 중국 항저우에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설립한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바이오의약품 설비 투자를 서두르는 것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업 이벨류에이트파마에 따르면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2020년 2780억달러(약 309조2400억원) 규모를 넘어서 전체 의약품 시장의 27%를 차지할 전망이다. 앞으로 20년 안에 바이오의약품이 화합물의약품의 70%를 대체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미 세계 매출 상위 10개 의약품 중 7개가 바이오의약품이다. 특히 최근 5년간 세계 의약품 산업 성장을 이끌던 블록버스터급 바이오의약품의 특허가 차례로 만료됨에 따라 '바이오시밀러'가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했다. 바이오시밀러는 기존 바이오의약품과 효능은 같으면서 가격은 낮춘 '바이오복제약'이다. 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앤설리번에 따르면 2013년 12억달러(1조3000억원) 규모였던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2019년 239억달러(26조6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국내 기업들은 이 분야의 '퍼스트무버(선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동안 글로벌 제약사가 장악했던 바이오의약품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이 한발 앞서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있는 것. 셀트리온이 개발한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는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판매허가를 취득했다. 삼성그룹에서 바이오의약품 개발을 담당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유럽에서 '베네팔리' '플릭사비' 등 2개 바이오시밀러를 허가받았고, 추가로 바이오시밀러 'SB5' 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유병삼 셀트리온 경영관리본부 이사는 "램시마는 항체 바이오시밀러 중 가장 먼저 시장에 선보인 퍼스트무버 제품으로, 본격적으로 판매된 지 9개월 만에 유럽 내 오리지널 의약품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했다"며 "출시 후 세계 시장에서 수년간의 처방 데이터가 쌓이면서 환자와 의사들의 신뢰가 계속 높아지고 있어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시장인 미국에서도 좋은 성과가 기대된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 회사는 램시마로 미국에서 연 매출 2조를 기대하고 있다.
◇주력산업 앞지른 '바이오헬스' 성장세=바이오의약품과 융합 의료기기, 디지털 헬스케어, 정밀의료 서비스 등 생명공학 기술을 바탕으로 한 바이오헬스 시장은 인구 증가와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 증가, 새로운 기술과 첨단 제품 개발 등으로 전체 산업성장률을 뛰어넘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MS에 따르면 세계 바이오헬스 시장은 현재 8조4780억달러(약 9450조원) 규모에서 2020년 13조7110억달러(약 1경53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는 우리나라 주력산업인 반도체·화학·자동차 산업을 합친 것보다 큰 규모다.
최근 KDB산업은행이 발표한 '2016년 하반기 국내 주요 산업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자동차·조선·철강·일반기계·석유화학·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해운·철강 등 10개 국내 주요 산업 중 8개 분야가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에 반해 바이오의약품 수출은 지난해 32% 성장해 2009년 이후 처음으로 무역흑자를 기록했고, 의약품 생산규모는 3.4%, 의료기기 생산규모는 8.6% 늘었다. 아직 규모는 주력산업에 미치지 못하지만, 성장세는 거침이 없다.
아직 세계 바이오헬스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약하다. 국내 바이오헬스 시장 규모는 2014년 기준 1330억달러(약 160조원)로, 세계 시장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분야별 시장 점유율은 의료서비스 1.3%, 제약 1.8%, 의료기기 1.4% 등 '1%대' 수준에 그친다.
특히 바이오헬스 산업은 늘 '미래먹거리'로 여겨졌지만, 현실적으로 접근이 쉽지 않다는 인식이 강했다. 연구개발(R&D)에서 제품이 나오기까지 10∼15년이 걸릴 뿐 아니라, 임상시험 등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투자를 해도 신약 개발 성공률은 10% 안팎에 그친다. 이 때문에 R&D에 소극적이던 국내 제약업계는 다국적 제약사가 만든 신약의 복제약을 만들어 팔며 버텨왔고, 의료기기 업계 역시 영세한 규모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한미약품이 8조원 규모 기술수출에 성공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국내 제약산업 전체 규모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 면에서도 놀라웠지만,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성과라는 점에서 전 산업계의 이목이 쏠렸다. 우리나라는 기술무역수지 비율이 0.57배인 '만성 기술 적자국'이다. 주로 선진국 기술을 도입해 제품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산업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미약품은 미래를 건 R&D 투자로 개발한 원천기술 하나로 천문학적 액수의 수출 성과를 냈다.
한미약품에 이어 2005년 황우석 사태 이후 10년 이상 움츠렸던 바이오벤처들이 기지개를 켜며 바통을 이어받았다. 1996년 서울대 최초 학내 벤처로 설립된 바이로메드는 지난해 말 미국 바이오기업 블루버드바이오와 570억원 규모의 유전자 치료기술 수출계약을 맺었다. 이어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지난 6월 미국 바이오벤처 앱토즈바이오사이언스에 개발 중인 표적 급성골수성백혈병 신약 후보물질을 3525억원에 기술 수출했다.
적자 상황에도 치열하게 R&D에 투자해온 기업들이 기술수출 성과를 올리자 바이오헬스 업계 전체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번졌다. 정부의 강력한 약가규제로 복제약 중심의 내수시장 영업에서 한계를 느낀 제약사들은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면서 R&D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기 시작했다. 기술 확보와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해 제약사와 바이오벤처 간 오픈 이노베이션도 확산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바이오벤처 오스코텍이 개발한 비소세포폐암 치료 후보물질을 이전받아 후속 R&D를 진행, 도입 비용의 90배에 달하는 약 1억2000만달러(약 1350억원)의 기술수출 성과를 거뒀다.
이경호 한국제약협회장은 "한국은 우수한 인재와 생명공학 인프라, 뛰어난 임상시험 능력, 최고 수준의 ICT 기반기술을 갖춘 바이오의약품 강국이고, 국내 바이오 분야 기술수준은 미국, EU, 일본에 이어 세계 4위권에 올라있다"며 "바이오의약품은 한국이 글로벌 제약 강국으로 도약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바이오헬스 시장 '빅뱅'=전문가들은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이 지닌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선 생태계 혁신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와 의료계에 밀집한 최고 수준의 인재, 정부의 산업육성 의지 등이 원활히 맞물려 작동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면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
이동욱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우리나라는 바이오헬스 7대 강국 도약을 위해 제약, 바이오, 의료기기 등 여러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있고, 대형 수출 성과도 거뒀다"면서 "경쟁이 치열한 이 분야에서 시장을 선점하려면 의료계, 학계, 산업계가 연계해 아이디어부터 R&D, 판매, 창업까지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하고 정부도 이를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 회장은 "창의성과 자율성에 기반한 스타트업이 창업하고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며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 1000개 육성계획을 밝혔다. 1000개 바이오벤처 중 10％만 성공해도 100개 기업이 탄생하고 우리만의 바이오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무엇보다 문제는 '속도'다. 최근 과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술로 꼽히는 '3세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지 3년여 만에 임상 단계에 진입했다. 원하는 유전자를 자르거나 다른 유전자로 바꿔 넣는 혁신적인 기술로, 지금까지 치료 방법이 없던 치명적인 유전질환이나 만성질환을 완치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유전자 정보와 인공지능, 빅데이터를 결합한 '정밀의료', 줄기세포와 3D프린팅을 이용해 살아있는 장기를 만드는 '재생의료' 등 미래에서나 가능할 것으로 보이던 첨단기술이 10년 안에 현실로 다가올 전망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혁신적인 바이오헬스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영역을 넘나드는 합종연횡을 시작했다. 생명과학을 중심으로 ICT, 제약, 의료기기, 의료서비스 등이 융합해 새로운 혁신을 낳고 있다.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은 생명과학 분야 자회사인 '베릴리'를 통해 당뇨병을 진단하는 스마트 콘택트렌즈와 암세포를 탐지하는 나노입자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 알파벳은 영국 GSK와 5억4000만파운드(약 7890억원)를 투자해 생체전자의약품을 개발하는 '갈바니 바이오일렉트로닉스'를 설립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애플은 아이폰에 탑재한 '헬스' 앱을 통해 전문적인 의학연구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고, IBM은 인공지능 플랫폼 '왓슨'을 의료분야에 적용해 의사들의 진단과 치료 결정을 돕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진규 미래창조과학부 미래창조과학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은 "바이오헬스는 국민 건강과 경제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차세대 산업으로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자동차와 철강 등 기존 주력 산업을 넘어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할 유력한 성장동력"이라며 "정부는 줄기세포와 유전자 치료제 등 우리나라가 기술적 경쟁력을 갖춘 태동기 분야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바이오헬스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도영·김지섭기자 namd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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