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수주잔량 많아 구조조정 추진 어려워… 업황 침체로 새 먹거리 부족 '딜레마'
국내 조선업계가 재무 건전화와 성장 동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해운 경기 불황, 저유가 지속으로 구조조정이 시급하지만, 이미 수주한 일감 규모가 커 인력 감축이 여의치 않다. 인력 규모를 유지하고 성장동력을 이어갈 신규 수주도 쉽지 않아, 업체들은 관련한 경영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에 빠졌다.
8일 세계 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10월 기준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잔량은 3191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다. 부동의 1위인 중국(3933만CGT)에 뒤지지만 3위 일본(2117만CGT)을 크게 앞선다.
한 업계 관계자는 "조선 빅3가 선박건조 기준으로는 2년~2년 6개월, 해양플랜트 프로젝트 기준으로는 1년6개월~3년6개월가량 일감이 남았는데, 이 물량을 소화하기 전에 생산직 감원 등을 추진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2만6800명,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각각 1만3000명 가량의 인력(본사 기준)을 두고 있다. 이로도 모자라 본사 인력의 2배가 넘는 협력사 인력을 활용하고 있다. 이미 수주한 선박 건조나 해양플랜트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는 한 감원이 어렵다. 3사 중 구조조정이 가장 절실한 대우조선도 정년퇴직에 따른 자연감소와 신규 채용 억제 외엔 감원 계획이 없다.
문제는 기존 일감, 인력 규모와 앞으로 따낼 수 있는 일감 수요의 괴리가 크다는 점이다. 10월 중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109만CGT(47척)으로 2009년 9월 이후 6년 만에 가장 적었다. 세계 1위 선사 머스크도 구조조정을 단행할 만큼 해운업 불황이 심화, 수주 가뭄이 이어지고 있고 선가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10월 중 초대형원유운반선의 선가는 9월에 비해 척당 50만달러 하락했고 수에즈막스 유조선은 척당 100만달러, 아프라막스 유조선은 척당 75만달러가 하락했다. 케이프사이즈 벌크선은 척당 100만달러, 4800TEU급 포스트 파나막스 컨테이너선은 척당 150만달러가 하락했다. 감원 등 구조조정이 어려우나, 인력 규모를 유지할 먹거리를 이어가는 것 또한 어려운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업황을 고려하면 기존 수주 물량을 소화하며 인력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신규 수주 경쟁은 보수적으로 임해야 하지만 간단치 않다"고 평가했다. 최근 조선사들이 계속 손실을 입어 현금 보유고가 동나고 있어, 신규 수주 계약금으로 기존 프로젝트 인건비를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이 상태로는 주요 조선사들이 수주 잔고가 바닥이 나기 직전에 이르거나 해양플랜트 사업에 대한 의사결정이 완료되는 시점에 급격히 인력을 감축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대형 업체들은 관련 경영전략을 면밀하게 수립하고 정부와 채권단은 한계에 이른 중견 업체들의 정비를 서둘러, 충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정근기자 antilaw@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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