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별 광복 70년 맞아 재조명 감회
고 최순달 박사 '헌신'이 밑바탕 돼
서리대 연구후 위성개발 한국만 성공
인공위성 많은 기술 결집된 결과물
우리별 개발, 위성사업 선구자 확신
우주개발 분명한 목표·확신 세워야
정부 꾸준한 지원 있어 결실 가능
도전정신·책임감으로 일당백 열할
고 최순달 박사 '헌신'이 밑바탕 돼
서리대 연구후 위성개발 한국만 성공
인공위성 많은 기술 결집된 결과물
우리별 개발, 위성사업 선구자 확신
우주개발 분명한 목표·확신 세워야
정부 꾸준한 지원 있어 결실 가능
도전정신·책임감으로 일당백 열할
■기술로 이룬 70년 성장신화
(17) '우리별 1호' 개발주역 좌담회
1992년 어느 야심한 밤, 영국 서리(Surrey)대학교 위성공학과 연구실에서는 낯선 한국 가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국 최초의 위성 개발'이란 미션을 가지고 머나먼 이국땅으로 떠나온 젊은 한국인 공학도들은 외로움도 잊은 채 오직 위성 제작에만 매달렸다. 당시 한국은 우주 분야 불모지에 가까웠다. 당연히 이들은 위성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고, 오직 현장에서 모든 것을 습득해야 했다. 이들이 시행착오 끝에 익힌 지식과 기술은 오롯이 한국의 위성 기술이 됐다.
27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만단 우리별 1호 개발 주역 박성동 쎄트렉아이 대표와 김형신 충남대학교 교수(컴퓨터공학과)는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가 얻은 건 인공위성을 만드는 기술뿐만 아니라 어떠한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게 해준 경험 그 자체였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인공위성 분야 선구자인 고(故) 최순달 박사의 우주기술 개발 비전에 반해 열정 하나만 갖고 영국 유학길을 택한 젊은 20대 공학도 9명은 1992년 8월 11일, 마침내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우주에 띄우는 데 성공했다. 납땜 한 번 해본 적 없던 젊은 학생들이 우여곡절 끝에 첨단 기술의 응집체라고 할 수 있는 인공위성을 직접 만들어 낸 것이다. 이후 이들은 우리별 2호, 3호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인공위성 역사를 일궈내며 위성 기술 자립을 이끌었다.
우리별 1호를 시작으로 우주 강국의 꿈을 꾸기 시작한 우리나라는 2013년 1월 국내 첫 우주발사체인 '나로호' 발사에 성공했고, 현재 2020년 달 탐사를 목표로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날 모인 우리별 1호 개발 주역들은 우리나라가 우주 분야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정부의 흔들림 없는 목적의식과 지속적인 지원, 민·관·학의 정교한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우리별 위성' 개발이 광복 70년을 맞이해 정부가 선정한 '과학기술 대표 성과 70선'에 선정됐다. 선정 배경은 무엇인가.
▷최종배=우리나라가 그동안 과학기술에 투자를 많이 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경제 발전을 이끌어왔다고 하는데 정작 국민들이나 연구자들이 구체적인 사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민들과 과학기술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대표 성과를 선정했다. 우리나라 인공위성의 시초인 우리별은 당연히 대표 성과에 뽑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별을 시작으로 현재 우리나라는 인공위성 분야에서 기술적 자립을 이뤄냈고 쎄트렉아이 같은 기업이 생겨나 수출도 하고 있다. 특히 인공위성은 한가지 기술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기술이 결집된 결과물이기 때문에 우리 과학기술 분야의 매우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사회=우리별 인공위성의 개발 주역으로서 대표 성과에 포함된 소감은 어떤가.
▷김형신=우선 선정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정부의 꾸준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돈이 워낙 많이 들기 때문에 진행하기 어려운 사업이었는데 지속적으로 지원이 이뤄져 결국 결실을 볼 수 있었다.
▷박성동=잊혀 가는 기억을 되살려 준 것에 감사하다. 우리별 1호와 2호는 정부의 중장기 계획에 의해 개발된 것이 아니라 개인 연구과제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 부분도 있는데, 광복 70주년을 기점으로 재조명된 데 대해 감회가 깊다. 그동안 우리별 1호에 대해 '남의 별'이라거나 '값비싼 장난감'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그런 말에 더 오기가 생겨 여기까지 온 것 같고, 지금 이렇게 다시 인정받는 것이 개발 당사자로서 매우 기쁘다.
▷사회=우리별 개발은 선구자인 최순달 박사의 역할이 컸다. 그를 만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고 어떤 꿈을 꾸게 됐는가.
▷박성동=최 박사를 만난 것은 천운이었다. KAIST 학부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최 교수를 만났는데, 그가 한 얘기에 개인적으로는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최 박사가 칠판에 'devotion(헌신)'이라고 쓰며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돈 안 들이고 공부하게 된 이유가 뭐라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리고 너희가 공부하는 데 쓴 돈은 국민의 세금이고, 국민의 세금은 시장에서 채소나 생선 파는 할머니의 전대에서도 나왔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라며 역할과 책임에 대해 얘기했다. 지금도 그 말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지니고 있다.
▷김형신=박 대표의 얘기가 최순달 박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상징적으로 알게 해준다. 그는 비전이 있었고, 그 비전이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리나라 우주개발 역사를 직접 쓰겠다는 목표를 가졌고, 그런 생각으로 인공위성연구센터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우리별 1호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과 후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
어느 날 1년짜리 영국유학 프로그램 광고 하나를 보고 석사를 마치고 온다고 하길래 바람 쐬는 기분으로 지원했다. 그런데 점차 그 프로그램이 위성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생각지 못하게 시작했지만 최 박사의 비전과 철학에 공감하게 되면서 위성 프로젝트에 빠져들었고, 결국 박사 학위도 미루고 계속 위성을 만들게 됐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 성격도 판이하게 바뀌었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기술들을 배웠다. 무엇보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해결 방법을 찾는 법을 알게 됐다. 지금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이런 부분을 많이 알려주려 한다.
▷사회=우리별 1호 개발을 위해 영국 서리대에 갔을 당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김형신=유학 가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많이 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는데 영국에서는 평생 만져본 적도 없는 배터리를 직접 만들고 납땜을 하고 기판을 쪄서 코팅하는 일을 했다. 위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손재주와 경험 있는 엔지니어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오직 도전정신만 있었다. 위성은 하나의 완벽한 시스템이라 기술적 요소뿐만 아니라 공정적인 측면이 중요하다.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이 일당백 역할을 해야 했다. 똑똑하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 문제를 풀어내는 돌파력과 무엇보다 강한 책임감이 필요했다.
▷박성동=위성 개발 당시 주 역할은 통신시스템이고 부가적으로 열 제어도 맡았다. 대학 4년간 들어본 적도 없는 것들을 현장에서 직접 배워야 했다. 최 교수는 '너희 말고는 기댈 사람이 없다'며 위성 개발에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다 배워오라고 했다. 각자 주 종목 외에 빈틈을 다 나눠서 해결해야 했다. 위성을 만드는 일은 원리만 배우면 되는 게 아니었다. 예를 들어 볼트를 닦는 일을 하면 뭘로 닦아야 하고 용제는 뭘 쓰고 이런 재료는 어디서 사야 하는지 일일이 알아야 했다. 우리가 서리대학에 가기 전 남아공이나 파키스탄 등에서도 이곳으로 위성을 배우러 왔었고, 이후에도 태국, 싱가포르, 터키 등 많은 나라가 기술이전을 받았지만 독립적으로 위성 개발에 성공한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었다. 인원을 더 많이 보낸 나라도 있었지만 우리만큼 열심히 한 사람들이 없었다고 한다.
▷김형신=서리대학 연구실은 체계적으로 기술이전을 하는 곳은 아니었다. 위성이라는 게 나사를 한 번 어떻게 돌리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기술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것들이 많은데, 이런 것들을 모르면 못 만든다. 서리대 연구원들이 적극적으로 가르쳐주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불안했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성공 의지가 컸다. 위성과 관련한 모든 것을 챙겨가고 싶었다. 그곳 연구원들은 칼퇴근을 주로 했는데 그들이 귀가한 후 우리는 매일 새벽 1∼2시까지 연구실에 남아 안에 있는 자료를 꺼내보거나 그들이 만들고 있는 위성을 자세히 살펴보기도 했다. 매일 밤 한국 가요가 흐르는 우리만의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사회=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위성이 발사되던 순간의 심정은 어땠는가.
▷박성동=잘 모르는 사람들은 발사체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박수를 치고 악수를 하는데, 사실 그때부터가 진짜다. 발사체가 올라가면서 폭발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면 모든 책임이 발사체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올라가고 나서 몇 시간 뒤면 교신이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만큼 부담감이 컸다.
위성이 우주에 올라가면 우선 위성 위치를 알아내야 하는데 이때부터가 쉽지 않다. 발사체에서 분리되는 첫 번째 위치정보를 가지고 궤도를 계산해 한국 상공에 언제 올지 예측해 교신을 시도해야 한다. 위성과 빨리 교신해서 위치를 확인해야 위성이 태양광을 받아 배터리를 충전하도록 자세 제어 등을 하는데, 교신에 실패하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영국에 처음 갔을 때 그런 상황을 본 적 있는데, 원인도 모르고 비참한 분위기였다. 우리별 발사 당시 그 광경이 떠올라 초긴장 상태로 교신을 시도했는데 대여섯 개 위성 상태 정보가 화면에 떴다. 교신이 가능한 시간이 몇 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재빨리 위성 상태를 파악하고, 바로 작전을 수립해 명령을 내려야 하는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사회=우리별 개발이 한국의 우주분야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가.
▷김형신=우리별 위성은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의미가 가장 크다. 시작되기 어려운 프로젝트를 성공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우주 기술 개발이 본격화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연구소도 계속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우주 사업을 하는 회사도 생겼다. 외국은 위성의 부가가치를 통해 새로운 사업을 많이 한다. 지리정보시스템(GIS)이나 동영상 촬영, 데이터 분석뿐만 아니라 화성에 가는 사업도 추진할 만큼 우주에 미래 먹거리가 있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 많다.
▷박성동=과거 미국의 달착륙 장면을 보고 전공을 항공우주공학으로 정하고 미국 유학을 갔다 온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요즘 우리별 발사를 보고 이 분야를 전공하게 됐다는 학생들을 종종 본다. 청소년들의 관심을 우주로 이끌었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최종배=우리나라 인공위성 개발의 시작인 우리별이 없었다면 지금 과연 위성 개발을 할 수 있었을 지조차 생각하기 어렵다. 쉽지 않은 시작이었지만 훌륭한 선구자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잘 이어져 왔다. 앞으로도 잘 발전시켜야 할 분야지만, 우리별이나 과학기술위성 시리즈가 상용화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 가능하면 기술을 많이 개발해야 하는데, 연구개발(R&D) 과제가 대부분 프로젝트 형태로 끝이 난다. 남는 게 무엇이고 왜 우리가 위성을 개발해야 하는지 입증해야 한다. 기술 자립을 위해선 과학기술위성을 통해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여기서 개발한 기술을 상용위성에 도입하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사회=정부의 우주기술 개발 방향에 대해 제언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박성동=우리나라 우주개발 프로그램은 목표는 있되 목적이 없다. 정부 예산, 국민 세금이 투입된다면 국가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미래부, 산업부, 국방부 등 다양한 부처가 참여하지만 하나의 통일된 목적의식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연구소와 대학, 기업이 역할을 적절하게 분담하고 각자의 방향을 모으면 큰 목적이 보여야 한다. 그리고 이 목적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소통해야 한다.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논리만으로는 계속 우주 개발을 이끌어 나가기 어렵다.
▷최종배=우주 개발이라는 게 사실상 무한정일 수 있다. 여기에 국가 R&D 예산을 다 넣어도 부족할지 모른다. 한국이 어느 정도까지 우주 선진국으로 가야 하는지 분명한 목표를 먼저 정해야 한다. 이런 목표를 갖고 정책이 나오면 과학기술전략본부에서 예산이 타당한지 살펴볼 텐데, 이 부분이 아직 분명하지 않은 것 같다. 과학기술처에서 전략기술개발관으로 있을 당시 통신해양기상위성 개발을 시작한다고 예산을 받기 위해 담당 사무관이 계속 쫓아다녔는데, 마지막으로 당신 돈이면 줄 것 같은지 물었다. 목표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계획이 있다면 예산을 쓰는 게 맞다. 우주 분야는 계속 프로젝트 단위로 하다 보니 이런 부분에서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박성동=정부 역할은 민간이 하지 못하는 것, 상업성·경제성은 없지만 국가 목적을 위해 해야 하는 것에 한정해야 한다. 반대로 민간기업은 돈 될 만한 것, 시장에서 경쟁력 확보가 가능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렇게 세부 과제별 목표와 주체·시간별 전략의 합을 잘 맞춰 우주 개발의 목적이 달성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중장기 기본계획이 지켜진다는 신뢰가 필요하다. 이에 맞춰 기업도 선행 투자를 하고 인력도 양성할 텐데, 정부가 신뢰할 수 없는 계획을 발표한다면 앞서 나가기가 어렵다.
장기적인 계획을 실행해 나가려면 컨트롤타워로 국무총리실 산하에 상설 위원회 조직을 만들거나 별도의 우주청을 만드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 우주 개발 예산이 5000억원도 안되는 데 독립기구를 만드는 것이 현실성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적어도 의사결정 체제는 독립적인 형태로 더 높은 수준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다. 지금은 우주 관련 담당자들의 사명 의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정부와 연구소에 있는 사람들이 각자 우리나라 우주 분야 국가대표라는 의식을 갖고 뛰지 않으면 개선이 어렵다.
▷김형신=유럽에서는 우주 관련 소프트웨어(SW) 사업이 많은데 매우 체계적이고 유기적이다. 그런 체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우주용 SW를 개발하되, 관련 대학이나 회사들이 모두 각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기초연구부터 사업화까지 이어가는 체계와 연결고리가 정교하다. 대학이 개발한 것을 누가 관리하고 어떻게 이어받고 검증하는지, 사업적으로 장기적인 역할을 다 정해놓고 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는 개별적인 모양새는 갖췄지만 연결고리가 빠져있는데, 이를 보완해야 한다.
정리=남도영기자 namdo0@dt.co.kr
사진=유동일기자 eddie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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