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만나게 될 거에요. 어느 쪽이든 애타게 찾고 있는 건 인연이라는 증거거든요. 만나야 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고 들었어요."
1997년 개봉한 영화 '접속'에서 수현(전도연 분)이 당시 PC통신으로 동현(한석규 분)과 채팅으로 나눈 대화 내용이다. 1990년대 중후반 PC통신의 보급으로 처음 온라인 채팅 문화가 생겨났다. 당시 낯선 이성과 컴퓨터로 대화를 나누고, 인연을 만들 수 있었던 채팅은 젊은 청춘들에겐 새로운, 순수한 설렘이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PC 온라인 채팅 사이트를 넘어 스마트폰 모바일 채팅 앱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20년 전의 채팅이 안겨줬던 설렘과 떨림은 온 데 간 데 없고, 온통 성매매 유혹 글들이 범람하며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됐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발효하며 대대적인 성매매 집창촌에 대한 단속이 벌어졌다. 2004년 전국 35개 집창촌, 1700여 성매매 업소, 5700여 성매매 종업원은 2011년 26개 집창촌, 726개 업소, 종업원 1500명으로 줄었다. 검경의 지속적인 성매매 범죄 단속 여파로 성매매 업자들은 더욱 음지로 들어가, 오피스텔은 물론 일반 가정집을 성매매 장소로 사용하면서 지능적으로 단속을 피해갔다. 특히 스마트폰 보급률이 84%에 달할 정도로 급속히 확산하면서, 모바일 채팅 앱을 통한 성매매 영업행위로 발전하면서 단속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성매매·음란 관련 통신심의 건수는 2009년 6809건에서 작년 5만3985건으로 5년 만에 8배 가까이 급증했다. 지난해 9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3년 성매매 실태조사'에 따르면 채팅 앱을 포함해 성매매 혐의가 있는 앱은 모두 717개로 집계됐다. 성매매를 조장 채팅 앱만 182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조건만남 서비스 유형이 172개(94.4%)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성인인증을 요구하는 앱은 64개에 불과해 미성년자가 아무런 제재 없이 채팅 앱을 이용할 수 있다. 성매매에 주로 이용되는 '랜덤채팅' 앱은 성인인증 절차가 없어, 청소년이 조건만남과 성매매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이용자가 신분을 숨길 수 있고 IP 기록이 남지 않아 추적도 어렵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중고생 365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0% 가량이 랜덤 채팅 앱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강요나 알선 등 범죄가 온라인을 통해 이뤄진 경우가 전체의 47.2%에 달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청소년 성매매 검거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08년 850건에서 2012년엔 1708건으로 배 증가했다. 지난 8월 울산에서는 10대들이 가출한 여중생을 감금하고 채팅 앱을 이용해 1200회에 달하는 성매매를 알선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이달 초에도 광주와 구미 등지에서 채팅 앱을 이용한 성매매 사건이 계속 적발되는 실정이다.인터넷 성매매 범죄가 이처럼 심각한데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경찰은 상황이 심각한 건 알고 있지만, 단속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만 한다. 당신들의 자녀가 성매매에 무방비로 노출돼 범죄자로 낙인 찍혀도 핑계만 대고 있을 것인가.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9월 성매매 알선 우려가 있는 사이트나 앱의 채팅창에 '성매매가 처벌 대상'이라는 경고 문구를 게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채팅 앱이 청소년 유해매체 속하지 않는다며 법 적용을 하지 못 하고 있다. 유해 앱을 차단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채팅이 사적 공간이기 때문에 차단에 한계가 있다고만 한다. 전문가들은 서둘러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인터넷 성매매 방지 근거 조항을 만들어야 하며, 청소년 유해 앱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채팅 앱이 설렘의 공간은 아니더라도, 불법 성범죄의 온상지로 내버려둬선 안된다.
김승룡 정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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