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영국 서리대 교정, 밤마다 한국인들 모여서…

1992년 영국 서리대 교정, 밤마다 한국인들 모여서…
이준기 기자   bongchu@dt.co.kr |   입력: 2015-10-14 18:12
1992년 '우리별 1호' 발사… 우주분야 불모지서 선진국 향한 첫발
고 최순달 박사, '드림팀' 구성…연구인력 등록금 조달까지 도맡아
영국 서리대 교정 밤마다 한국연구원 목소리… 2년만에 위성 발사
■기술로 이룬 70년 성장신화

(15) 한국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 1호'


1992년 영국 서리대 교정, 밤마다 한국인들 모여서…
KAIST 연구원들이 우리별 1호 발사 직전 다양한 시험을 통해 안정성과 신뢰성을 검증하고 있다.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제공


지금부터 23년 전인 1992년 8월 10일 오후 8시(현지시간) 남미 기아나에 위치한 쿠루 우주기지. 아침부터 뜨겁게 달궈진 발사장은 작열하는 태양 빛을 받으며 한층 더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 발사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면서 관제실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술렁대기 시작했다.

드디어 발사 10초 전. "디스, 네프, 윗트…트와, 두, 엉, 아니마쥐(발사)"라는 카운트다운 종료 신호와 함께 우리별 1호를 실은 '아리안 V-52' 발사체가 지축을 흔드는 굉음 소리와 함께 시뻘건 화염과 불꽃을 뿜어내며 땅을 박차고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발사한 지 20분이 지나자 우리별 1호와 함께 쏘아 올려진 주인공 위성인 '토펙스 포세이돈(TOPEX Poseidon)'이 발사체로부터 성공적으로 분리됐다는 안내가 나왔다. 그리고 다시 몇 분 뒤 우리별 1호와 비슷한 크기의 소형 인공위성 'S80-T'가 분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992년 영국 서리대 교정, 밤마다 한국인들 모여서…


하지만 우리별 1호만 분리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 발사체와 분리돼야 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식이 전해지지 않자, 우리별 1호의 성공 발사만을 숨죽이며 기다리던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어느새 관제실은 적막감으로 휩싸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통제 지휘관의 방송이 들려왔다.

◇우리 손으로 제작한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 1호'=아리안 발사체가 발사된 지 정확히 23분36초 지난 후 "킷샛 세퍼레시옹 노말(우리별 분리 정상)"이란 말이 방송을 타고 나왔다. 우리별 1호가 무사히 우주 궤도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가슴 졸이고 있던 연구자들은 "드디어 해냈다. 됐다. 됐어"라는 탄성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조용하던 쿠루 우주기지에 환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지상국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연구원들도 서로 얼싸 껴안고 환호성을 지르며 우리별 1호의 성공 발사를 축하했다.

이날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22번째 위성보유국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자, 3년간 힘든 영국 유학생활을 거쳐 우리별 제작에 매달린 20대 초반 젊은 엔지니어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열정이 결실을 맺은 날로 기록됐다.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우주분야 불모지에서 우주개발 선진국을 향해 나가는 첫발을 내디뎠다.

◇인공위성 개척자 '고 최순달 박사'=우리나라에 우주가 도전할 만한 영역이란 꿈과 자신감을 심어준 우리별 1호를 구상하는 것부터 계획, 제작, 발사하기까지 모든 것은 당시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던 최순달 교수로부터 시작됐다. 체신부 장관을 지낸 최 교수는 오래 전부터 소형 과학위성 계획을 구상해 오고 있었다. 우리나라 인공위성 분야의 '프런티어', 즉 개척자와 같은 존재다.

그가 우리별 1호 계획을 구체화한 것은 정부가 1995년 우리나라 최초의 통신위성을 발사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최 교수는 처음부터 수천억원의 큰 비용이 드는 위성을 발사하는 것보다는 인공위성 분야 인력을 양성하고 초보적 기술을 축적하기 위해 소형 과학위성을 발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정부에 제안했다. 그의 혜안이 정책으로 받아들여지면서 1993년 8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계획이 확정됐다.

최 교수는 소형 인공위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젊고 유능한 50명의 핵심 전문 연구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절반 이상은 해외 전문기관에서 정규 대학원 교육을 받게 하고, 나머지는 국내에서 전수 교육과 자체 연구를 통해 이론과 경험을 쌓는 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인공위성을 직접 제작하고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젊은 KAIST 학생 5명을 선발, 1989년 10월 영국 서리대학에 유학을 보냈다. 이듬해에는 4명의 졸업생이 추가로 영국 유학을 떠났다. 최 교수는 이들의 등록금 조달을 직접 맡았다. 가을학기가 시작되는 10월 입학을 놓치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다급해진 최 교수는 평소 알고 지내던 영국 최대 전자회사 'GEC 마르코니사' 기술이사를 찾아가 우리 우주기술 인력양성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부탁했고, 1년에 10만달러씩 3년간 지원 받기로 약속을 이끌어 냈다.

이로써 5명을 필두로 모두 10명의 학생들이 최 교수의 도움으로 영국 서리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영국 교수들과 연구원의 지도를 받아 우리별 1호 위성 개발과 제작에 필요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쌓았다. 우리나라가 우주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도록 새롭게 문을 여는 '드림팀'이 구성된 것이다. 이는 우주개발에 대한 혜안과 개척자 정신을 통해 젊은 20대 엔지니어들을 똘똘 뭉치게 한 최 교수의 강력한 리더십과 위성을 반드시 우리 손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와 신념, 그리고 어떤 어려움에도 지지 않는 추진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처럼 최 교수는 우리별 1호를 통해 우리나라 우주개발 인력 양성과 위성기술 확보를 통해 위성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토대를 마련해 줬다.

◇20대 청춘을 바쳐 탄생시킨 인공위성=우리별 1호의 탄생은 1991년 4월 어느 날. 영국 서리대학 교정 한구석에 자리잡은 위성공학과 연구실에서 벌어진 열띤 회의에서 시작됐다. 이른바 '위성 임무분석 회의'였다.

위성을 만들기 위한 첫 단계인 위성 임무분석은 우리별이 우주에 올라가 어떤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이에 따라 어떤 탑재물을 실을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이 회의에서 우리별의 임무는 다른 실험용 위성이 수행하는 지상과의 통신뿐 아니라 지구 표면 촬영, 우리말 방송, 우주 방사선 측정 실험으로 정해졌다.

이 가운데 우리말 방송은 일반인이 인공위성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게 하기 위한 최 교수의 아이디어였다. 우리별이 우주에서의 방송을 지상에 뿌려줘서 일반인도 수신기만 있으면 우리별이 우주에서 들려주는 방송을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위성 임무 결정과 함께 개발계획이 수립되자 서리대 연구원과 한 팀을 이뤄 본격적인 위성제작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실험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서리대학의 한쪽 구석에 자리잡은 인공위성 연구실은 마치 우리나라 인공위성센터를 옮겨놓은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밤 12시가 넘으면 깜깜한 밤의 정적을 깨우는 한국 노랫소리에 실험실 불빛 아래에 한국 유학생들의 한국말만이 들릴 뿐이었다. 턱없이 모자란 인원으로 정해진 시간 안에 위성을 만들어야 했기에 한 사람이 여러 일을 맡기 일쑤였고, 정해진 날짜 안에 만들어야 하는 부담과 책임감이 뒤따랐다.

비록 위성을 만드는 과정이 고난의 연속이지만 우리 학생들은 숱한 우여곡절을 극복하면서 각자 맡은 일에 한 치의 오차 없이 완성해 냈고, 그것을 우리별 1호라는 결정체에 녹여냈다. 우리별 1호는 1990년 1월부터 1992년 8월까지 총 2년 간 38억2000만원을 투입해 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소형 과학위성으로, 무게 48.6㎏, 크기가 가로, 세로, 높이 352×356×670㎜로, 태양전지판을 통해 최대 30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서리대학의 위성 전문가 제임스 밀러 교수는 "현재까지 제작된 소형 위성 중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위성"이라고 우리별 1호를 극찬하기도 했다.

이렇게 탄생한 우리별 1호는 1993년 9월 우리별 2호, 1999년 5월 우리별 3호로 이어졌다.

대전=이준기기자 bong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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