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학 칼럼] 무하마드 알리와 김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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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7-2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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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학 칼럼] 무하마드 알리와 김득구
강주희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MRC 저산소 표적질환 연구센터)

작년 인천에서는 17회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대한민국이 일본을 큰 차이로 따돌리고 중국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하며 아시아의 축제는 막을 내렸다. 아시안게임 중에 필자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스포츠생리학 전공 체육학과 교수님이 아시안게임 입장권을 구했다며 권투 경기를 관람하러 가자고 하여 늦은 저녁 학생, 연구원들과 같이 복싱 경기장으로 향했다. 요즘은 그 인기가 옛날만 못하지만 80, 90년대에만 해도 권투는 그야말로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효자종목'이었다. 그 시절 머리 보호장구인 헤드기어를 쓰고 구슬땀을 흘리며 경기하던 모습을 상상하며 경기장에 들어선 필자는 선수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수들이 모두 헤드기어를 벗고 경기를 하는 것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체육학과 교수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경기의 박진감을 위해 헬멧을 벗고 경기한 지가 몇 해 되었고 여자 선수나 주니어 선수만 여전히 헤드기어를 쓰고 경기를 한다고 했다. 필자는 순간 두 명의 권투선수가 떠올랐다. 현재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전설적 복서인 무하마드 알리와 198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레이 맨시니와 WBA 라이트급 타이틀 경기를 하다가 숨진 김득구 선수이다. 헤드기어 착용은 김득구 선수의 사고 이후로 1984년 LA 올림픽 때부터 쓰기 시작했다가 몇 해 전부터 'knockout (KO)'에 비중을 많이 두는 국제아마추어복싱협회 정책에 의해 규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럼 선수들은 안전할까.

'외상성 뇌손상 (Traumatic Brain Injury; TBI)'이라고 하면 흔히 교통사고와 같은 사고에 의한 손상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에서도 TBI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축구경기를 하다가 헤딩경합 후에 선수가 그라운드에 쓰러지거나 미식축구 경기에서 선수가 나동그라지는 장면은 우리들에게 익숙한 장면이다. 많은 스포츠 경기 중에서도 TBI가 발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경기가 권투다. 이미 100년 전에 권투선수에게서 'Punch Drunk Syndrome'이라는 만성적 진행성 후유증이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으며, 현재에는 'Chronic Traumatic Encephalopathy (CTE)'로 명명되고 있다. 그 증상은 운동기능의 이상, 인지 장애, 감정/행동 변화까지 다양하며 증상의 발현과 진행에 개인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은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CTE를 앓다가 사망한 환자의 부검 결과에서 흥미롭게도 다른 퇴행성뇌질환의 병리소견이 발견되었으며, 대부분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에 깊은 연관성을 가지는 병리소견들이었다. 이는 경미하지만 반복적인 TBI에 의해 신경세포에 생화학, 병리학적 변화가 발생하고 이러한 변화가 만성적으로 신경퇴행을 유도한다는 간접적 증거들이다. 특히 권투경기 중에 KO를 당하는 도중 뇌진탕이 발생한 경우에는 신경학적 증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되기도 하며 일부 선수들에서는 인지장애가 지속되기도 한다. 1969년에 보고된 한 역학연구에 의하면, 은퇴한 권투선수 중 17%에서 CTE가 발생하였으며, 선수 생활 중 많은 경기 수, 늦은 은퇴 나이, 권투선수로서의 선수생활 기간, 알츠하이머 위험유전자인 ApoE epsilon4 유전자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더 위험한 것으로 보고됐다.

그렇다면 TBI에 의한 신경손상의 정도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현재까지 연구에 의하면 뇌척수액에서 총 타우 단백질 (total tau protein)과 neurofilament light polypeptide (NFL)의 양이 경기 후 4-10일에 최고 농도로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타우 단백질의 농도증가는 회백질의 축삭돌기 손상을 반영하고 NFL의 농도증가는 축삭돌기 손상에 대해 민감하게 변화하는 단백질이다. NFL의 농도는 아마추어 권투선수의 두부에 타격받은 횟수와 상관관계를 갖는다. 뇌척수액에서 증가했던 신경손상 단백질 농도는 수주-수개월이 지나면 다시 기처치까지 떨어지지만, 축삭돌기의 손상과 일시적인 뇌혈액장벽 손상, 신경세포에서의 이온 밸런스 파괴, 교세포에서의 염증매개물질(사이토카인 등) 분비 등에 의해 타우단백질의 과인산화와 염증반응이 유발되어 만성적인 신경퇴행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까지 혈액에서의 TBI 표지자는 더 연구가 필요하다.

앞으로 스포츠 경기에서의 외상성 두부 손상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보면 아마추어 권투경기에서 헤드기어 착용을 없앤 국제아마추어복싱협회의 규정은 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직업으로서 돈을 벌기 위해 선수생활을 하는 프로선수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아마추어 선수들은 프로선수 뿐만 아니라 미래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필자가 스포츠 분야 전문가가 아니기에 함부로 속단하는 것은 무리지만, 적어도 아마추어 선수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들은 마련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주희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MRC 저산소 표적질환 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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