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영화 `국제시장`에 담긴 눈물](http://contents.dt.co.kr/images/201502/2015020602102251607001[1].jpg "[디지털인문학] 영화 `국제시장`에 담긴 눈물")
영화 <국제시장>의 인기가 대단하다. 개봉 한 달 만에 천만을 훌쩍 넘더니 천 삼백만은 무난히 돌파할 것 같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직접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대통령을 포함해서 영화를 본 관객들의 평은 거의 똑같다. 많이 울었다는 것이다. 나와 친한 모 대학 교수도 약간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영화 내내 울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한국식 신파를 싫어하는 나도 세 차례 눈시울을 붉혔다. 확실히 <국제시장>의 가장 큰 성공은 눈물이라 할 것이다. 그것도 평소에는 좀처럼 울지 않는 중장년 남성들의 눈물 말이다. <국제시장>은 분명 대한민국 성인 남성들의 눈물을 가장 많이 짜내는데 성공한 영화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미묘한 불안함이 뒷머리를 스친다. 이 눈물은 과연 어떤 의미의 눈물일까?
<국제시장>은 다른 측면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바로 어린이와 젊은 세대에게 쉽고 재미있게 역사 공부를 시켜준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가 소년시절부터 겪은 고난에 찬 여정을 되짚어가면서, 1950년 한국전쟁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를 흥미롭고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전쟁과 분단, 그리고 힘겨운 근대화 과정을 '죽어있는 문자'로만 접해 온 젊은이들은 <국제시장>의 '살아있는 영상'을 통해 해묵은 갈증을 해소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만들어진 많은 '팩션 영화들(사실과 허구를 결합한 영화)' 가운데 이 만큼 그럴 듯하게 역사 선생 역할을 해낸 것도 없는 듯하다. 그러나 여기서도 불안한 느낌이 스치고 지나간다. <국제시장>이 바라보는 역사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왜 눈물의 의미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의문을 던져야 할까?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두 시간짜리 대중영화 보고 잘 웃거나 잘 울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고. 대중영화 한 편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해지는 것은 지식인의 괜한 강박증일 뿐이라고. 맞는 말 같다. 영화를 만든 감독도 영화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송가(ode)'라고, 그러니까 전적으로 개인적인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럼에도 <국제시장>을 그냥 가볍게 넘겨버릴 순 없다. 그러기에는 영화가 유도한 눈물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보이며, 영화가 암시하는 역사관이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여겨진다 .
눈물이라고 해서 다 같은 눈물이 아니다. 아픔의 눈물, 억울함의 눈물, 그리움의 눈물, 기쁨의 눈물, 분노의 눈물, 어이없음의 눈물 등 세상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눈물이 있다. <국제시장>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떤가? 모두 예외 없이 자신의 힘든 처지에 아파하면서, 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눈물을 흘린다. 주인공 덕수는 말할 것도 없고, 덕수의 어머니와 덕수의 아내도 다르지 않다. 그것은 기구한 삶의 운명을 한탄하고 수동적으로 감내하면서 흘리는 눈물이다. 이것은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결국 관객은 두 가지 의미가 겹쳐진 눈물을 흘리게 된다. 즉 등장인물의 절망과 비애에 공감하고, 그 위에 자신의 지난 힘든 순간들을 오버랩시키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이는 영화 말미에 노년의 덕수가 혼자 사진 속 아버지를 향해 오열할 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버지, 저 진짜 힘들었거든예. 아버지, 근데 예, 정말 많이 보고 싶습니더." 삶의 비극적 운명, 아픈 상처와 그리움에 대한 회상과 회한. 이 보다 더 절절하고, 이 보다 더 애틋한 눈물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눈물은 실상, 가장 소극적이면서도 가장 폐쇄적인 눈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주관적인 아픈 기억들 속에 가둔 자의 눈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이 받아들인 운명에 대해 수동적으로 한탄하면서, 자신의 아픈 과거를 스스로 위로하려는 자의 눈물이다. 한 마디로 '자기-감상'과 '자기-연민'에 가득 찬 눈물인 것이다. 눈물의 느낌이 절절해서 스스로는 좀처럼 인지하지 못하지만, 이런 눈물의 주체는 암암리에 타인들과 공동체를 자신의 시야에서 배제시키고 있다. 심지어 그는 세상에 어느 누구도, 자기 가족들조차도 자신의 고통과 고뇌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기 일쑤다.
<국제시장>이 보여주는 역사 또한 이러한 눈물의 의미에 정확히 상응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한국 사회의 여러 중대한 변화에 대해 단 한 번도 의문을 품거나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과 감정에만 전념할 뿐이다. 물론 이는 영화가 한 가족사에 집중한 까닭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가 비춰주는 사건들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며 소영웅주의적으로 연출되어 있는 점, 아울러 관객의 웃음을 위해 곳곳에 대중문화 스타들(앙드레김, 남진, 이만기 등) 이야기를 삽입시키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제시장>에서 우리의 현대사는 아무런 연관성과 깊이를 갖지 못한 채, 개인들의 주관적이며 감상적인 에피소드들로 해체되어 버린다. 어디선가 본 듯한 '나비' 알레고리가 끝내 모호하고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국제시장>은 내 슬픔과 눈물이 결코 삶과 역사의 진실을 담보해 줄 수 없음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하선규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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