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새 출발을 위한 `애도`](http://contents.dt.co.kr/images/201501/2015010902102251607001[1].jpg "[디지털인문학] 새 출발을 위한 `애도`")
사건사고로 얼룩진 작년 한해를 정리하며 내가 선택한 책은 김형경 작가의 <좋은 이별>이었다. 이 책의 주제는 상실과 애도인데, 정신분석적 심리 치료의 관점에 따르면 "개인적, 사회적 병리의 모든 원인은 사랑을 잃거나 소중한 대상을 상실한 후 그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마음 치유의 핵심으로 애도를 내세운다. 애도란 무엇일까? '슬픔'이 우리 마음속에 깃든 감정과 생각이라면, '애도'란 이런 '슬픔의 감정을 외부로 표현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애도 작업'은 '슬픔을 표현하는 행위뿐 아니라 슬픔과 관련된 감정의 단계를 거치면서 심리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작년 온갖 사건사고를 겪으며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은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이를 잃었던가! 우리는 그 지독한 상실의 아픔과 슬픔을 제대로 그리고 충분히 밖으로 표현했던가? 그러한 애도 작업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하고, 누구의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할까?
이런 질문을 품을 즈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란 다큐영화가 극장가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강원도 산골마을에 사시는 98세 할아버지와 89세 할머니의 일상을 보여주는 다큐가 많은 관객, 특히 젊은 관객들에게도 뜨거운 감동을 주는 것은 76년의 세월을 함께한 노부부의 진실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한복의 색깔까지 맞춰 커플 옷을 입고 손을 꼭 잡고 다니시는 모습이나 천진난만한 장난, 가슴 훈훈한 배려의 장면들은 보는 이의 가슴에 짙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의 제목이 암시하듯, 이 영화의 주제는 두 분의 순박하고 맑은 사랑과 함께 가슴 아린 이별이다. 영화의 후반부, 할아버지의 기침이 심상치 않자 할머니는 시장에서 네 벌의 내복을 사온다. 손자들을 위한 선물인가라는 의문은 아궁이 앞에 앉아 내복을 태우며 내뱉는 할머니의 독백을 통해 풀린다.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떠나보낸 네 명의 자식 이름을 부르며 '곧 아버지가 가게 될 테니 조금만 참아라, 살아생전에 내복도 제대로 못 입혀 미안했노라'며 눈물짓는다. 이윽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옷마저 태우며 이별을 준비하신다. 이러한 할머니의 행위가 바로 정신분석학적 관점의 애도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자 감동은 배가되었다. 76년의 동반자를 떠나보내야 할 슬픔과 상실감을 미리 표현하고 대비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이 너무나 절절히 느껴졌다. 그런 이별 준비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의 산소 앞에서 할머니의 울음소리는 속절없이 내리는 눈처럼 그칠 줄을 모른다. 할머니의 애도는 할아버지가 부재한 세상 속에서도 여생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흥행 열풍을 일으키며 이념 논쟁에 휘말리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도 애도의 관점에서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피난길에 어린 여동생을 잃어버린 죄책감, 그 여파로 아버지마저 이별해야 했던 슬픔과 함께 가장의 책임감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덕수'의 일대기를 통해 우리 현대사의 굴곡과 애환을 웃음과 눈물로 버무려낸 영화이다. 이산가족을 찾는 방송을 통해 어린 시절 생사의 기로에서 헤어졌던 여동생을 귀 뒤에 있는 사마귀로 확인하는 순간, 주인공의 오열과 더불어 영화관의 여기저기에서 관객의 눈물샘이 폭발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서독과 베트남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긴 덕수는 국제시장의 '꽃분이네'가게를 평생 지켜낸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혹시 찾아올 아버지를 위해서이다.
덕수는 아버지와 여동생과의 이별이라는 슬픔을 평생 안고 살아야했다. 그 슬픔의 빛깔은 둘도 없는 친구 '달구'와 사랑하는 아내, 동생과의 재회를 통해 상당 부분 희석된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은 제대로 된 애도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바로 덕수로 대변되는 우리 현대사의 슬픔은 개인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국가와 사회가 그러한 개인들의 애도 작업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던가?
'예술은 동시대인들의 무의식적 집단 애도 작업을 대신하거나 도와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연말연초 두 영화의 흥행 열풍은 어떤 점에서 세월호를 포함한 작년의 사고가 가져온 슬픔과 상실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적 애도 작업의 일환으로 읽힐 수도 한다. 그런 점에서 애국심을 운운하며 진영 논리적 시각에서 이 영화를 해석하려는 것은 공감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애도의 기본을 모르는 비인간적 처사일 뿐 아니라 또 다른 차원의 국가 폭력을 낳을 수도 있다.
김승환 (조선대학교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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