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아름다운 12월` 맞이할 수 있을까](http://contents.dt.co.kr/images/201412/2014121202102251607002[1].jpg "[디지털인문학]`아름다운 12월` 맞이할 수 있을까")
어느덧 12월이다. 차가운 기온에 바람까지 매섭다. 매일매일 겨울의 한복판에 있음을 절감하는 요즈음이다. 이때가 되면 자연스레 한 해를 돌이켜보게 된다. 지나간 2014년은 어떠했는가? 암울하고 우울하다. 우울하다 못해 참담한 심정을 금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정상적인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결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는 더더욱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는 직접적으로는 무능한 정부와 파렴치한 선원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인재(人災)였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사회 깊숙이 스며있는 편법, 특권, 반칙의 야만이 빚어낸 참혹한 살상이었다. 거의 모든 기성세대들이 저절로 비통함과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그 동안 어떻게 살았나? 순수함, 선함, 공정함이란 말은 내게 얼마나 멀어지고 낯설어졌는가? 적응과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불공정한 타협과 비겁을 받아들였는가?' 많은 기성세대들이 마음속에 이런 자책과 회한의 물음을 품고 304명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자 했다.
그런데 12월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세월호 참사만이 아니다. 올해 우리가 겪은 혹은 지금도 겪고 있는 대형사고를 기억해보라. 경주 리조트 체육관 붕괴, 고양 버스터미널 화재, 장선 요양병원 화재, 판교 테크노벨리 환풍구 붕괴, 여전히 실종자를 수색 중인 원양어선 오룡호 침몰 등 쉴 새 없이 대형사고가 이어졌다. 뉴스들은 또 어떠했는가. 대부분 슬프고 수치스러운 것들 일색이다. 노인 자살율과 청소년 자살률은 언젠가부터 OECD 34개국 중 항상 1위다. 유엔이 발표한 행복지수 순위는 전 세계에서 56위인데, 어린이와 청소년층만 두고 보면 OECD 가운데 단연 꼴찌다. 터키나 멕시코의 아이들보다 더 불행하다는 얘기다. 국가청렴도 순위는 전 세계로는 43위, OECD에서는 27위로 역시 하위권이다. 사회복지비 지출 순위는 OECD 33위, 소득 불평등 수준은 통계적으로는 OECD 29위지만, 실제로는 칠레, 멕시코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출산율 또한 1.19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열거하자니 정말 끝이 없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가뜩이나 우울한데 왜 굳이 부정적인 소식만 들춰내느냐고. 맞는 말이다. 괜히 연말 분위기 잡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필자 또한 누구 못지않게 12월을 우아하고 아름답게 보내고 싶다. 거리에서 울리는 친숙한 캐롤송에 그냥 편하고 아늑하게 젖어들었으면 좋겠다. 헌데 그게 잘되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단지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의 자격지심 때문이 아니다. 이제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야 할 시간이 훨씬 짧다는 사실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다가오는 새해가 올해보다 더 힘들고 암울할 것이라는 예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본래 예감이 무서운 것은 들어맞아서가 아니다. 예감은 느껴지자마자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희망은 불길한 예감 앞에서 힘 한번 못쓰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괜찮아, 나아질 거야.'라는 다짐이 불안 앞에서 곧바로 사그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아름답고 우아한 12월은 영영 불가능한 일일까? 그렇지는 않다. 완전한 희망이 없는 것처럼, 완벽한 불가능도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리는 잔잔한 미소 속에서 12월을 보내고, 들뜬 마음으로 1월을 기다릴 수 있을까? 필요한 것은 올바르게 시작하는 일이리라. 올바른 시작. 그런데 올바른 시작은 과거를 지우거나 현재에 만족하는 일, 혹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는 일이 아닐 것이다. 반대로 그것은 과거의 잘못과 현재의 추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못나고 추한 모습은 최대한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회피해서는 새해를 향한 어떠한 희망도 싹틔울 수 없다.
특히 4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은 그동안 한국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떤 문제점을 확인했는지, 이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철저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혁신이 필요한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아름다운 12월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통절한 자기반성과 실천적 혁신이 없다면, 2015년 12월도 올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선규 홍익대 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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