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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의 경제통하기]`재벌 3.0` 시대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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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의 경제통하기]`재벌 3.0` 시대에 거는 기대
이규화 경제담당 선임기자

삼성과 한화의 방산·화학 빅딜은 한국 기업사에 이정표가 될 일대 사건이다. 선단식 기업군을 거느린 재벌이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 기업으로 가는 길을 하나 크게 뚫은 셈이다. '재벌'이 함축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고 바람직
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홍수가 져 거대 물살이 휩쓸고 지나가면 그 다음부터는 강물이 그리로 흐른다. 삼성과 한화가 큰 물길을 만들었다. '재벌3.0'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번 인수합병은 이전과 다른 특징이 있다. 첫째, 자발적 인수합병이다. 보통 재벌 기업들간 인수합병은 정부와 금융의 외압에 못 이겨 했다. 둘째, 국내 수위 재벌간 매머드급이라는 점이다. 거래 규모가 2조 원에 달한다. 삼성은 그룹의 주력 급으로 키워오던 기업을 내놨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이제 아무리 규모가 크고 주력이었다 해도 사업재편과 생존이란 이름 아래에서는 M&A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다. 셋째, 재무적 필요에 의한 구조조정이 아닌 사업재편 측면의 거래라는 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전의 M&A는 양도자가 돈줄이 말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번 빅딜은 수십 조 원의 내부유보금을 쌓아놓고 있는 삼성이 돈이 필요해서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인수합병을 한층 업그레이드된 '선진형'이라 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와 재벌간 에는 거의 등식이 성립한다. 은행 정도만 빼놓고는 한국경제가 곧 재벌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발전하고 경쟁력을 갖는 것은 곧 한국경제의 결실이다. 재벌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좋거나 싫거나 재벌이 잘 돼야 우리 경제가 좋아진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재벌은 급격히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시가총액 기준)을 키워왔다. 외환위기 이전 97년 비중이 33% 정도에 그쳤지만 2000년 50%에 육박하더니 지난해에는 70%에 달했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와 반강제적 재벌 구조조정을 한 것이 결국 재벌 성장의 밑바탕이 된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재벌3.0'으로 진화하는 우리 재벌기업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재벌은 그동안 진화를 거듭해왔다. '재벌 1.0' 시기는 1960년대 후반 이후 1997년 외환 위기 때까지다.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는 시기로 재벌과 관이 밀착돼 문어발식 확장이 이뤄졌다. '재벌 2.0'시기는 외환위기라는 거대 외풍에 의해 수동적 구조조정을 거쳐 군살을 빼던 시기다. 1000%에 이르는 부채 경영에서 탈피해 내실경영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지만 이를 토대로 2차 문어발 확장을 도모하던 시기다. '재벌2.0'은 소액주주 운동으로 거센 역풍을 만나고 출자총액규제와 순환출자 제한, 금산분리라는 타율을 맞아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였다.

그러던 것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역풍이 잠잠해졌다. 경제회복이란 발등의 불 덕분에 재벌은 다시 살을 찌운다. 고환율과 엔고는 재벌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모면하도록 도왔다. 작년 일본에 아베 신조가 들어서기까지가 이 시기다. 그러나 아베가 들어서며 일순간 조건이 바뀌었다. 무한정 양적완화로 엔화가치는 급전직하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경제 성장률이 7%대로 급락했다. 우리 경쟁자인 일본은 엔고 시기에 근육을 만들어 지금 엔저를 즐기고 있고 중국은 중간재를 이제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수출은 그럭저럭 되지만 문제는 미구에 닥칠 변화다. 우리 텃밭이 닫힐 날이 머지않았다.


'재벌 3.0'시대 개막과 더불어 이제 정치권이 화답할 차례다. 규제개혁에 박차를 가해 '재벌 3.0' 시대가 순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수합병, 노동유연성, 공정거래 등과 관련한 규제를 정비하고 기업가 정신을 북돋워야 한다.
자발적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주식양도세(현재 20~30%)의 한시적 감면제도 같은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 많은 재벌그룹에서 저수익 사업 처리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인센티브는 이들이 행동에 나서도록 할 것이다. 줄어드는 세수보다 우리 기업들의 사업 환경이 좋아지고 경쟁력이 높아지면 나중에 그 몇 배를 세금으로 거둘 수 있다.

최경환 부총리가 요즘 밀어붙이고 있는 노동유연성 제고도 기업들에겐 천군만마다. 67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의 고용경직성이 빚은 결과다. 우리나라 노동유연성은 노사보다는 노노 관계에서 비롯된다. 최근 나온 OECD 보고서는 한국의 노동시장유연성이 34개국 중 24위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삼성과 한화간 빅딜에서도 주요 해결과제였던 고용문제는 기업간 M&A에 큰 난관이다. 노동시장유연성 확대로 이를 풀어줘야 한다.

공정거래법 적용에서도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발적 M&A에 대해서는 독과점법 적용을 한시적으로 완화하거나 유예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완전 개방 경제에서 국내 기업들에게만 과도하게 공정거래의 칼을 휘두르는 것은 외국기업만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국민들도 이제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주축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번 삼성-한화의 빅딜은 무기력한 우리 경제에 죽비 같은 소식이다. 잠을 깨우는 사이렌이다. 이제 '재벌3.0' 시대를 관전하며 즐기자.

이규화 경제담당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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