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나노기술의 아버지' 하버드대 리버 교수와 공동연구 속속 성과
워커홀릭도 스승 닮아가… 밤 9시부터 새벽 2시 '또 다른 하루'
나노태양전지·암진단 나노광소자·광컴퓨터 개발 등 '숙제' 산적
'나노기술의 아버지' 하버드대 리버 교수와 공동연구 속속 성과
워커홀릭도 스승 닮아가… 밤 9시부터 새벽 2시 '또 다른 하루'
나노태양전지·암진단 나노광소자·광컴퓨터 개발 등 '숙제' 산적
■ `My Hero` 사이언티스트
박홍규 고려대 교수(물리학과)의 시계는 미국 보스턴 시간에 맞춰 돌아간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일상이지만, 미 하버드대 연구자들이 실험에 집중하는 오전시간인 밤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그는 또 다른 하루를 연다.
하버드대 박사후연구원 시절 지도교수였던 찰스 리버 교수와의 공동연구를 일상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 '나노기술의 아버지'로 불리며 노벨화학상 1순위에 항상 거론되는 리버 교수는 잠자고 밥 먹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연구에 파고드는 워커홀릭이다. 박 교수는 졸음을 걱정해 밥도 잘 챙겨먹지 않는 리버 교수와 호흡을 맞춘 후유증(?) 덕분인지 퇴근을 해도 저녁식사 후엔 다시 연구모드로 들어간다.
누구보다 연구에 열심인 그는 2004년 KAIST 물리학과 박사과정 시절 전기로 작동하는 가장 작은 레이저를 개발해 과학자라면 누구나 염원하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해 유명세를 탔다. 2007년 만 30세에 교수로 임용된 후엔 2009년 정부가 지원하는 최고 권위의 개인연구자 지원사업인 미래창조과학부 '창의연구' 과제에 최연소로 선정돼 또 한번 과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물리학과 화학의 경계에서 융합을 꿈꾸는 그의 인생 최고 목표는 인공눈 개발이다. 나노세상의 빛을 제어해 인류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
신참교수 시절 연구실 동료였던 권순홍 중앙대 교수(물리학과)는 "박 교수는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어려운 목표를 선택해서 긴 시간 포기하지 않고 매달려 창의적인 성과를 얻어낸다"며 "학생이나 동료 연구자들과 끊임 없는 대화를 이어가는 친근한 연구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연구 동료였던 김선경 경희대 교수(응용물리학과)는 "현재 하는 연구에 매진하다 보면 다음 단계에 무엇을 할지 중장기 과제에 소홀하기 쉬운데 박 교수는 항상 다음 단계를 보고 연속적인 연구를 하는 혜안과 미래에 대한 안목이 확실히 뛰어나다"며 "연구도 사회현상 문제를 푸는 것과 비슷한데, 문제 해결에 가장 필요한 맥을 잘 집어내 완성도를 높이는 점도 존경스럽다"고 밝혔다.
인터뷰=안경애 생활과학부장
-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었나. 꿈의 어디까지를 이루었나.
"어릴 때는 로봇과 과학상자 조립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뭔가 만드는 것과 수학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를 꿈꿨다. 로봇 조립은 지금도 좋아한다. 당시는 과학교육을 강조해, 공부 잘 하면 무조건 과학고를 가는 시절이었다. 과고 시절 실험을 통해 다양한 해법을 찾는 물리로 전공을 결정했다. 크기는 매우 작아졌지만 요즘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아 대충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요즘 꿈은 인공눈을 만드는 것이다."
- 잘 나가는 30대 교수인데 요즘 일상은 어떤가.
"2007년 교수 임용 직후부터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하버드대의 지도교수였던 찰스 리버 교수와 공동연구를 해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 근무시간에 맞춰 강의와 연구를 하고 나서는 저녁식사 후 다시 학교에 와서 실험과 계산, 미팅을 계속하고, 밤 늦게 귀가한 후에는 보스턴 시간에 맞춰 다시 새벽까지 일하는 일상을 이어갔다. 한국 시간 밤 12시에 보스턴의 하버드대는 오전 11시라 이메일을 보내면 바로 답장을 받을 수 있어 일 진행이 빠르기 때문이다. 리버 교수가 연구에 몰두하느라 식사도, 잠도 잘 거르는 스타일인데 닮아가는 것 같다. 박사후연구원 때는 새벽 3시든, 금요일 밤 11시든 이메일이 오면 바로 답장을 보내거나 미팅을 해야 했다.
최근에는 학교와 집 거리가 좀 멀어져서 저녁에 다시 출근은 하지 않는데 항상 밤 9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일을 한다. 나노라는 연구분야 특성상 트렌드가 매우 빠르게 변해서 다양한 연구자들과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최근에는 논문 2~3개를 동시에 진행하느라 늦게까지 논문 작업을 한다."
- 물리학으로 박사를 따고 박사후연구원은 화학과로 갔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나노는 원래 화학에서 파고드는 주제다. 물리를 공부하면서 광학과 레이저에 대한 지식이 있었는데, 화학을 통해 물리에서 접근하지 못하는 나노물질의 광학적 특성을 밝혀보고 싶었다. 화학과 물리, 공학의 틈새를 파고드는 접근방법을 취한 것이다. 나노물질에 대한 지식과 광학 및 물리 지식을 결합하면 할 일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연구영역에 대해 설명해달라.
"물리와 화학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빛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와, 나노구조를 공학적으로 응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빛은 나노구조와 강하게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나노구조를 잘 디자인하면 빛을 원하는 대로 제어할 수 있다. 이를 에너지 효율이 매우 좋은 나노 크기의 레이저, LED(발광다이오드), 태양전지 등에 응용할 수 있다. 요즘은 투명망토 개발에도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진다."
- 인공눈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는데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
"나노세계의 빛을 제어하면 과거에 불가능했던 많은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현재 인공눈 기술은 마이크로 크기 디바이스를 이용해 사물을 흑백으로 분간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나는 나노 크기로 줄이고 컬러로 볼 수 있는 인공망막을 개발하는 게 꿈이다. 눈은 빛을 화학에너지로 바꾼 후 다시 전기에너지 형태로 신경을 통해 뇌로 가도록 한다. CCD(고체촬상소자)와 같은 원리다.
햇빛을 잘 흡수하는 나노 크기 태양전지와 인공망막의 원리가 같다. 사람이 빛을 인식하려면 특정 색깔만 인식해서 전기신호로 바꿔주면 된다. 우리 눈에는 색깔을 자각하는 세포가 있는데, 그 세포와 같은 기능을 하는 나노구조를 만들면 된다. 인공망막은 실제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아 상용화가 됐다. 그런데 전자소자를 쓰다 보니 열이 나서 정상세포를 손상시키는 문제가 있다. 이걸 나노 크기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5~10년 정도 후엔 구현 가능할 것으로 보고, 하나하나 기술적 스텝을 밟고 있다."
- 인공눈을 구현하려면 바이오 관련 지식이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그래서 바이오를 잘 하는 사람과의 공동연구를 꿈꾼다. 지금은 나노태양전지까지 개발한 상태다. 특정 색깔의 빛만 전기로 바꾸는 모듈 등 요소기술이 거의 돼 있다. 이 기술들을 묶는 게 핵심인데 공학적으로 묶는다고 잘 동작하지는 않는다. 바이오 지식을 토대로 생체친화적으로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 나노태양전지와 암 진단기술 개발도 도전하고 있는데.
"궁극적 목표는 '모든 것을 빛으로 바꿔보자'는 것인데, 잘 사는 것을 연구목표로 잡다 보니 에너지와 질병 문제가 핵심으로 다가왔다. 나노기술을 통해 태양전지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면 스마트폰 배터리를 없애고 태양전지의 새로운 응용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 햇빛으로 충전하면 2~3일 정도 스마트폰을 쓸 수 있는 나노태양전지를 만드는 게 목표다.
암 진단도 빛을 이용해 할 수 있다. 우리 몸에서는 암세포가 계속 생겼다 없어지는데, 제때 없어지지 않으면 암으로 이어진다. 피검사만으로 0기나 1기에 암을 진단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암은 정상조직보다 약간 산성이고 온도가 조금 높다. 그 차이가 거의 분간이 힘든 정도인데 온도가 높으면 빛의 굴절률이 달라지고, 산성도가 높으면 물질에 미세한 변형이 일어난다. 그 변화를 빛으로 감지하는 나노광소자를 개발해 암을 진단하는 게 목표다. 영상진단을 하지 않고 간단한 피검사나 소변검사로 진단이 가능해진다."
- 전자 대신 빛을 이용한 컴퓨터도 현실화될까.
"전자 대신 빛이 다니는 나노레이저와 나노LED를 이용하면 광컴퓨터를 구현할 수 있다. 전자를 이용한 현재 컴퓨터는 열이 많이 나고 성능에 한계가 있는데 빛은 세상에서 가장 빠르니 계산성능이 뛰어나고 열도 안 난다. 우리 실험실만 해도 빛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위한 컴퓨터 계산을 하기 위해 40여대 컴퓨터를 연결해 작은 슈퍼컴을 만들었는데 방 온도가 40도 가까이 올라가 에어컨 값과 전기료 부담이 크다.
광컴퓨터에서는 빛을 만들어 움직임을 제어하는 게 큰 이슈인데, 만드는 것은 레이저로 하고 제어는 빛이 금속선을 쫓아가게 하는 방법이 있다. 빛을 저장하는 기술도 필요한데, 빛을 그냥 흡수하는 게 아니라 정보를 유지한 채 흡수하도록 구현하는 게 숙제다."
- 연구분야가 무척 넓다.
"그렇다. 다양한 영역을 파고들다 보니 공부할 게 너무 많다."
- 공동연구를 활발하게 하는지.
"많이 하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과 하면 좀 껄끄럽고 어려워서 주로 아는 사람들과 한다. 우리 연구실에 있다가 다른 대학으로 간 교수들, 하버드대 지도교수, KAIST 지도교수 등이 주된 공동연구 파트너다."
-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 같은데 실패와 좌절의 경험도 있나.
"가장 주목받은 연구성과인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이 바로 수많은 실패 끝에 얻은 결과였다. 레이저는 작아질수록 에너지가 적게 들어 무조건 좋아지는데 당시 전기로 작동하는 가장 작은 레이저를 개발해 사이언스에 발표를 했다.
초창기 레이저는 엄청나게 컸는데 현재 누구나 쉽게 쓰는 레이저포인터는 1.5V 배터리 두 개로 레이저를 만든다. 좀더 줄이면 어떻게 될까. 인간 체온만으로 작동하는 레이저를 만들 수 있을까. 나노 연구자들은 그런 연구를 한다.
그런데 나노레이저는 너무 작아서 전기가 흐르는 길을 만드는 과정이 힘들었다. 그 와중에 야구를 하다가 공에 눈을 맞아서 6개월간 연구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연구인생을 막 시작한 20대 중반에 실명 위기를 겪은 것이다. 그 사건이 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기술적으로 전기가 흐르게 하는 방법은 알겠는데 구현이 힘들었다. 바로 지름 200나노미터 기둥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걸 만드는 데 1년 가까이 들었다. 100번 정도 하니까 되더라. 99번 정도는 실패했다는 거다. 수많은 실패를 딛고 내놓은 그 연구성과로 스포트라이트를 엄청나게 받았다.
2009년에는 2년간 진행한 연구결과가 꽤 좋아서 네이처에 논문을 냈는데 바로 다음날 탈락하기도 했다. 연구에서는 실패가 일상이다."
- 연구만 파고드는 것 같은데 취미생활은.
"주말 예능프로그램을 보는 게 취미라면 취미다. 특히 유재석의 '광팬'이어서 런닝맨과 무한도전은 빼놓지 않고 꼭 본다. 올해 초등학교 입학한 딸아이의 공부도 가끔 봐준다."
- 과학자의 꿈을 꾸는 청소년이나 청년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머리가 좋지 않아도 끝까지 살아남아서 연구에 매달리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청색LED를 개발해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아마노 히로시 일본 나고야대 교수의 경우 지도교수 연구실에 합류해 스승과 함께 대를 이어 연구한 끝에 노벨물리학상까지 받았다. 끈기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러려면 동기부여가 돼야 한다. 본인만의 동기를 갖고 매달리면 성공할 수 있다."
안경애 생활과학부장 naturean@dt.co.kr
사진=유동일기자 eddieyou@
■ 박홍규 교수는…
박홍규 고려대 교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세계의 빛을 조절해 인류에 새로운 도구를 선물하기 위한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KAIST에서 물리학 학·석·박사를 받은 국내파 박사인 그는 미 하버드대 화학과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내면서 물리와 화학의 경계를 오가는 나노연구 영역을 개척했다. 박사과정 중 2004년 전기구동 광결정 레이저를 개발해 사이언스지에 논문을 발표했고, 만 30세에 고려대 교수에 임용됐다. 2009년 최연소 '창의연구' 단장에 선정된 데 이어 2012년에는 최연소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준회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5년 한국물리학회가 수여하는 젊은물리학자상을, 2009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현 미래창조과학부) 국가연구개발우수성과, 2010년에는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우수성과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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