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회준 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
현대전자 D램 설계실장 맡으며 반도체 인연 시작
시스템반도체, 학계 · 산업계 협력해야 미래 밝아져
창의력 인정 '바텀업' 전략으로 ICT강국 초석 마련
현대전자 D램 설계실장 맡으며 반도체 인연 시작
시스템반도체, 학계 · 산업계 협력해야 미래 밝아져
창의력 인정 '바텀업' 전략으로 ICT강국 초석 마련
■ `My Hero` 사이언티스트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반도체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1990년대 본격적인 반도체 연구개발에 착수해 단기간 내 세계 정상급 기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통해 반도체는 우리나라 핵심 주력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 기술로 개발한 반도체가 '세계 최초'라는 꼬리표를 달고 세계 반도체 산업을 평정하면서 '반도체 신화'를 써 갈 수 있었다.
유회준 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반도체 분야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데 기여한 주역 중 한 명이다. 16메가 D램을 시작으로 256메가 SD램, 3D 그래픽칩, 네트워크온칩(NoC), 구글 글래스를 능가하는 'K-글래스' 등 반도체부터 최근에는 웨어러블 컴퓨터, 모바일 헬스케어 영역으로 확장해 혁신적인 연구성과를 내놓고 있다.
유 교수의 연구 지향점은 명확하다. '인간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 그리고 ICT 융합을 통해 '기술 한류'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것이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는 우리가 주도하는 세계 최고의 기술을 전 세계에 퍼뜨려 세계 사람들이 공감했을 때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한류가 전 세계 속으로 뻗어 나가듯이 이제 우리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ICT 분야에서 '기술한류'를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요즘 일상은 어떤가.
"지난 4월부터 맡고 있는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 회장 업무로 정신이 없다. (유 교수는 지난 2월 '반도체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분야 학회인 ISSCC 학회장에 아시아 대학 최초로 선출됐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 퇴근 때까지 논문과 관련한 연구자들의 메일에 일일이 답변해야 하고, 틈틈이 학생들의 실험을 챙겨야 한다. 최근에는 내년 2월 개최되는 학회를 앞두고 본격적인 논문심사 준비를 해야 하고, 회의 주제를 정해야 해 해외출장도 잦다."
-어릴 적 꿈이 과학자였나.
"당시 대다수 어린이의 꿈은 '과학자'였다. 나 역시 과학자를 꿈꿨다. 어릴 적 부모님이 나무로 집을 지을 수 있는 장난감을 사 주셨다. 지금의 레고와 같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장난감으로 무엇인가를 계속 만들어 보면서 상상력과 과학에 대한 흥미를 키울 수 있었다. 나무 장난감이 과학자가 되기까지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어린아이들에게 선물을 사 줄 일이 있으면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는 장난감을 사 주라고 얘기하곤 한다."
-반도체 설계 분야의 권위자다. 반도체와의 첫 인연은.
"대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레이저로 반도체를 만들면 멋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당시 권영세 교수님께 생각을 말씀드려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고, 미국 유학 시절에는 이용희 교수와 함께 빅셀(레이저 빛이 반도체 웨이퍼 표면에서 나오는 초소형 마이크로 반도체 레이저)를 연구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현대전자에 취직했는데, 연구소장을 맡고 있던 오계환 전 KAIST 교수가 공석이었던 D램설계실장을 맡아 달라고 해서 반도체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D램설계실장을 맡으면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주력 제품이었던 16메가 D램을 처음 개발했다. 이어 256메가 S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ISSCC 학회에서 발표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에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반도체 분야로 우수한 인력이 많이 몰렸고, 우수한 성과도 많이 낸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반도체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신생 학문으로 좋은 인력들이 대거 뛰어들었고 좋은 연구성과를 내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반도체 분야에서 우리나라 출신 파이오니어급 연구자들이 많이 나온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들의 연구와 인적 네트워크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그들 밑에서 우수한 제자들이 많이 배출됐다.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 벨연구소에서 '전계효과 금속산화물반도체(MOS-FET, 모스펫)'을 세계 처음으로 개발한 강대원 박사다. 강 박사는 지금도 세계 최고의 반도체 연구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우리나라는 메모리반도체에 강한 반면 시스템반도체는 약한데.
"인력양성이 너무 단편적으로 이뤄져 왔다. 새로운 시스템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인력을 양성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고집적화, 고기능화, 초소형화되고 있는 지금의 반도체 수요 관점에서 볼 때 단편적인 소자만 개발하는 인력은 소용이 없을 뿐더러 경쟁력도 갖지 못한다."
-시스템반도체를 육성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정부와 산업계가 시스템반도체 육성에 적극 나서는 것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시스템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강화한다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KAIST는 ISSCC에서 3년 연속 가장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있고, 우수논문상도 받을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역량을 갖고 있다. 산업계와 연계한다면 시스템반도체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종합적이고 융합적인 시스템반도체 육성을 위한 큰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뒤따라가는 연구를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나.
"융합화가 급속하게 이뤄지면서 반도체는 전 산업구조를 바꾸는 역할을 할 것이다. 헬스케어 분야를 예로 들면, 병원에 있는 각종 진단장비와 시스템이 반도체 기술을 통해 손바닥 크기의 휴대용 기기로 바뀌고, 병원에 갈 필요 없이 반도체에 저장된 환자의 생체신호와 정보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의사에게 전달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반도체가 만들고 있다. 머지않아 인간의 몸에 CPU 같은 반도체가 장착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웨어러블 컴퓨터 대회나 지능형 SoC 로봇워 등 대중적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데 개최 배경과 성과는.
"대학생들에게 반도체를 쉽게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누군가가 '반도체를 직접 만들어 보는 대회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한 것을 계기로 시작했다. 2000년대 초 로봇이 인기였다. 그래서 로봇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만들어 보는 '지능형 SoC 로봇워'를 개최하게 됐고, 이후 '웨어러블 컴퓨터 대회'도 기획하게 됐다. 로봇과 웨어러블 컴퓨터 모두 반도체가 들어가는 분야로, SoC(시스템온칩)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다. 매년 참가자들이 늘어나고 실력도 높아져 반도체의 저변을 많이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최근 웨어러블 컴퓨터가 주목받는 이유는.
"쉽게 말하면 내 몸에 컴퓨터를 장착하는 것이 웨어러블 컴퓨터다. 몇년 전만 해도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PC가 있는 사무실이나 집에 가야 했다. 웨어러블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시공간 제약 없이 일상생활에서 컴퓨터를 접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언제든지 외부와 통신을 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웨어러블 컴퓨터와 함께 하는 시대가 됐다. 이는 인간의 생활과 라이프스타일을 바꿔 비즈니스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단지 제품을 만들어 팔면 비즈니스가 끝나는 시대에서 제품 판매 이후 사용자의 기호와 취향, 습관 등을 토대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웨어러블 컴퓨터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은.
"웨어러블 컴퓨터를 반도체 칩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아직 웨어러블 컴퓨터 전용 칩이 전무한 실정이어서 다른 용도로 나와 있는 것을 쓰고 있다. 지금이 웨어러블 컴퓨터를 반도체화할 수 있는 적기라고 본다. 이를 기반으로 웨어러블 컴퓨터를 구현할 수 있는 토털 솔루션 개발에도 나서야 한다."
-창조경제의 핵심인 ICT 융합이 성과를 내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ICT가 다른 산업과 융합하면서 기존 산업구조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 최근 지어진 아파트에 가보면 각종 기기들이 ICT 융합을 통해 완전 자동화돼 있다. 아파트 자체가 컴퓨터인 셈이다. 자동차도 ICT 융합이 가속화되면서 상상 속에서나 있었던 기능들이 대거 실현되고 있다. 우리의 삶과 라이프스타일 역시 ICT 융합을 통해 완전히 바뀔 것이다.
융합으로 성과를 내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ICT 융합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하고, 그 패러다임을 우리가 주도해야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일례로 기존 시스템에 반도체를 접목시켜 전혀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 내는 것도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ICT 융합의 한 방법이다. 이를 통해 'ICT 융합 기술한류'를 세계 속에 만들어 가야 한다."
-연구에서 중점을 두는 점은.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연구의 지향점은 사람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다. 행복 중에서도 건강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스마트폰으로 각종 센서를 컨트롤하는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연구분야가 모바일 헬스케어다.
최근 가장 관심을 두는 연구분야는 인간의 뇌를 모방한 CPU를 개발하는 것이다. 뇌 구조를 어떻게 활용하면 CPU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최근에 개발한 K-글래스가 그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K-글래스는 구글 글래스보다 30배 이상 속도가 빠르고 사용시간이 3배 이상 긴 고성능·저전력 머리장착형 디스플레이(HMD)로, 세계 최초로 증강현실 전용 프로세서를 내장해 증강현실을 구현해 준다."
-우리나라가 ICT 강국으로 입지를 강화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바텀업(Bottom-Up) 전략이 필요하다. 경영자나 임원이 지시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톱다운(Top-Down) 전략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일반 직원들이 갖고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줄 알고 존중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은 평직원들의 소소한 아이디어까지 존중하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고 판단하면 직책에 상관없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2002년 일본 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와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나카무라 슈지 등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평사원일 때 아이디어를 내 그것을 발전시켜 노벨상을 받았다. 우리도 작은 아이디어라도 새롭고 창의적인 것이라면 더 발전시키고 성공시킬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바텀업 전략을 통해 새로운 기술, 새로운 분야를 창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ICT 강국의 미래가 있다."
대전=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 유회준 교수는…
유회준 교수는 메모리반도체부터 시스템반도체에 이르는 전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반도체 칩 설계의 최고 권위자다.
1960년생인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 벨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현대전자 반도체연구소 D램설계실장을 지냈다.
이후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강원대 전자공학과 교수를 거쳐 1998년부터 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KAIST에서는 반도체설계자산연구센터(SIPAC) 소장에 이어 반도체시스템설계응용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으며 입학처장, IT영재교육원장, 사이버과학영재교육센터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반도체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성과 및 학술적 업적을 인정받아 2008년 IEEE 펠로우로 선정됐으며, IEEE ISSCC 기술분과위원과 아시아위원장 등을 거쳐 지난 3월부터는 ISSCC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KAIST 연구대상(2007년), KAIST 학술상(2011년), 무역의 날 옥조근정훈장(2011년) 등 다수의 국내외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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