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혁신토양서 복강경 수술로봇 탄생
미 스탠퍼드대 '바이오엑스' 기술혁신 이끌어
'무엇이든 가능' 환경 조성… 전문성 확보 필요
미 스탠퍼드대 '바이오엑스' 기술혁신 이끌어
'무엇이든 가능' 환경 조성… 전문성 확보 필요
■ 스타트C 코리아
(2) 세계는 의료융합 혁명 질주중
지난달 19일 방문한 미국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의 세계적 의료로봇 회사 인튜이티브서지컬 본사. 회사를 들어서자 벽면 가득 전시된 특허증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에서 의료서비스로봇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출원하는 이 회사는 1200여 개 특허기술을 무기로 세계 의료로봇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이 회사가 개발한 복강경 수술로봇 '다빈치'는 4개의 로봇팔을 이용해 3D 입체영상을 보며 원격으로 수술을 하는 장비다. 의사의 손놀림을 그대로 재현하는 로봇손은 보다 정밀한 수술이 가능하고, 절개를 최소화해 수술 후 회복기간도 짧은 게 장점이다. 현재 다빈치는 전세계에 3100여 대가 보급돼 있으며, 국내에도 46대가 들어와 의료현장에서 쓰이고 있다.
◇융합기술의 총아 '로봇'이 가져온 의료혁신=미 스탠퍼드연구소(SRI)가 국방용으로 처음 개발하기 시작한 다빈치는 매사추세츠공대(MIT)와 IBM, 미 항공우주국(NASA) 기술자들이 모인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 인튜이티브서지컬에 의해 완성돼 2000년 세계 최초로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본격적인 로봇수술 시대를 열었다. 본사에서 만난 캐서린 모어 기술이사는 다빈치에 대해 "의사와 환자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디지털로 전환해주는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MIT에서 기계공학 학사와 석사를, 스탠퍼드 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융합 석학이다. 현재 스탠퍼드 의대 수술 컨설팅 부교수로도 활동하며 의료·로봇 융합을 이끌고 있다.
수술 현장에서 다빈치는 의사에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부여한다. 형광 이미지로 혈관과 혈류, 미세조직을 관찰할 수 있어 보다 정확하고 안전한 수술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작은 구멍 하나만 뚫어 수술하는 '싱글포트' 기술 활용이 늘고 있다. 모어 박사는 "의료계가 계속 변화하는 한, 우리도 계속 변화해야 할 것"이라며 "의료계와 의술이 진화하는 과정을 살펴 그에 맞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환자가 최상의 결과를 얻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ICT 혁신 다음은 헬스케어 혁신이다=다빈치의 성공에는 다양한 기술이 발빠르게 융합되는 실리콘밸리의 개발 환경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수술은 환자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작은 오류도 허용하지 않는 기술적 정교함은 물론, 인체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해야 하기 때문에 각 분야 최고 기술이 완벽하게 융합돼야 한다.
다행히 실리콘밸리에는 스탠퍼드대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 첨단 연구와 사업화를 밀접하게 연계해 세계 ICT 혁신을 이끈 경험이 있는 실리콘밸리 산업계와 스탠퍼드대는 다가오는 미래 헬스케어 융합 빅뱅에 대비해 또다른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스탠퍼드대는 구글의 인체지도 제작 프로젝트 '베이스라인 스터디'와 애플의 건강관리 플랫폼 '헬스킷' 등 융합 헬스케어 기술의 시험무대가 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헬스케어와 생명공학, 전자·전기공학, 기초과학 등을 융합연구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바이오 융합기술 연구를 집중 지원하는 '바이오엑스(Bio-X)'다. 학제간 연구를 위한 교수들의 풀뿌리 운동으로 시작된 바이오엑스는 바이오 연구의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시했다. 2003년에는 실리콘밸리의 유력 사업가 제임스 클라크의 지원으로 45개 첨단 연구소를 갖춘 '클라크센터'를 설립해 본격적인 융합연구를 시작했다.바이오엑스는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스탠퍼드대 내 600여 개 연구실의 '자석' 역할을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네트워크를 만들고, 다른 분야와의 공동연구를 제안하는 교수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해 융합연구를 장려한다. 특히 검증되지 않은 과감한 프로젝트도 적극 투자해 사업화를 돕는다. 초고해상도 형광현미경을 개발해 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모에너 스탠퍼드대 교수도 바이오엑스의 일원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진형 스탠퍼드대 바이오엔지니어링 교수는 "바이오엑스의 '엑스'는 '바이오의 모든 것이란 의미'"라며 "내용과 상관없이 바이오 연구를 하는 모든 교수들이 참여해 생명 관련 문제를 융합적으로 해결하도록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뇌 동작원리를 밝히는 연구를 하는 이 교수는 현재 유전공학 분야 교수와 공동으로 바이오엑스 프로그램을 통해 치매 발병 시 일어나는 뇌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융합 위해선 한 우물부터 파라"=국내에서도 미래창조과학부 등 정부와 산업계를 중심으로 정보통신기술(ICT)을 의료분야에 융합해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이를 위해선 융합기술 개발환경 조성, 융합형 인재 육성, 허가제도 개선 등이 해결과제로 꼽힌다.
모어 박사는 융합기술 개발을 위해선 우선 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기계공학에 9년간 몰두했고 이후 의학박사가 돼 의료분야를 파고들어 하나로 합칠 수 있었다"며 "처음부터 이렇게 합치려고 의도적으로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분야에 충분히 시간을 할애해 외연을 넓힌 후에야 다른 한 분야를 추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경험을 쌓고 나면 다른 분야를 추가해 스스로 융합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의료융합 기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그는 "우리 모두 고령화 사회를 직면하고 있다"며 "노인들이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거나, 치매 징후를 판단해주는 기술 등이 인류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지금 사회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시장은 자연히 따라오게 돼 있다"고 말했다.
새너제이(미국)=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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