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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의 경제통하기] 10년 동안 구호뿐인 `동북아 금융 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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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의 경제통하기] 10년 동안 구호뿐인 `동북아 금융 허브`
이규화 경제담당 선임기자

지난달 30일 발생한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화재는 잠정적으로 66억 원 정도의 손해가 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내 4개 보험사가 손해액의 10%만 보험을 보유하고 나머지는 재보험사에 출재해 큰 부담은 안 될 것이라 한다. 12년 전 역시 한국타이어 금산공장에 불이 났을 때도 국내 보험사는 10% 정도만 책임졌을 뿐이다. 국내 보험사들의 출재는 보통 90% 전후다. 그 상당 부분을 외국 재보험사가 재인수한다.

사고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사고가 매번 터지면 세상의 모든 보험사는 망할 것이다. 90%의 해외 출재란 곧 그만큼 국부가 보험료로 해외 보험사로 흘러 들어간다는 의미다. 외국에서 보험금을 받아온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는 말이다. 말로 주고 되로 받아온다. 연간 재보험료로 해외로 빠져나가는 금액이 조 단위에 이른다. 그 돈줄의 정점에 런던의 로이드보험조합이 있다.

국내 재보험 브로커지 순위 톱5에 드는 한 보험중개회사의 대표 A씨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런던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수만 명의 로이드 보험 브로커들은 참 편하게 장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은 앉아서 통행세만 챙긴다. 로이드에 재보험을 들려면 브로커를 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로이드는 17세기 태동한 이후 300년 동안 세계 보험시장의 허브를 맡고 있다. 인공위성, 항공기, 해양·선박, 원자력, 석유화학, 플랜트 등 주요 산업의 보험요율은 모두 로이드 요율산정위원회에 의해 결정된다. 선조들이 만들어놓은 질서 속에서 후손들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이다. A씨는 "런던 지하철이 서울 지하철보다 100년 이상 앞섰지만 서울 지하철이 훨씬 편리하고 깨끗하고 효율적인 것처럼 금융산업도 못해낼 게 없다" 고 열변을 토했다.

한국타이어 공장의 화염 속에 사라진 재산은 외국 보험사 것이 아닌 결국 우리 자신의 것이다. 재보험 시장이 성숙하다면 피할 수 있었다. 모르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금융산업이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외쳐온 게 '동북아 금융허브'가 아닌가.


하지만 '동북아 금융허브'는 구호만 요란했을 뿐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2009년 2월 자본시장법 시행에 들어갔지만 바뀐 제도에 걸 맞는 가시적 변화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퇴행적 관행이 판친다. 금융당국은 갈피를 못 잡고 있고 금융사는 울타리를 벗어나 혁신하려는 의지가 없다. 은행의 본질적 기능이 도전받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자리싸움에 혈안이다. 아직도 후진국형(세계경제포럼의 평가, 한국은 금융시장 성숙도 80위, 금융 건전성 122위) 대출사고가 빈발한다.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동남아 국가들보다도 못하다. 은행 경쟁력을 나타내는 ROA(총자산이익률)가 인도네시아(2.75%), 말레이시아(1.70%)에도 떨어져 0.38%에 그치고 있다. 금융당국의 정책과 리더십 부재, 금융전문가 태부족, 덩어리 규제, 금융산업 자체 혁신 의지 미비 때문이다.
정체를 타개할 돌파 주자가 필요하다. 은행, 증권, 보험 3개 축 가운데 서자 취급을 받아온 보험에 주목하자. 우리는 세계 최고 서비스 수준의 소매보험시장, 조선·원자력·석유화학·건설·플랜트 등 산업적 기반이 뒷받침하는 손해보험의 튼튼한 배경이 있다. 뛰어난 전문가를 배출할 수 있는 풍부한 인력 풀도 갖춰졌다. 은행이나 증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진기법을 벤치마킹하기도 쉽다. 신흥국으로서 신흥국 연대를 통한 해외시장 개척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보험산업이 한국 금융산업의 척후병이 될 수 있다. 보험산업은 관련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

선박 건조 위험률 산정을 위해 런던에 가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너희는 세계 최대 최고 조선국인데 그걸 여기까지 와서 왜 물어보나." 동북아 금융허브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장점을 끄집어내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일단 저질러 보는 것' 없이는 이룰 수 없다.

이규화 경제담당 선임기자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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