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푸닥거리`로서의 현대미술](http://contents.dt.co.kr/images/201409/2014091202102251607001[1].jpg "[디지털인문학] `푸닥거리`로서의 현대미술")
경주 리조트 붕괴사고, 세월호 참사, 동부전선 GOP 총기난사, 윤 일병 폭행사망, 계모에 의한 의붓딸 폭행 사망, 가출 김해 여고생 살해암매장 사건…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이 땅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사고들이다. 끊임없는 외적의 침입과 전쟁, 가뭄과 태풍, 기근 등 온갖 시련의 역사를 극복했던 조상님들의 DNA를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5·18광주학살, 삼풍 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참사 등으로 단련된 우리지만 올해 발생한 일들은 참으로 버겁다. 그래서인가 슬픔을 넘어 죄책감과 절망감, 고통, 불안, 허탈, 우울 등으로 그 모양새를 바꿔가던 마음이 결국 망각이라는 가장 손쉬운 기제를 선택하기에 이른 듯하다.
'잊어야 사느니라'라는 우리네 조상님들의 자조 섞인 지혜와 모든 잘못을 개인 탓으로 돌렸던 위정자들의 셈법으로 우리는 스스로 '한'의 민족이 되고 말았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알아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거나 거기로부터 빠져 나와야 했다. 당하는 사람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모두 마음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다 결국 화병이 들어앉게 되었다. 억울한 마음이 지나쳐 병이 된 울화병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푸닥거리이다. 과거에는 주로 무당이 푸닥거리를 주관했다면, 현대에는 억울하고 불쾌한 기억이나 경험을 어루만지는 일을 나서서 하는 미술가들이 적지 않다.
현재 영국인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미술가 중의 한 사람은 트레이시 에민이다. 난해한 현대미술가인 그녀가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는 이력과 함께 그런 삶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작품 때문이다. 부모의 사업실패와 가족의 해체, 십삼 세에 당한 성폭행과 가출, 이후 낙태와 마약중독, 폭음, 자살시도 등 절망과 좌절 속에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내던 에민이 새로운 삶의 전환점을 찾은 건 미술을 통해서였다.
"나의 삶이 곧 예술이고 나의 예술이 곧 나의 삶이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작품은 자전적이다.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은 텐트를 설치한 작품으로, 작가는 텐트 안에 자신이 태어난 1963년부터 32년간 함께 잠자리를 했던 사람들인 할머니와 가족, 무수한 남자들, 낙태로 인해 태어나지 못했던 아기까지 모두 102명의 이름을 적어 놓고 있다. <나의 침대>는 전시장에 자신의 침대를 설치한 작품인데, 어지럽게 구겨진 시트로 덮인 싸구려 침대 주변에 빈 술병, 담배꽁초, 사용된 콘돔 등 온갖 잡동사니가 널려져 있다. 이처럼 트레이시 에민은 보통 사람이라면 감추고 싶어 하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 보인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작가는 스스로 자신의 불우하고 쓰라린 과거에 대한 살풀이를 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러한 굿판을 보는 영국인들의 마음속에는 가녀린 열세 살 소녀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신사의 나라라는 가면 밑에 숨겨온 도덕적 위선, 에민의 부모님이 사업을 실패했던 당시의 어려웠던 국가경제 상황 등이 뒤섞이면서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그러한 감정은 이내 동시대를 어렵게 살아온 이들의 제각각 상처 입은 가슴에 공감이라는 끈을 엮어준다.
올해 2월 12일부터 3월 8일까지 대구지하철참사 11주기를 추모하는 미술전시가 대구에서 열렸다. 참사 이후 대구시와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 간의 약속이 잘 이행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참사를 치욕의 징표로 여기는 공공 기관들이 모든 관권을 동원하여 사고에 대한 기억과 흔적을 시민들의 뇌리로부터 지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한 현실 탓에 이번 전시의 주제는 <집단의 기억 집단의 힘 Collective Memory Collective Power>으로 기획되었다.
이러한 전시회가 앞으로 더욱 많이 기획될 필요가 있다. 잊기에는 그 고통과 아픔이 너무 큰 사람들에게 공감과 지지의 푸닥거리를 해줄 수 있는 작가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몹쓸 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 액막이를 해줄 그런 작품들을 보고 싶다.
김승환 (조선대학교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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