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길을 가던 두 사내가 하루는 희한한 소문을 들었다. 남해안 어느 암자에 보살상이 하나 있는데, 둘이 가서 소원을 빌면 먼저 빈 사람의 소원이 이뤄지고 그 두 배를 뒤의 사람이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절친'이었던 두 사내는 곧장 남해안 쪽으로 가던 길을 돌렸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둘 중 하나는 애꾸가 되었고 남은 하나는 장님이 되었다. 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얘기는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쓰신 <일목대왕의 철퇴>라는 소설의 일부이다. 두 사내는 암자로 가는 길 내내 아무 말도 안했다고 한다. 그러다 암자에 도착하자마자 한 사내가 `빛의 속도'로 뛰어 들어가 소원을 빌었고, 그 다음 사내는 속절없이 장님이 되었다는 것이다. 먼저 들어간 이가 애꾸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이 사내의 이름은 궁예였다. 간난아이 시절 신라 궁중에서 도망쳐 나오는 와중에 눈을 잃게 되었다는 일화를 단재는 이렇게 바꿔 썼던 것이다.
그런데 소설 속 궁예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내 몸이 망가진다 하더라도 상대가 더 망가질 수 있다면 기꺼이 망가지리라 한 이 사내의 그림자가 도처에서 아른거린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에서도 그렇고, 남이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심사에서도 그렇다. 이른바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요, 나의 행복은 남의 불행"이라는 심보이다. `소인배'의 전형적인 근성 말이다. 타인의 불행과 나의 행복 사이엔 아무런 논리적 필연성이, 또 실질적 연관이 없음에도 그들은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욕망을 옳다 하며 철석같이 믿는다. 일제에 쫓겨 중국을 전전해야 했던 단재는 소설을 통해 과거의 인물인 궁예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소인배를 아린 가슴을 보듬으며 통렬하게 비판했던 셈이다.
송대 사마광의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성인군자를 얻어 더불어 공무에 임할 수 없다면 차라리 우둔한 자와 함께 하는 것이 소인배와 함께 하는 것보다 낫다. 군자는 자신의 재능으로 선을 이루지만 소인배는 악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우둔한 자는 악을 행하고자 해도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 반면에 소인배는 간특하고 난폭한 일을 행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소인배를 공직에 등용하는 것은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니, 어찌 해악이 적을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곧 능력의 사용이 항상 선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부정과 부패는 유능할 때 더 잘 생긴다는 경고다.
그러나 `유능한 부패'란 존재할 수 없다. 능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유능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칼은 예리할수록 유능하지만 조리사의 손과 식재료 사이에 배치되지 않고 강도의 손과 타인의 배 사이에 놓이면 흉기가 된다. 흉기가 더 큰 능력을 갖출수록 결과는 더 참혹해진다. 이처럼 유능함은 `관계' 곧 배치에 의해서 결정된다. 암세포의 생존력이나 자기 확장 능력은 얼마나 대단한가! 그러나 암세포의 능력이 클수록 사람은 더 아프게 되고 급기야 생명을 잃게 되며 암세포도 따라서 소멸되고 만다. 소인배의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자신만을 살찌우는 데에 동원되는 능력은 차라리 병증일지언정 결코 유능함이 아니다.
소인배는 다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밝히 말해주듯 어떻게 한 사회의 다수가 성인군자일 수 있겠는가? 관건은, 능력의 발휘가 선의 구현으로 이어지는 `배치'를 누군가는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이들이 사회의 근간을 이뤄야 한다는 점이다. 소인배의 `유능한 부패'에 대한 비판보다는, 능력 있는 이들을 제대로 배치하지 못함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건설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이 얘기는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쓰신 <일목대왕의 철퇴>라는 소설의 일부이다. 두 사내는 암자로 가는 길 내내 아무 말도 안했다고 한다. 그러다 암자에 도착하자마자 한 사내가 `빛의 속도'로 뛰어 들어가 소원을 빌었고, 그 다음 사내는 속절없이 장님이 되었다는 것이다. 먼저 들어간 이가 애꾸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이 사내의 이름은 궁예였다. 간난아이 시절 신라 궁중에서 도망쳐 나오는 와중에 눈을 잃게 되었다는 일화를 단재는 이렇게 바꿔 썼던 것이다.
그런데 소설 속 궁예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내 몸이 망가진다 하더라도 상대가 더 망가질 수 있다면 기꺼이 망가지리라 한 이 사내의 그림자가 도처에서 아른거린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에서도 그렇고, 남이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심사에서도 그렇다. 이른바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요, 나의 행복은 남의 불행"이라는 심보이다. `소인배'의 전형적인 근성 말이다. 타인의 불행과 나의 행복 사이엔 아무런 논리적 필연성이, 또 실질적 연관이 없음에도 그들은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욕망을 옳다 하며 철석같이 믿는다. 일제에 쫓겨 중국을 전전해야 했던 단재는 소설을 통해 과거의 인물인 궁예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소인배를 아린 가슴을 보듬으며 통렬하게 비판했던 셈이다.
송대 사마광의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성인군자를 얻어 더불어 공무에 임할 수 없다면 차라리 우둔한 자와 함께 하는 것이 소인배와 함께 하는 것보다 낫다. 군자는 자신의 재능으로 선을 이루지만 소인배는 악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우둔한 자는 악을 행하고자 해도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 반면에 소인배는 간특하고 난폭한 일을 행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소인배를 공직에 등용하는 것은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니, 어찌 해악이 적을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곧 능력의 사용이 항상 선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부정과 부패는 유능할 때 더 잘 생긴다는 경고다.
그러나 `유능한 부패'란 존재할 수 없다. 능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유능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칼은 예리할수록 유능하지만 조리사의 손과 식재료 사이에 배치되지 않고 강도의 손과 타인의 배 사이에 놓이면 흉기가 된다. 흉기가 더 큰 능력을 갖출수록 결과는 더 참혹해진다. 이처럼 유능함은 `관계' 곧 배치에 의해서 결정된다. 암세포의 생존력이나 자기 확장 능력은 얼마나 대단한가! 그러나 암세포의 능력이 클수록 사람은 더 아프게 되고 급기야 생명을 잃게 되며 암세포도 따라서 소멸되고 만다. 소인배의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자신만을 살찌우는 데에 동원되는 능력은 차라리 병증일지언정 결코 유능함이 아니다.
소인배는 다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밝히 말해주듯 어떻게 한 사회의 다수가 성인군자일 수 있겠는가? 관건은, 능력의 발휘가 선의 구현으로 이어지는 `배치'를 누군가는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이들이 사회의 근간을 이뤄야 한다는 점이다. 소인배의 `유능한 부패'에 대한 비판보다는, 능력 있는 이들을 제대로 배치하지 못함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건설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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