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 속에서 미술은 본연의 심미적 기능 이외에도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 왔다.
풍부한 사냥감을 기원하는 주술적 기능으로부터 문맹자를 위한 종교교리서, 왕의 치적이나 덕망, 교훈이 될 만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역사교과서, 아름다운 풍광이나 이국적 정취 등에 대한 기억을 담은 사진의 역할 등이 그 예이다.
인류 역사의 변화와 함께 미술도 다양한 양태로 바뀌는데, 그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함없이 지속되어 오는 기능이 있다.
그것은 바로 힘들고, 무섭고 각박한 현실에 놀라고 지친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기능이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작은 도시인 콜마르에는 `보리수 아래(Unterlinden)'란 의미의 윈테르린덴 미술관이 조용히 빛나고 있다.
프랑스 지방미술관 중에서 두 번째로 관람객이 많이 방문한다는 이 미술관의 매력은 무엇일까?관람객들이 윈테르린덴 미술관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이센하임 제단화를 보기 위해서다.
16세기 초 그뤼네발트에 의해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제단화는 여러 폭의 그림으로 이루어졌다.
이젠하임 제단화를 볼 때 맨 먼저 마주하는 그림인 <십자가 책형>의 첫인상은 충격과 전율 그 자체이다.
<십자가 책형>에 그려진 예수는 온몸이 상처와 멍으로 뒤덮인 채 손과 발을 뒤틀고 벌린 입으로 고통을 토해내고 있다.
신의 아들이 아니라 너무나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고 성 요한의 팔에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창백한 얼굴은 이 사건의 비극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특히 비통에 잠긴 막달라 마리아의 긴장된 손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뒤틀린 손과 함께 보는 이의 가슴에 고통과 절망을 아로새긴다.
왜 화가는 이토록 처절한 몰골의 예수를 보여주려 했을까?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많은 유럽인들이 원인모를 병으로 죽어갔다.
이 병에 걸리면 온몸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고 시각장애와 환각 현상까지 동반된다는 점에서 이 병의 원인을 몰랐던 당대인들은 이 병을 `신성한 불' 혹은 `지옥의 불'이라 불렀다.
참을 수 없는 고통 끝에 썩은 사지가 떨어져 나가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이 병은 17세기 후반에 가서야 `맥각 중독'으로 밝혀졌다.
프랑스 론강 유역, 알자스와 로렌 지방에 분포해 있던 성 안토니 수도회와 그 부속병원이 페스트만큼이나 무서운 질병으로 여겨졌던 맥각 중독증 환자를 전문적으로 구호하였다.
환자의 육체적 치료와 함께 영혼의 치료까지 담당해야 했던 성 안토니 수도회는 그뤼네발트에게 환자들의 심금을 울릴 제단화 제작을 의뢰했던 것이다.
심신이 지쳐버린 환자가 수도사의 안내로 성당에 들어서면서 처음 본 것은 고통에 몸을 뒤틀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피부처럼 온몸에 상처와 멍이 든 예수는 환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초록색으로 변색한 피부나 마치 피고름이 흐르는 듯한 예수의 발은 맥각 중독 환자들의 환부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환자들은 예수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러한 충격과 동일시를 통해 환자들은 자신보다 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과 희생을 느끼며, 동시에 영적 위안과 함께 치유의 희망을 품게 되었다.
미술은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홍수나 전염병, 기근 등의 천재지변에 처한 나약한 인간들과 각박한 세태에 찌든 사람들에게 현실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다시 말해, 미술의 체험과 종교적 체험은 매우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그 성격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훨씬 복잡해진 사회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트라우마를 겪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더욱이 이미 종교마저 치유의 기능을 상실해 버린 시대에 미술이 바로 그러한 치유의 기능을 해야 하지 않을까?
김승환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풍부한 사냥감을 기원하는 주술적 기능으로부터 문맹자를 위한 종교교리서, 왕의 치적이나 덕망, 교훈이 될 만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역사교과서, 아름다운 풍광이나 이국적 정취 등에 대한 기억을 담은 사진의 역할 등이 그 예이다.
인류 역사의 변화와 함께 미술도 다양한 양태로 바뀌는데, 그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함없이 지속되어 오는 기능이 있다.
그것은 바로 힘들고, 무섭고 각박한 현실에 놀라고 지친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기능이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작은 도시인 콜마르에는 `보리수 아래(Unterlinden)'란 의미의 윈테르린덴 미술관이 조용히 빛나고 있다.
프랑스 지방미술관 중에서 두 번째로 관람객이 많이 방문한다는 이 미술관의 매력은 무엇일까?관람객들이 윈테르린덴 미술관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이센하임 제단화를 보기 위해서다.
16세기 초 그뤼네발트에 의해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제단화는 여러 폭의 그림으로 이루어졌다.
이젠하임 제단화를 볼 때 맨 먼저 마주하는 그림인 <십자가 책형>의 첫인상은 충격과 전율 그 자체이다.
<십자가 책형>에 그려진 예수는 온몸이 상처와 멍으로 뒤덮인 채 손과 발을 뒤틀고 벌린 입으로 고통을 토해내고 있다.
신의 아들이 아니라 너무나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고 성 요한의 팔에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창백한 얼굴은 이 사건의 비극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특히 비통에 잠긴 막달라 마리아의 긴장된 손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뒤틀린 손과 함께 보는 이의 가슴에 고통과 절망을 아로새긴다.
왜 화가는 이토록 처절한 몰골의 예수를 보여주려 했을까?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많은 유럽인들이 원인모를 병으로 죽어갔다.
이 병에 걸리면 온몸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고 시각장애와 환각 현상까지 동반된다는 점에서 이 병의 원인을 몰랐던 당대인들은 이 병을 `신성한 불' 혹은 `지옥의 불'이라 불렀다.
참을 수 없는 고통 끝에 썩은 사지가 떨어져 나가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이 병은 17세기 후반에 가서야 `맥각 중독'으로 밝혀졌다.
프랑스 론강 유역, 알자스와 로렌 지방에 분포해 있던 성 안토니 수도회와 그 부속병원이 페스트만큼이나 무서운 질병으로 여겨졌던 맥각 중독증 환자를 전문적으로 구호하였다.
환자의 육체적 치료와 함께 영혼의 치료까지 담당해야 했던 성 안토니 수도회는 그뤼네발트에게 환자들의 심금을 울릴 제단화 제작을 의뢰했던 것이다.
심신이 지쳐버린 환자가 수도사의 안내로 성당에 들어서면서 처음 본 것은 고통에 몸을 뒤틀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피부처럼 온몸에 상처와 멍이 든 예수는 환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초록색으로 변색한 피부나 마치 피고름이 흐르는 듯한 예수의 발은 맥각 중독 환자들의 환부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환자들은 예수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러한 충격과 동일시를 통해 환자들은 자신보다 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과 희생을 느끼며, 동시에 영적 위안과 함께 치유의 희망을 품게 되었다.
미술은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홍수나 전염병, 기근 등의 천재지변에 처한 나약한 인간들과 각박한 세태에 찌든 사람들에게 현실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다시 말해, 미술의 체험과 종교적 체험은 매우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그 성격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훨씬 복잡해진 사회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트라우마를 겪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더욱이 이미 종교마저 치유의 기능을 상실해 버린 시대에 미술이 바로 그러한 치유의 기능을 해야 하지 않을까?
김승환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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