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관휴(抱甕灌畦)"라는 말이 있다. 손쉽게 물을 퍼 올릴 수 있는 기계가 있어도 아랑곳 않고, 골백번이라도 물동이를 지고 물을 퍼 날라 밭에 뿌린다는 뜻이다. 눈곱만큼의 융통성도 없고 효율성 따위완 담 쌓은 이를 빗댄 표현이다. 그런데 <장자(莊子)>의 한 우화에서 비롯된 이 말은 처음엔 결코 그런 뜻이 아니었다. 우화의 대강은 이러하다.
자공(子貢)이란 이가 있었다. 공자의 제자이자 재테크의 달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이였다. 하루는 길을 가다 우연히 밭일을 하던 노인에게 눈길이 갔다. 노인은 물동이로 연신 물을 퍼와 밭고랑마다 일일이 물을 대고 있었다. 보다 못한 자공이 수고를 덜면서도 효율을 획기적으로 증진시킬 방안이 있다면서 용두레의 사용을 권했다. 용두레는 낮은 곳의 물을 손쉽게 퍼 올릴 수 있는 농기계였다. 순간 노인의 반응이 의외였다. 껄껄껄, 한 바탕 호탕하게 웃어젖히더니 이렇게 말했다.
"기계를 쓰면 거짓된 일이 생기고, 거짓된 일이 생기면 거짓된 마음도 생겨납니다. 마음에 거짓된 마음이 있게 되면 마음은 참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정신도 안정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진리를 좇아 살지 못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기계를 쓸 줄 몰라서 `못'쓰는 게 아니라 마음이 더럽혀지고 정신의 평정이 깨질까봐, 그래서 진리와 무관한 삶을 살 듯하여 `안'쓴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우화는 고지식하기 그지없는 이에 대한 풍자가 아니라, 마음과 정신이 피폐해지는지도 모르고 그저 효율만 추구하려는 윤똑똑이들에 대한 경계였다. 그런데 장자는 왜 기계를 쓰면 거짓된 일이 발생한다고 했을까?
장자의 논리는 이렇다. 그가 보기에 사람은 `호모 라보란스(homo labolans)' 곧 노동하는 존재였다. 노동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하여 사람에게서 노동을 분리해내면 사람은 더는 사람이 아니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노동을 기계에게 전가하고도 여전히 자신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사람이기에 기계를 만들어 쓸 줄 안다며 우쭐대곤 한다. 이렇게 실제와 의식이 괴리된, 거짓된 사태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이 때문에 사람이 진리와 무관하게 살아간다고 봤다. 노동을 진리 구현과 직결시켰던 것이다. 사람의 천성이 노동하는 존재라면 노동하는 삶은 본성을 구현하는 삶이고, 그런 의미에서 진리를 따르는 삶이 된다는 주장이다. 결국 그는 사람의 조건으로 `노동하는 삶'과 `진리를 따르는 삶'의 두 가지를 제시했던 것이다. 기계의 사용을 효율의 측면에서만 보지 않고, 사람의 본성에서 진리의 구현 문제에 이르는 다차원적 관계 속에서, 복합적인 사태로 바라봤던 것이다.
사람이든, 그들이 모여 사는 사회든 간에 어느 하나 복합적이지 않은 게 없다. 그래서 장자의 이러한 사유양식은 힘차다. 인류는 기계의 진화를 인간 능력의 진보로 여기며 육체노동뿐 아니라 정신노동까지 기계로 대체해왔다. 이젠 `Smart 기능'처럼 인간의 정신 자체를 대체하고, `Biotechnology'처럼 생명현상을 공학적으로 처리하는 기계마저 선뜻 반긴다. 사람다움의 핵심이라는 지식도 인간 내부보다는 기계적으로 구현된 사이버 공간에 훨씬 많이 존재하고, 그곳에선 지식의 연동과 융합이 사람보다 더 민활하게 `빛의 속도'로 구현되고 있다.
그렇게 사람다움의 요체를 열심히 기계로 이전한 덕분에 기계는 끊임없이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기계의 진화는 가면 갈수록 더욱 가속될 것이다. 그때 우리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더구나 우리사회처럼, 진리를 내 삶과 무관하게 여기도록 강요되는 곳엔? 안 그래도 마뜩찮았던 좀비 영화가 더욱 보기 싫어진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자공(子貢)이란 이가 있었다. 공자의 제자이자 재테크의 달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이였다. 하루는 길을 가다 우연히 밭일을 하던 노인에게 눈길이 갔다. 노인은 물동이로 연신 물을 퍼와 밭고랑마다 일일이 물을 대고 있었다. 보다 못한 자공이 수고를 덜면서도 효율을 획기적으로 증진시킬 방안이 있다면서 용두레의 사용을 권했다. 용두레는 낮은 곳의 물을 손쉽게 퍼 올릴 수 있는 농기계였다. 순간 노인의 반응이 의외였다. 껄껄껄, 한 바탕 호탕하게 웃어젖히더니 이렇게 말했다.
"기계를 쓰면 거짓된 일이 생기고, 거짓된 일이 생기면 거짓된 마음도 생겨납니다. 마음에 거짓된 마음이 있게 되면 마음은 참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정신도 안정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진리를 좇아 살지 못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기계를 쓸 줄 몰라서 `못'쓰는 게 아니라 마음이 더럽혀지고 정신의 평정이 깨질까봐, 그래서 진리와 무관한 삶을 살 듯하여 `안'쓴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우화는 고지식하기 그지없는 이에 대한 풍자가 아니라, 마음과 정신이 피폐해지는지도 모르고 그저 효율만 추구하려는 윤똑똑이들에 대한 경계였다. 그런데 장자는 왜 기계를 쓰면 거짓된 일이 발생한다고 했을까?
장자의 논리는 이렇다. 그가 보기에 사람은 `호모 라보란스(homo labolans)' 곧 노동하는 존재였다. 노동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하여 사람에게서 노동을 분리해내면 사람은 더는 사람이 아니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노동을 기계에게 전가하고도 여전히 자신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사람이기에 기계를 만들어 쓸 줄 안다며 우쭐대곤 한다. 이렇게 실제와 의식이 괴리된, 거짓된 사태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이 때문에 사람이 진리와 무관하게 살아간다고 봤다. 노동을 진리 구현과 직결시켰던 것이다. 사람의 천성이 노동하는 존재라면 노동하는 삶은 본성을 구현하는 삶이고, 그런 의미에서 진리를 따르는 삶이 된다는 주장이다. 결국 그는 사람의 조건으로 `노동하는 삶'과 `진리를 따르는 삶'의 두 가지를 제시했던 것이다. 기계의 사용을 효율의 측면에서만 보지 않고, 사람의 본성에서 진리의 구현 문제에 이르는 다차원적 관계 속에서, 복합적인 사태로 바라봤던 것이다.
사람이든, 그들이 모여 사는 사회든 간에 어느 하나 복합적이지 않은 게 없다. 그래서 장자의 이러한 사유양식은 힘차다. 인류는 기계의 진화를 인간 능력의 진보로 여기며 육체노동뿐 아니라 정신노동까지 기계로 대체해왔다. 이젠 `Smart 기능'처럼 인간의 정신 자체를 대체하고, `Biotechnology'처럼 생명현상을 공학적으로 처리하는 기계마저 선뜻 반긴다. 사람다움의 핵심이라는 지식도 인간 내부보다는 기계적으로 구현된 사이버 공간에 훨씬 많이 존재하고, 그곳에선 지식의 연동과 융합이 사람보다 더 민활하게 `빛의 속도'로 구현되고 있다.
그렇게 사람다움의 요체를 열심히 기계로 이전한 덕분에 기계는 끊임없이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기계의 진화는 가면 갈수록 더욱 가속될 것이다. 그때 우리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더구나 우리사회처럼, 진리를 내 삶과 무관하게 여기도록 강요되는 곳엔? 안 그래도 마뜩찮았던 좀비 영화가 더욱 보기 싫어진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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