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우스라는 전설적인 영웅이 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임을 알아차리자, 영원히 살아남기 위해 `불멸의 명성'을 처절하게 갈망하던 불꽃같은 영웅이었다.
인생이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면, 곧 사라지고 말 그깟 목숨 따위에 연연하지 말고, `끝내주게' 싸워 잊힐 수없는 전사로 남아야 한다고 다짐하던 그였다.
그는 그렇게 찰나의 삶을 찬란하게 빛나다가 죽었고, 역사는 그를 전설로, 신화로 기억하고 있다.
명예를 향한 그의 욕망은 강렬하고 파괴적이었다.
그가 치욕을 당했을 때 터뜨린 분노는, 적군은 물론 아군의 수많은 전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옛 그리스의 젊은이들에겐 본받아 마땅한 표상이며 `롤 모델'이었다.
`아킬레우스처럼 살아라. 구질구질하게 연명하려 하지 말고 부끄럽지 않은 이름으로 기억되게 살아라.'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 전하는 시금석과 같은 메시지였다.
하지만 그는 정말 `잘' 산 사람일까? 그가 죽은 지 약 3,000년도 넘었는데, 그의 이름은 죽지 않았으며 기억되고 있으니 원하던 바를 이룬 셈이다.
그는 <일리아스>라는 영웅서사시 속에 주인공으로 살아 있어, 사람들이 그 고전을 읽을 때마다 독자들의 상상력에 되살아나 역동하니 말이다.
몇 년 전, 미국의 최고 영화배우였던 브레드 피트는 <트로이(Troy)>라는 영화에서 아킬레우스를 스크린 위에 되살려냈다.
아마도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 그의 이름은 죽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며, 그의 삶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재생될 것이다.
그러나 다시 묻는다.
`그는 정말 잘 산 사람일까?'<일리아스>의 후속 작품으로 알려진 <오뒷세이아>에는 죽은 뒤의 아킬레우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동료였던 오뒷세우스는 트로이아(Troia) 전쟁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다가 저승 세계를 들러 아킬레우스를 만난다.
그때 오뒷세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누구도 그대처럼 행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오. 그대가 살아 있을 때 우리들은 그대를 신처럼 추앙했는데, 지금은 그대가 여기 죽은 자들 사이에서 강력한 통치자이기 때문이오. 그러니 아킬레우스여, 죽었다고 해서 슬퍼하지 마시오." 영웅으로서 잘 살았으며, 또 죽어서도 잘 지내고 있다는 뜻.하지만 아킬레우스는 뜻밖의 말로 대응한다.
"죽음에 대해 내게 그럴싸하게 말하지 마시오. 나는 세상을 떠난 모든 사자(死者)들을 통치하느니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소이다.
" 그가 누리고 있는 저승에서의 왕좌는 물론 지난 날 자신이 일구어낸 영웅적인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이다.
불멸의 명성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던 영웅의 면모는 어디로 가고, 목숨을 구걸하는 누추한 모습만이 남은 것일까? 불멸의 명성이 부질없을 만큼 `살아 있음'이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것을 죽은 후에야 깨달은 아킬레우스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떤 답을 얻을 수 있는가? 또 한 번 묻는다.
`아킬레우스는 정말 잘 산 사람일까?'영웅 따위는 바라지도 않고, 게다가 보통 사람도 아니고 부잣집 머슴도 아니어도 좋으니,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농의 머슴이라도 좋으니 살아만 있다면 좋겠다고 하는 아킬레우스.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 돈의 많고 적음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 직업의 귀하고 천함에 관계없이 사람에게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 그것이 정녕 아킬레우스의 회한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소중한 깨달음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장과 사회에서 자행되는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 만큼은 노동의 결과에서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거짓으로 얼룩진 모욕을 씻어내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싸우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의 절실함 앞에서 그 `소중한 깨달음'이 공허해지는 것은 왜일까?
김 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임을 알아차리자, 영원히 살아남기 위해 `불멸의 명성'을 처절하게 갈망하던 불꽃같은 영웅이었다.
인생이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면, 곧 사라지고 말 그깟 목숨 따위에 연연하지 말고, `끝내주게' 싸워 잊힐 수없는 전사로 남아야 한다고 다짐하던 그였다.
그는 그렇게 찰나의 삶을 찬란하게 빛나다가 죽었고, 역사는 그를 전설로, 신화로 기억하고 있다.
명예를 향한 그의 욕망은 강렬하고 파괴적이었다.
그가 치욕을 당했을 때 터뜨린 분노는, 적군은 물론 아군의 수많은 전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옛 그리스의 젊은이들에겐 본받아 마땅한 표상이며 `롤 모델'이었다.
`아킬레우스처럼 살아라. 구질구질하게 연명하려 하지 말고 부끄럽지 않은 이름으로 기억되게 살아라.'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 전하는 시금석과 같은 메시지였다.
하지만 그는 정말 `잘' 산 사람일까? 그가 죽은 지 약 3,000년도 넘었는데, 그의 이름은 죽지 않았으며 기억되고 있으니 원하던 바를 이룬 셈이다.
그는 <일리아스>라는 영웅서사시 속에 주인공으로 살아 있어, 사람들이 그 고전을 읽을 때마다 독자들의 상상력에 되살아나 역동하니 말이다.
몇 년 전, 미국의 최고 영화배우였던 브레드 피트는 <트로이(Troy)>라는 영화에서 아킬레우스를 스크린 위에 되살려냈다.
아마도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 그의 이름은 죽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며, 그의 삶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재생될 것이다.
그러나 다시 묻는다.
`그는 정말 잘 산 사람일까?'<일리아스>의 후속 작품으로 알려진 <오뒷세이아>에는 죽은 뒤의 아킬레우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동료였던 오뒷세우스는 트로이아(Troia) 전쟁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다가 저승 세계를 들러 아킬레우스를 만난다.
그때 오뒷세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누구도 그대처럼 행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오. 그대가 살아 있을 때 우리들은 그대를 신처럼 추앙했는데, 지금은 그대가 여기 죽은 자들 사이에서 강력한 통치자이기 때문이오. 그러니 아킬레우스여, 죽었다고 해서 슬퍼하지 마시오." 영웅으로서 잘 살았으며, 또 죽어서도 잘 지내고 있다는 뜻.하지만 아킬레우스는 뜻밖의 말로 대응한다.
"죽음에 대해 내게 그럴싸하게 말하지 마시오. 나는 세상을 떠난 모든 사자(死者)들을 통치하느니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소이다.
" 그가 누리고 있는 저승에서의 왕좌는 물론 지난 날 자신이 일구어낸 영웅적인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이다.
불멸의 명성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던 영웅의 면모는 어디로 가고, 목숨을 구걸하는 누추한 모습만이 남은 것일까? 불멸의 명성이 부질없을 만큼 `살아 있음'이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것을 죽은 후에야 깨달은 아킬레우스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떤 답을 얻을 수 있는가? 또 한 번 묻는다.
`아킬레우스는 정말 잘 산 사람일까?'영웅 따위는 바라지도 않고, 게다가 보통 사람도 아니고 부잣집 머슴도 아니어도 좋으니,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농의 머슴이라도 좋으니 살아만 있다면 좋겠다고 하는 아킬레우스.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 돈의 많고 적음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 직업의 귀하고 천함에 관계없이 사람에게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 그것이 정녕 아킬레우스의 회한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소중한 깨달음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장과 사회에서 자행되는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 만큼은 노동의 결과에서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거짓으로 얼룩진 모욕을 씻어내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싸우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의 절실함 앞에서 그 `소중한 깨달음'이 공허해지는 것은 왜일까?
김 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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