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융합을 넘어서, 융화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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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3-0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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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을 통해 미래를 창조하려는 대학민국 과학기술 발전 비전은 야심적이다. 그런데 융합이란 이름아래 진정 혁신이 가능할 것인가. 과연 모든 것을 융합하는 새로운 부서의 설립으로 과학기술 뿐 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 학문 연구 풍토와 문화에 새로운 혁신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그러나 이 혁신이 진정한 혁신이려면 학문의 본질과 원리를 회복하는 연구문화의 정상화 단계를 필연적으로 거쳐야 한다. 그간 우리나라의 학문 연구는 진리의 발견이라는 학문 본래의 목적이 무시된 채 도구적 역할만을 강요되어 온 비정상적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곧 학문의 산업화와 상품화라는 측면에서는 성과를 가져왔지만, 고도의 정신적 문화 활동이라는 과학연구의 본래 역할을 방해했다. 따라서 그러한 과학연구를 통해 우리의 문화와 사회가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 이제 이러한 과거의 시행착오를 수정하고 과학 연구의 진정성을 회복하려면, 과학 연구의 본질이 수단적, 도구적 기능 보다는 인문적 나아가 문화적 역할에 있다는 사실을 숙지해야 한다.

사실 근대 과학이 탄생하여 그 발전의 역사 무대가 되었던 유럽의 과학사를 돌아보면, 이러한 점이 분명해 진다. 과학과 인문학은 현재처럼 분리된 두 개의 문화가 아니었다. 과학자는 인문학적 성찰의 정신을, 인문학자는 과학적 탐구의 의식을 서로 호흡하고 비판하면서 각각의 학문 연구에 영감과 상상력을 제공해왔다. 과학기술자와 인문학자는 두 개의 분리된 문화 속에 다른 국적을 갖는 시민이 아니라 진리 탐구라는 같은 목적을 갖는 학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학문공동체의 활발한 활동이 근대 문화의 정신적 계몽을 주도했던 것이다. 이는 르네상스시대처럼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20세기 유럽학문의 혁신을 이루어 내었던 위대한 과학자들과 철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활동했던 인문학자들과 과학자들의 활발한 교류와 그 과정에서 탄생한 새로운 이론들이다. 이 시대의 과학자들의 문제의식과 저작을 보면 이들의 학문적 문제의식에 깊숙이 내재하고 있는 철학적 인문학적 지식과 성찰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하이젠베르크는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를 읽으며 자연의 진리를 찾아가는 과학적 연구의 방향을 고민한다. 또 프로이트는 뱀장어의 몸에서 일어나는 정전기 현상을 유심히 관찰하며 무의식이라는 정신의 새로운 차원을 개념화한다. 이러한 역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우리가 그토록 소리 높여 주장하는 학문간의 통섭과 융합이 이미 자발적인 학문공동체란 형태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학문공동체의 활동이야말로 적어도 기초과학의 발전과 문화의 성숙에 결정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공동체가 우리나라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데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리의 학자들이, 인문학자나 과학자나 유럽의 학자들처럼 상호간의 심도 있는 이해를 할 수 있는 교양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인문계 고등학교는, 예컨대 독일의 김나지움 같은 경우 순수과학과 인문학의 원리적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교양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 인문계 고등학교는 인문계라는 용어를 단지 허울로만 달고 있을 뿐이다. 그 허울아래 인문계 고등학교 교육은 입시위주의 암기교육으로 진행되어 왔다.그리고 그 와중에 문과 이과의 구분으로 인해 인문계 고등교육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교양의 완성이란 인문 교육의 목적을 완전히 망각했다. 그런데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와 세분화된 전문교육을 받고 또 석 박사과정에서 더더욱 세분화된 연구를 수행해 인문학자나 과학자가 된다. 때문에 우리나라 과학자와 인문학자들은 학자라는 칭호가 수치스러울 정도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배양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하지 않는다면, 혁신적 과학기술발전 정책은 인문학자와 과학자들이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는 학문공동체 조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물론 이 학문공동체는 지금 유행하는 융합이라는 이름을 가져도 좋지만, 몰가치적인 융합보다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창조하는 융화(Harmonizing) 공동체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융화공동체는 우선 우리나라 학자들의 한계와 특성을 고려하여 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나라 학자들은 인문학자들은 자연과학에 대해, 자연과학자는 인문학에 대해 무지하다.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의 협력은 따라서 융합이니 통섭이니 하는 선전 문구를 앞세우기 보다는 서로가 극단의 위치에서 서로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허심탄회하게 노출시키며 서로를 이해시키는 단계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즉 융화의 학문공동체로 성숙될 수 있는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포럼을 운영하여, 서로 이해가 불가능한 극단의 주제를 선택함으로써 서로에 대해 무지를 노출시키는 단계부터 시작하여 점차 상호이해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나라 학문발전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연구주제의 발굴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바라건대 혁신을 지향하는 새로운 과학기술 정책이 학문 본연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무시한 채 학문의 가치를 도구성에서만 발견하는 경제 공학적 논리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은 21세기이기 때문이다.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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