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마키아벨리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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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1-10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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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성적이 떨어진 중학생부터 인기가 떨어진 연예인까지, 어떤 사람은 검찰 청사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어떤 젊은이들은 연탄을 피워놓고 매캐한 일산화탄소를 맡으며 최후를 맞이한다. 인생의 벼랑 끝에 몰린 해고 노동자들이 마지막 소주잔을 입안에 털어놓고, 이 세상을 저주하며 목숨을 끊고 있다. 모든 자살은 피살로 보아야 한다. 사회적 억압, 경제적 곤란, 심리적 불안, 종교적 과잉신념, 인연의 단절이 자살의 원인이고, 그것은 모두 관계의 파열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바람은 "저 세상으로 가서, 더 이상 이 세상에서의 고통을 받지 않고 싶다"이다. 지금 세상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 다음 세상으로 가는 길이고, 그래서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지옥 같은 이 세상을 등지면, 천국 같은 저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이 가는 마지막 순간에 잡게 되는 한 줄기 가느다란 희망이다.

여기 죽음을 앞둔 한 인물이 있었다. 장소는 이탈리아 피렌체, 때는 1527년. 그 사람의 이름은 니콜로 마키아벨리였다. `군주론'의 저자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58세의, 당시로서는 노인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당시 그는 절망했다. 공직에서 쫓겨나 15년 동안 실업자 생활을 했던 그다. 겨우 복직이 되어 식구들에게 밥값이라도 벌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는데, 스페인이 이탈리아로 쳐들어왔다. 무지막지한 독일 용병을 고용한 스페인 군대의 난폭한 질주 앞에 이탈리아는 추풍낙엽이었다.단숨에 이탈리아반도가 점령당하고, 그 유명한 1527년의 `로마 대 함락'이 일어나고 말았다.

마키아벨리는 나라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삶의 희망도 잃어버렸다. 조국 이탈리아가 외적에 의해 유린당하는데도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다시 직장을 잃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크게 비관했다. 다시 실업자가 된 마키아벨리는 고향으로 돌아와 병을 얻는다. 마음의 병이었다.그의 통찰력과 위트를 높이 평가하던 피렌체의 인문학자들이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 마키아벨리의 침대 곁으로 모여들었다. 마키아벨리는 그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제 밤에 꿈을 꾸었는데 말이야,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길래, 내가 물었지. 당신들은 누구신가요? 그 사람들의 행색은 정말 남루했다네. 가난에 찌들었고, 삶의 의욕이 없어 보였어.그들은 내게, 우리들은 천국의 사람들입니다, 라고 답하더군. 조금 더 가니 이번에는 멋진 관복을 입고 손에 철학책을 펼쳐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더라구. 자세히 보니, 그 사람들 중에는 플라톤도 있고, 타키두스와 플루타코스도 끼여 있더군.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듯, 심사숙고하면서 토론에 열중하고 있었다네. 내가 그들에게도 물었지.당신들은 누구시냐고. 그랬더니 그 사람들은, 우리는 지옥의 사람들입니다, 라고 내게 답했다네. 조금 지나니까 하늘에서 신비한 음성이 내게 들렸지. 너는 어떤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으냐. 나는 냉큼 대답했다네. 저는 처음 누더기를 걸친 무리들과 천국에 있기보다는, 차라리 고귀한 영혼들과 국가의 대사를 논하며 지옥에 있기를 원합니다, 라고 대답했다네. 재미있지 않은가, 친구들?"

이것이 마키아벨리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비록 몸과 마음이 병들어 있었지만 마키아벨리는 천국으로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저 세상으로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슬픔이 사라질 것이라는 나약한 환상을 품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비록 지금의 삶의 지옥 같을지라도, 이곳에서 꿋꿋이 버티면서, 지긋지긋한 이 지옥 같은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고 싶었다.

마키아벨리의 꿈처럼 남루한 형색을 하고 삶에 찌든 사람들이 섣불리 천국행을 택한다. 그것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서. 고통이 없으면 그 곳에 천국이 도래하는 것일까? 그렇게 선택한 곳이 과연 천국일까? 그곳에 가면 고통은 없고, 힐링만 있는 것일까? 마키아벨리의 영혼은 지금 지옥에 있다. 고통이 없고 힐링만 있는 천국에서 어쩌면 착각과 자기만족에 빠져있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차라리 지옥으로 와서 단 하루만이라도 인간답게 살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설득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힐링이 보장되는 천국에 머물지만 말고, 묵묵히 고통을 견디며, 이 지옥 같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고 설득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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